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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전
동리 신재효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신재효 고택
동리 신재효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신재효 고택
그의 삶과 업적을 돌아보며 고즈넉한 고택에서 느껴보는 평화로움
신재효 고택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고창 신재효 고택에 다녀왔는데요.
고창 신재효 고택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53번지
고택은 고창읍성 매표소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황토 돌담 위의 흰 눈이 고풍스러움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고택 안으로 들어가는 대문 지붕을 짚으로 덮었는데요.
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고창의 신재효 고택은 판소리 이론가이자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입니다.
1979년 1월 26일 대한민국 국가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는데요.
철종 1년(1850)에 지어 광무 3년(1899) 그의 아들이 고쳐지었다고 해요.
원래는 대저택인 동리정사로 13,000여㎡ 대지에 안채와
14칸 줄행랑채 등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신재효의 대저택인 동리정사의 모습은
고창판소리박물관에서 재현해 놓은 그림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데요.
마당으로 수로가 흘렀고 거대한 석가산이 있어 운치 있는 집이었답니다.
지금은 소담한 초가집 사랑채만 남았는데요.
민속자료 지정 전까지 고창 경찰서의 부속건물로 쓰였다고 해요.
국가에서 관리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고자 다시 수리한 것이
현재의 고택 모습이랍니다.
대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신재효 고택이라는 입구 표석과 우물이 있었는데요.
양반가라면 반드시 있었던 우물은 뚜껑이 덮여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요.
사랑채의 옆면은 2칸 규모로 ‘ㅡ’자형이었습니다.
신재효 고택에 관해 설명해 놓은 안내판과 ‘동리가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설명글을 읽어보면 고택에 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 그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마당에 발자국을 남기며 둘러보았는데요.
‘ㅡ’자형의 사랑채는 앞면 6칸으로 부엌 1칸, 방 2칸, 대청 1칸, 2칸을 합하여
통 1칸으로 만든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항아리 두 개를 덮어놓은 굴뚝이 있었는데요.
낮게 만들어 놓아 바람의 영향을 덜 받게 했습니다.
초가지붕 처마 밑에는 길게 늘어진 고드름이
겨울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했습니다.
부엌에는 아궁이에 솥이 걸려있었는데요.
방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이 밥상을 들고 가게 편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방과 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만들어 연결해 놓았는데요.
더 안으로 들어가면 대청마루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청마루 너머의 방에는 판소리를 배우는 제자들의 모습이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동리정사에서 문하생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동리 신재효 문하의 명창들은
동편제에 속하는 박만순, 김세종, 전해종, 김창록이며
서편제에 속하는 이날치, 김수영, 정창업 등인데요.
이날치는 새타령을 잘해 새가 날아들게 만든 서편제의 대명창이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여성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우리나라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가 나이 쉰아홉에 지어 불렀다는
‘도리화가’는 가사 안에 신재효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있어
판소리를 통해 예술적 교감을 이루었던 제자 진채선과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신재효 고택의 특이한 점은 원기둥과 사각기둥이 섞여 있다는 것인데요.
건축 당시에는 모두 원기둥이었다고 해요.
암행어사가 신분에 맞게 법을 지키기를 요청해 어사의 체면을 살려주고자
집을 낮추고 뒷기둥을 격이 낮은 사각기둥으로 고친 것이라고 합니다.
동리 신재효는 말년까지 이곳에서 살면서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변강쇠 타령)> 등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하고 이전까지 일정한 체계나 순서 없이
불러오던 광대소리를 모아 사설의 체계를 잡아
개작하고 통일했다고 해요.
그는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이자 연출가로서
판소리 사설(타령)을 창작하고 집대성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리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천대 받던 판소리꾼을 교육하고 예술 활동을 후원하여
판소리를 국문학의 정수로 끌어 올린 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셰익스피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신재효가 이룩한 판소리의 업적을
문학사상의 ‘기적인 사업’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성을 발휘하여 국가 문학을 크게 이루어 준
우리의 큰 은인이었다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창 신재효 고택은 단순히 과거의 주거지가 아닌,
우리나라 판소리 역사와 문화를 깊이 간직한 공간입니다.
고풍스러운 고택의 모습과 더불어 신재효 선생이 판소리 문학의 기틀을 잡고
후학들을 양성하며 이룩한 업적은 우리의 문화유산에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그의 삶과 업적을 돌아보며, 판소리라는 소중한 전통 예술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고즈넉한 고택에서 느꼈던 평화로움처럼,
동리 신재효의 정신이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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