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이 지나가고 여름휴가의 시작을 알리는 7월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계절인데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 210-1번지에 위치 해있는 장소에는

“유후재 및 옥비”라는 문화재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유후재 및 옥비” 가 어디 있는지 잘 몰랐으나 지도를 검색하면서

대창면 행정복지센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오늘은 가족들과 학생들과 함께 조치우 선생의 역사와 살아온 길을 배울 수 있는 장소이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 “유후재 및 옥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유후재”는 조선 성종 때 문신,학자이며 청렴결백한 관리로 선발되었던 조치우(曺致虞,1459~1529) 선생의 제사를 모시는 재실인데요.

조치우 선생은 호는 정우당(淨友當),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성종 25년(149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성균관 전적으로 성종실록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습니다.

그 후 중종반정 후 장령(掌令)*을 지내고 대구 부사 재임 때 선정을 펼처 사옹원정**에 임명되었으나

모친 봉양을 위하여 사임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중 일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유후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문채”를 통해 들어가 볼 수 있으나.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는데요.

마침 “관리인”이 마중 나오셔서 취재 허락을 받고 옆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관리인의 말씀으로는 예전에는 “대문채”를 통해 개방되었는데

낯선 분들이 주간 야간을 가리지 않고 “유후재”를 방문하면서

대문채 문고리가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직접 관리를 하신다고 합니다.

나라의 귀중한 재산이자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시는 관리인이 계신 덕분에

오늘날 유후재를 만나볼 수 있어 감사함을 느끼네요. ^^

“대문채”에서 바라본 “유후재”를 옆문을 통해 들어가서 직접 바라보니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유후재”의 지형에 대해 알아보자면 해발 127m의 낮은 구릉성 산지로

말단부에 재실·문간채·비각·변소·협문 간채가 일곽을 이루며 남향으로 배치가 되어 있는데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와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

대청 두 칸을 두고 좌측방 청방 간에 온돌방인 “충효당(忠孝堂)”과 우측 방 전면 상부에는

온돌방인 “입교당(立敎堂)” 우측 방 청방 간에는 “화○헌(花○軒)”이 있습니다.

방의 형태는 한 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으로 전면으로는 반 칸의 퇴를 두어 공간을 확장 시켰다고 하는데요.

“유후재(遺厚齋)”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전체의 현판과 대청 후면 상부 좌측에는

‘송청서당(松靑書堂)’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으며,

송청서당의 유래는 창녕 조씨 문중 묘역이 있는 산인 송청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유후재” 옆을 지나자 비각이 보여 발걸음을 옮겨 보았는데요.

비각 위를 바라보니 “내사옥비각(內賜玉碑閣)” 라는 한자로 적힌 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내사옥비각(內賜玉碑閣)”의 의미를 살펴보면

내사(內賜)란 왕이 신하에게 물건을 내려주는 일을,

옥(玉)은 옥(玉)으로 만든 비석을,

비각(碑閣)은 비석을 세워 놓은 집을 뜻한다고 합니다.

“내사옥비각(內賜玉碑閣)”안에는 “영천 조치우옥비”가 보호되어 있는데요.

“영천 조치우옥비”는 “어사청백리조치우옥비(御賜淸白吏曺致虞玉碑)”라고 부르며

조선전기 성종때 청백리로서 깨끗한 관리의 표상이었던 인물인 조치우가 죽은 이후에

국왕으로부터 특별히 하사받은 옥으로 만든 비석으로 철종 5년(1854)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비석의 특징은 비신의 높이는 94cm, 폭 34.5cm, 두께 14.2cm로 거북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원래 이 비석은 묘소 앞에 위치하여 있었으나 1851년 재사인 “유후재”로 옮겼다고 합니다.

조선 전기에 옥으로 만든 비석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맑고 깨끗한 덕을 높이 평가받아

국왕으로 하사받은 점도 인정이 되어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490호로 지정되었지요.

“조치우옥비” 외에도 조치우 선생의 부인 옥비인 “창원 어사옥비” 가 경남 창원시 북면 지개동

구룡산의 모선재(慕先齋)안 옥비각에 안치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166 호로 지정되어 있으니 함께 탐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천 조치우옥비” 주변에는 푸른 대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왔는데요.

대나무 잎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서걱서걱 소리를 내고,

느티나무 위에는 뻐꾹 뻐꾹 뻐꾸기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들리니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유후재”에서 바라본 송청산 주변에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는데

푸른 숲 사이로 “청백리 정우당 조치우 선생 과 조호익 선생의 묘소”가 보이더군요.

“청백리 정우당 조치우 선생 과 조호익 선생의 묘소” 가는 길은

유후재에서 바라본 묘역 방면으로 복숭아 밭 사이에 농로(農路)를 따라 500m 정도

올라가면 도착하게 되는데요.

묘소에는 창녕 조씨 문중 묘역을 비롯하여 조치우 선생과 조호익 선생의 묘, 조호익 선생의 부인 묘까지 있으니

한번 둘러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푸른 자연 속 넓은 경치 바라보기 좋은 장소

조치우 선생을 배울 수 있고 학습하기 좋은 장소를 찾는다면

“유후재 및 옥비”를 방문하시길 추천합니다.^^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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