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입점리 고분전시관

찬란했던 익산 백제시대 유물

찬란했던 익산 백제시대 유물을 살펴볼 수 있는

익산 입점리 고분전시관입니다.

올해 장마철 익산에 내린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미륵사지와 입점리 고분 등

10여 건의 문화재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피해 상황이 궁금했었는데요,

오늘 복구 상황도 살필 겸

익산 입점리 고분전시관을 찾았습니다.

주차장에는 많은 공사 자재 등이 쌓여 있는데요,

올해 말까지 입점리 고분 호우

피해 긴급 보수공사로

절개지 복구공사와 배수로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분전시관은 피해가 없어 관람이 가능하지만,

고분 지역은 복구공사가 한창이어서

오늘은 고분전시관과 전시관 뒤쪽

고분 모형을 탐방하면서

입점리 고분의 중요성을 알아볼까 합니다.

익산 입점리 고분전시관은

2004년 4월 20일 개관했습니다.

백제 중기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세력의 집단 고분이

셋터마을 뒷산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요,

1차와 2차 발굴조사를 통해

모두 21기의 고분이 조사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그중 18기 고분이

입점리 고분전시관 뒤 야산에 모여 있으며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관이 조성되었습니다.​

익산 입점리 고분전시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 09시~18시

▶관람료 : 무료

▶휴관일 : 월요일, 매년 1월 1일

▶주소 :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 산 174번지 일원

▶문의 : 063-859-4634

전시관 뒤에는 야산에 있는 고분을 발굴조사한 후

2007년 이전 복원한 것입니다.

9호 분, 13호 분, 24호 분, 28호 분, 31호 분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야산에 있는 고분은 조사 후

다시 무덤으로 만들었기에

이곳이 진짜 고분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 고분 위치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복구공사로 인해 관람이 제한적이다 보니

제초작업 등을 하지 않아 올라가는 길이 희미하고,

내려오는 길은 붕괴된 절개지 복구공사,

배수로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올해 고분 탐방은 안전을 위해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해 규모를 확인해 보기 위해

2020년 사진과 비교했는데요,

올해 7월 입점리 고분 주변 함라면에

최고 595.5mm 기습폭우가 내려 배수로가 있지만,

수용 한계를 넘다 보니 배수로

주변 토사가 유실되면서

배수로가 기능을 하지 못해

절개지가 붕괴된 것입니다.

다행히 익산시에서 긴급 보수 대책을 세워

현재 복구공사가 한창인데요,

내년 따뜻한 봄이 오면 고분이 있는 곳까지

탐방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고분전시관으로 가는데요,

원래 전시관 관람은 전시관 앞쪽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뒤쪽으로 들어갑니다.

뒤에도 주차장이 마련되었으니

입점리 고분전시관에 오면 공사자재가 있는

앞쪽 주차장 대신 전시관 뒤쪽 주차장 이용하세요.

전시관에 들어서자 백제시대 중기 금강유역에

살던 백제 지도자 급 인물로 보이는

밀랍인형이 반겨주는데요,

입점리 고분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86년 봄 셋터마을에 살던 학생이

칡을 캐다가 고분에 있던 유물을 발견하면서인데요,

1986년과 88년 등 2번의 발굴조사 결과

금동제 관모, 금동제 신발, 중국 청자 등

기존의 고분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면서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답니다.

전시실은 크게 한성, 웅진, 사비시대

백제 무덤 양식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백제 고분 개관과 입점리 고분 2기의 내부를

재현한 공간으로 나뉩니다.

특히 능산리 동하총의 네 벽에 그려진

벽화 사신도와 연화비운문, 현무도 등을

실제대로 전시해 진짜 고분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익산 입점리 고분전시관에서 가장 관심 가는

전시물은 당연히 입점리 고분 출토 유물일 것입니다.

전시실 한 중안에 설치했는데요,

무덤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고

출토유물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입점리 1호 분에서 발굴된 유물

금동관모, 금동신발, 귀걸이,

금동제관대 등이 전시되었는데요,

찬란했던 백제문화와 주변국과의

다양한 문화교류가 있었다는 사실과

유물의 주인공이 당시 상당한 권력을 가졌던

지배층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운데 금동관모는

일본에서 제작방법과 모양이 비슷한 유물도 있어

당시 일본과의 문화교류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금강 유역이어서 뱃길로 다양한 문화교류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입점리 고분 출토 유물은 상당히 많습니다.

가장 큰 1호 분을 제외한 나머지 고분에서는

토기류가 가장 많고 널못, 손칼 등

철제류가 나왔는데요,

백제의 한성시대 유물과 비슷해

5세기 중엽 입점리 지역 세력이

한성 백제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입점리 1호 분에서 출토된 유물만

따로 전시되었습니다.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귀걸이는

중앙 전시물에 전시되었고

이곳에는 관모 장식, 관드리개,

화상통장식구, 말발걸이 등인데요,

고분도 가장 크고 출토유물도 화려해

당시 지배층이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86-1호 분과 98-1호 분을 재현한 공간은

실제 유물이 발견된 위치까지 표시되었는데요,

익산 쌍릉과 달리 인골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부장품만 발견돼 더욱더

무덤의 주인공이 궁금합니다.

고분의 유형과 배치, 출토 유물 등에서

당시 익산지방 토착세력이

백제 중앙 세력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지,

금강 하류지역이어서 일본과 중국 등과

어떤 문화교류가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익산 입점리 고분전시관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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