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숲 아름드리

금강송마다 눈꽃도 활짝


▲ 눈덮힌 천년고찰 아산 봉곡사 전경

고방(庫房)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투명한 빛을 반사합니다.

하나를 떼어내 보려 조심스레 다가서다

‘뽀드득뽀드득’ 발끝의 사각거림이 불경스레 산사의 정적을 깨웁니다.

화들짝 놀란 바람 한 줄기 소나무 머리에 이고 있는 눈꽃을 털어냅니다.

오랜 세월 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던

겨울 산사의 작품이 흩날립니다.

충남의 대표 전통 사찰 아산 봉곡사(鳳谷寺)에서 힐링과 평온의 여정을 즐겨봅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수산 자락에 자리 잡은 봉곡사(鳳谷寺)는 주변 지형이 '봉황이 날개를 펼치는 형상'입니다. 산 중턱 비탈에 기대 여러층의 석축에 기대어 있는데 문헌기록에 본격 등장한 것은 조선 초기 이후로 창건과 관련한 이전 세대의 이야기는 모두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 눈덮힌 천년고찰 아산 봉곡사 고방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창건 설화는 887년(신라 진성여왕 1) 도선국사에서 시작됩니다. 봉곡사가 기대는 산의 모양이 “봉황 머리와 같다”하여 봉수산이라 부르고, 절의 이름을 산 위에 베틀바위 전설과 결합해 석암(石庵)을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1150년(고려 의종 4)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해 ‘석가암(釋迦庵)’으로, 조선에 이르러 1419년 (세종 1)때 함허 기화(涵虛 己和)가 또 다시 중창하는데 당시 상암(上庵), 벽련암(壁蓮庵), 보조암(普照庵), 태화암(太和庵)등 여러 암자를 거느렸고, 1584년(선조 17) 화암(華巖)이 중수해 봉서암(鳳棲庵)으로 불리며 상당한 사세를 갖췄다고 합니다.

▲ 천년고찰 아산 봉곡산 입구의 약수.

다만,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전란 과정에서 본전과 6개 암자가 모두 소실되어 한때 폐허 지경에 이르렀다가 1646년(인조 24) 중창하고 1794년(정조 18) 경헌(敬軒)과 각준(覺俊)이 중수해 현재의 봉곡사로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1825년(순조 25) 요사의 중수와 2층 누각을 신축하고 1872년(고종 9)요사 후방을, 1931년 일제강점기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아산 봉곡사 대웅전의 화려한 단청 1

문헌기록은 조선 중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석암사 재송악산(石菴寺在松岳山. 석암사는 송악산에 있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지금까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근처 다른 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여부와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봉곡사 요사에 보관중인 ‘문수보살상’의 복장 유물로 1448년(세종 30)에 간행된 ‘묘법연화경’이 나와 조선 초기에도 절이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1760년(영조 36) 작성된 ‘여지도서 온양군읍지’에는 “석암사 재군남이십리 송악산(石庵寺在郡南二十里松岳山)”으로 기록되고 1795년 다산 정약용의 온양군 봉곡사 방문 기록이 그의 문집 ‘여유당전서’의 여러 곳에 남아있습니다. 절의 역사를 기록한 직접 기록으로는 1864년(고종 1) ‘봉곡사 산령각 서문’이 충남도 사찰자료집에 남겨 있습니다.

▲ 아산 봉곡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요사.

봉수산(鳳首山 536m) 중턱 비탈진 언덕에 자리잡은 봉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로 중심 불전인 대웅전과 요사채, 고방이 전통건축물로 남아 있고, 근래에 건립한 향각전과 삼성각 등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 일주문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찰 입구에는 만공 월면(滿空 月面)의 친필인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새긴 만공탑(1993년)이 있습니다. 만공은 1893년부터 2년간 봉곡사에 머물며 면벽 수도로 ‘활연대오(豁然大悟. 마음이 활짝 열리듯이 크게 깨달음을 얻음)로 득도했다고 하는데 조선총독부 불교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해 조선 불교를 지키려 애썼고 예산 수덕사(修德寺) 덕숭산문(德崇山門)을 확립시켜 선불교를 중흥시킨 인물로 불교계의 큰 스승을 추앙받고 있습니다. 만공이 득도하며 읊은 오도송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 빈 산의 이치와 기운은 고금 밖인데)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 흰 구름 맑은 바람은 스스로 오고 가누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 무슨 일로 달마는 서천에서 건너왔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 축시에는 닭이 울고 인시에는 해가 뜨네)

▲ 아산 봉곡사 만공선사의 친필 '세계일화'를 새긴 만공탑.

봉곡사는 규모가 현재는 비교적 작지만 천년고찰의 역사와 문화를 갖춘 전통사찰입니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향각전이 오른편으로 요사가 위치합니다. 입구 약수터에서 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이 있습니다. 중심 전각인 대웅전(1993 충남도 문화재자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조선 후기 목조 건축물인데 17세기 중수 과정에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단에는 석가불좌상과 후불탱화, 지장탱화, 신중탱화가 봉안되고 동종(1962년)이 있습니다. 최근 단청을 새롭게 했는지 문양이 선명하고 뚜렷합니다.

▲ 아산봉곡사 대웅전 전경.

▲ 아산 봉곡사 대웅전의 화려한 단청

▲ 아산 봉곡사 대웅전 문화재청 설계도.(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정면도, 측면도, 배면도, 앙시도)

대웅전에 봉안된 주불은 목조석가여래좌상(木造釋迦如來坐像 충남유형문화재 2021)으로 높이 113㎝의 중형 불상입니다.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해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옆으로 길게 반개한 눈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가고 당당한 코와 다문 입술을 균형감 있는 비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육계(부처의 정수리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거의 드러나지 않으면서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모두 표현하였습니다. 계주란 상투 가운데 밝은 구슬로 정상계주는 육계 위에 장식한 것이며 중앙계주는 머리와 육계 사이에 장식한 것입니다.

