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은 근대역사 문화의 도시입니다. 행정구역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인데

논산은 조선 중 후기 정치사회의 중심사상을 이루었던 주자학의 깊은 뿌리를 간직한 유교의 본고장입니다.

유서 깊은 죽림서원과 함께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세워진 운치 있는 임리정과 팔괘정을 둘러보며 조선 후기의 정치사상과 갈등의 과정도 생각해 봅니다.

죽림서원 :

황산대교에서 강경 읍내 쪽으로 200미터 정도 걸어 내려오면

우측에 작지만 주위가 잘 정비된 죽림서원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의 정치 주도 세력이었던 노론의 영수들이 논산에서 주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키워나가

기호유학의 뿌리를 이어 나가게 되었으며 학문과 토론의 장이 되었던 유서 깊은 서원들이 논산에 많이 세워졌습니다.

그 영향으로 강경에도 죽림서원이 세워졌는데 죽림서원의 역사와 당시 사회에 끼친 유림의 영향으로

논산이 당쟁의 중심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사계 김장생의 제자들이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인 황산사(黃山祠)가 기원이 되었고 후에 황산서원으로 불리었으며

1665년(현종 6)에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답니다.

지금도 죽림서원의 뒷동산에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죽림서원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원에 제향 된 사람들은 조광조, 이이, 이황, 성혼, 김장생, 송시열인데 이분들이 모두

성균관의 문묘에 배향된 유교에서 추앙하는 유현(儒賢)이라 하여 육현서원(六賢書院)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전국의 유림 전체에서 추앙받는 인물들 만이 성균관에 배향된다고 하니

이곳에 배향된 분들이 전국적으로 추앙받는 분들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논산은 정치적으로 기호학파의 노론 일색이었는데 당쟁이 심한 상황에서

죽림서원의 경우 영남학파의 거두인 이황이 이곳에 함께 배향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합니다.

당파로 나누어져 있더라도 학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배워 나가는 것이

유교의 진정한 가르침으로 여기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보여 현대의 정치에서도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죽림서원의 담장 밖에 핀 배롱나무꽃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영남학파는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시는 경상도 안동을 줌심으로 한 유교의 학파이고

기호학파는 율곡 이이를 스승으로 모시는 충청도 논산을 중심으로 모인 학파로 서인의 중심 세력이 됩니다.

또한 죽림서원이 주목받는 것은 조선 중기에 당쟁으로 인해 노론과 소론이 갈라서게 되는

회니논쟁(懷泥論爭)이 이곳 죽림서원에서 치열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원의 주변에 우거진 숲속에서 울리는 요란한 매미 소리가 당시의 회니논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회니논쟁은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과 그의 제자 윤증 사이에 일어난 갈등으로 송시열의 집이

회덕(대전시 대덕구)에 있었고 윤증의 집은 이성(泥城 -논산시 노성면)에 있었기 때문에 회니논쟁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회니논쟁의 발단은 송시열의 제자인 윤증이 아버지 윤선거가 돌아가시자 스승인

송시열에게 아버지의 묘비명을 부탁했는데 송시열은 병자호란 당시 친구인 윤선거가

부인이 순절했는데도 혼자 살아남은 윤서거를 비난하고 멀리해왔다고 합니다.

제자인 윤증의 부탁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친구인 윤선거의 묘비명을 써 주는데

윤선거를 야유하는 듯한 묘비명을 써 주어 윤증이 이를 시정하거나 삭제할 것을

요청했으나 송시열은 들어주지 않았다 합니다.

이 일로 감정이 상한 윤증이 송시열을 비판함으로써 사제 간의 의리가 끊어졌으며

이러한 개인적인 감정과 함께 주자학의 해석에 관한 이견으로 유림들 간의 논쟁이 주로 죽림서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서인이 남인을 제압하고 정권을 차지 하자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대립할 때 윤증이 소론에 가담하며 노론을 대표하는 송시열과 대립하게 되었으며

윤증을 지지하는 사림들에 의해 윤증이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후에 대원군이 집권하게 되자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은 당쟁의 근원지로 서원을 지목하고

서원철폐령을 내리는데 이때 죽림서원도 문을 닫게 됩니다.