▲ 아산봉곡사 대웅전 내부의 불단과 후불탱화.

▲ 아산봉곡사 대웅전 천정.

수인(手印 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 근처로 내리고 왼손을 배 부근까지 살짝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습니다. 이렇게 왼손에 수인을 맺은 변형된 항마촉지인의 그림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는 석가모니불 도상의 하나입니다. 참고로 항마촉지인이란 부처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수인으로,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결가부좌 다리 가운데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늘어뜨리면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입니다. 의상은 왼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는 변형을 택해 옷 주름을 율동감 있게 묘사했습니다. 편평한 상체 위로는 군의(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을 착의하였습니다. 관련 문헌 기록은 없지만 양식 검토를 통해 조선 후기 불상으로 추정하는데, 전반적인 작풍이 17세기 중반에 활동한 조각승 조능(祖能)과 유사해 조능 혹은 그 계보 조각승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능은 대표작으로 1655년(효종 6)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1657년(효종 8)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등을 남겼는데 봉곡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통해 조선 후기 아산을 비롯한 충청 내포(內浦) 일대 불상 제작의 일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봉곡사 고방에 봉안된 아산 봉곡사 문수보살좌상과 양식적으로 동일하여 본래 삼존불(三尊佛)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아산봉곡사 대웅전 불단의 목조석가여래좌상.

대웅전 불단뒤 왼편에 봉안된 아산 봉곡사 지장시왕도(충남 문화유산)는 대웅전 불화로, 1867년 수화승 해명당 산수와 차화승 춘담봉은이 제작한 불화로 현해 전해지는 해명당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긴 상호와 강렬한 청색, 다양한 장식표현 등 해명당의 말년 화풍을 잘 나타냅니다.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돈귀왕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시왕과 권속들의 구성과 표정에 대한 표현과 세부묘사가 매우 뛰어난 특징을 보여줍니다. 19세기 충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화승 산수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좋은 사례이며, 화승들이 확인됨으로써 화맥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좌대의 표현이나 화려한 문양역시 충청을 대표할만한 불화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 아산 봉곡사 불단 후불탱화 지장시왕도.(문화재청 제공)

▲ 아산 봉곡사 불단 후불탱화 지장시왕(좌측)과 불단 단청(우측).(문화재청 제공자료)

요사채 북쪽 모서리를 이루고 있는 고방(庫房)은 사찰의 여러 물건을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로 내부는 2층 구조의 판벽과 판문의 특이한 형태입니다. 이는 공주 마곡사에도 있어 사찰 건축물의 지역적 특징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요사채의 전면은 불전으로 꾸며져 있으며, 내부에는 목조문수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목조문수보살좌상은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여래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현보살좌상과 함께 삼존불로 대웅전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 아산 봉곡사 요사와 2층 고방.

한가지 아쉬운 점은 1984년 충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봉곡사 관음보살도가 1985년에 도난당한 이후 소재불명입니다. 이 그림은 가로 40㎝, 세로 75㎝ 의 작은 규모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들을 제도하고 고난에서 구제하여 주며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현세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닌 보살상을 그린 것인데 확실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 1985년 도난 당한 봉곡사 관세음보살도(좌측)와 수배전단(우측)

봉곡사는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700여m 구간에 울창히 들어선 500여 그루의 금강송이 장관을 이룬 ‘천년의 숲길’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고, 산림청 ‘아름다운 거리 숲’을 수상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인적이 드믄 겨울철 이곳을 느긋이 걷노라면 아름드리 금강송에서 내뱉는 솔향과 솔잎에 내린 흰눈이 어우러져 힐링과 평온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 금강송 1

▲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에 세워지는 일주문.

▲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 금강송 2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숲길에 일제강점기 송진공출의 위해 깊게 패인 상처가 소나무마다 남아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부족해진 군수품 보급을 위해 연료용 송진을 채취하겠다며 일부러 소나무에 상처를 낸 것입니다. 나무 껍질을 벗기고 몸통에 V자로 깊게 파인 상처가 아직도 생생한데 소나무 상처에는 콘크리트가 채워져 그날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의 수난을 겪은 아산 봉곡사 금강송의 상처

참고로 봉곡사가 있는 봉수산(鳳首山 536m)은 정상에서 동쪽으로 설화산, 광덕산, 망경산, 태화산이 서쪽으로 도고산, 덕봉산, 안락산 관모산이 남쪽으로 천방산, 국사봉으로 연결됩니다. 봉곡사 천년의 숲에서 배틀바위와 봉수산을 거쳐 봉곡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상행길은 총 5.8㎞ 구간으로 보통 3시간 정도면 산행이 충분합니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도 하지만 새하얗게 눈덮힌 고요한 설경의 천년고찰이 주는 따뜻한 평온함이 이를 잊게 만듭니다.

▲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에서 봉수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

참고문헌

『전통사찰총서』13-충남의 전통사찰Ⅱ(사찰문화연구원, 1999)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아산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악면향토지』(송악면향토지편찬위원회, 2012)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세유표(經世遺表)』

아산 봉곡사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 632길 138 (유곡리 595)

○ 041-841-6620

○ 이용시간: 동절기 (11월~2월) 09:00~17:00 / 하절기(3월~10월) 09:00~18:00

○ 입장료: 무료

○ 주차장: 천년의숲 공영주차장 및 사찰 주차장 (무료)

○ 취재일: 2025.2.2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휘리릭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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