해방 후 1946년 지방의 유림들에 의해 서원에 제를 지낼 수 있게 단소(壇所)가 설치되고

1965년에 사우를 복원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루어졌던 당쟁의 현장을 돌아 보며 지금 시대와 다름없는 갈등의 시대가 있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학문과 사상을 연구했던 선현들이 만들어 놓은 예법과 제도들이 오늘날의 우리 생활에도

많은 부분에서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을 주장했던 유림들이 깊게 뿌리내린 이 지방의 정서에서

일찍이 근대문화를 받아들이고 근대역사 문화의 도시로 강경이 먼저 변화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형무형의 유산들이 소중히 여겨지는 역사 문화 탐방입니다.

죽림서원과 함께 꼭 같이 돌아 봐야 할 곳인 죽림서원의 양옆 작은 봉우리에 있는 임리정과 팔괘정으로 갑니다.

임리정 :

죽림서원의 오른쪽으로 언덕을 따라 작은 봉우리에 오르면 금강을 바라보며 세워진

아담한 정자가 나오는데 죽림서원과 함께 기억해 두었어야 할 의미 있는 임리정(臨履亭)입니다.

임리정은 사계 김장생(1546 ~ 1631)이 건립하여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가르쳤던 곳으로

죽림서원이 세워지기 전 이곳에서 수려한 경관을 벗 삼아 사색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입니다.

김장생은 논산시 연산면 출신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자

주자학의 이념적 체계로서 예(禮)를 중시하고 예학론의 정통주의 사상이 노론 세력의 정치이념으로

세워지게 되어 그의 제자인 송시열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서인과 노론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김장생 문하의 제자들로 조선 중 후기의 정치,

사회의 사상을 주도하고 이후의 생활습관까지도 그 사상이 이어져 오늘날까지 많은 면에서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물길을 바라보며 35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서

필요한 기강과 질서에 관한 통찰을 하며 학문으로 정립한 선현의 깨우침을 오늘의 사회에 되새겨 봅니다.

팔괘정 :

죽림서원의 왼쪽 언덕을 따라 잘 포장된 길을 오르면 황산근린공원에 이르는 계단이 나오고

계단에 올라 서면 금강을 바라보며 세운 작은 정자가 나오는데 앞에 본 임리정과 매우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팔괘정은 우암 송시열이 그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이 세운 임리정 옆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고 싶어 세웠다고 합니다. 1626년(인조 4)에 세웠다 하니 죽림서원과 같은 해에 세워진 듯합니다.

금강을 옆으로 끼고 남향으로 지어져 임리정과 매우 비슷한 모습입니다.

존경하는 스승을 닮고 싶어 그의 행적을 따라 정자를 짓고 스승이 했던 대로

제자들을 가르친 그 마음이 오늘의 사제지간에도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팔괘정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건물보다도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을 더 기리는 유산으로 간직해야 될 것 같습니다.

팔괘정의 뒤편에 글씨가 새겨진 큰 바위가 있는데 그 글씨는 송시열이 팔괘정을 짓고 생활하고 있을 때

팔괘정에 걸린 글을 보고 새겼다고 전해지는 데 암각으로 새겨진 글씨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청초안'이라 가로로 새겨져 있고 왼쪽에는 '몽괘벽'이라고 세로로 새겨져 있습니다.

'몽괘'는 생명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의미이고 '청초'는 만물이 막 시작하는 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죽림서원에서 선비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논쟁했던 역사가 당쟁으로 이어져

사회의 병폐를 주기도 했지만 선비정신을 물려주고 사회의 기강과 예학을 바로 세워 나간 선현들의 정신적인 유산을 돌아봅니다.

팔괘정에서 바라본 금강과 강경 읍내의 모습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겠지요.

임리정과 팔괘정에서 당대의 지도적 역할을 했던 학자들의 삶을 오늘의 사회에 반추해 보는

강경의 역사 문화 탐방이 되었습니다.[서포터즈 황선구]



{"title":"강경의 유서 깊은 죽림서원 그리고 임리정과 팔괘정","source":"https://blog.naver.com/nscity/223539573421","blogName":"논산시 공..","blogId":"nscity","domainIdOrBlogId":"nscity","nicknameOrBlogId":"논산시","logNo":223539573421,"smartEditorVersion":4,"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m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