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여행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자연을 만끽하거나 소소한 이야기가 있는 마을여행, 테마여행 등이 그것인데요.

대전시 동구는 특히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적지가 발견되는 등 오랜 역사가 있고,

1977년 대전에서 처음으로 구제가 도입되어 중구와 함께 구청이 설치됐습니다.

현재는 16개 행정동으로 각 동마다 숨은 이야기가 있는 소소한 여행 코스가 많습니다.

이번에는 용을 품은 마을 용운동 마을여행 코스를 소개합니다.

​한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그 마을의 역사와 문화재,

주요 시설 등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요.

사실 혼자 어떤 마을을 돌아보는 여행을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사)대전문화유산울림 마을이야기강사단이 매월 진행하는 마을여행에 참여하곤 합니다.

마침 9월 마을여행 지역이 대전시 동구 용운동이어서 7일(토) 일정에 참여했어요.

용운동의 본디 이름은 용방이었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 용방리(龍坊里), 즉 용의 마을이 된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이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지형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던 것입니다.

즉 용의 머리로 상징되는 탁구니 고개 아래의 용수리, 용의 날 등을 상징하는 대전대 뒷산의 용날,

그리고 용이 누운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아파트 단지 마을의 와룡 등에서

그 용방이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

용운동 마을 여행 코스

📍복음타운 아파트 옆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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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동 새마을 사업비 (평화 아트빌라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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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포레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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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도서관 박팽년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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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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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동 장신 (할머니 석장승 - 할아버지 석장승)

총 3km의 코스입니다.

​용운동 마을여행은 임병희 대전마을이야기 강사님이 인솔을 했는데요.

먼저 용운동의 입지와 지명 유래 등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용운동은 대전대학교를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는 복개된 용수천,

동쪽으로는 역시 복개된 용운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특히 용수골은 옛날 이곳에서 용이 등천했다 해서 용수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용방리는 용수골 아래에 생겼다 해서 용방리라 부르게 되었고,

모리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 골짜기만은 난리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모리라고 불렀다고 하며,

새울은 약 300년 전 봉곡 송주석이라는 분이 자리를 잡아서 봉곡 즉, 새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옛 지명은 아직도 신협이나 공동주택, 경로당, 작목반 등의 이름에 남아있다네요.

복음아파트에서 도로를 건너고 지하보도를 통과해 평화아트빌라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멀리서도 노거수가 보이는데요.

주민들이 여름내 더위를 피했을 평상도 놓여있습니다.

노거수 옆 블록으로 싸인 담장 앞에는 1976년에 세운 새마을 사업비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 마을을 새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새마을 사업비에 새겨진 문구를 보면,

당시 부락민 73가구 400여 주민이 새마을 사업에 열심히 참여했다고 합니다.

국기 게양대 설치, 부락민 정신 계발 운동, 생활교량 및 하수도 시설 18개소, 담장개량 연 2km, 지붕개량 63동, 포도단지 조성 개선 사업, 과학적인 영농개선, 회관건립, 전기가 설 73가구, 전화가 설 3대, 마을 안길 확장 2km, 간이 상수도 시설 46호, 3정보, 양돈, 양계 등 소득증대 사업 추진, 신흥 협동조합 창설 등 자산 730만 원 등 총 32종목, 755개의 사업을 하였다. 1976.4.22

라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했는지까지 상세하게 적었어요.

이번 용운동 마을여행에서는 대전의 역사와, 새마을 사업비에 적혀있는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참가자가 있어서

임병희 강사의 설명에 더해 상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대전에서는 비교적 일찍 1984년에 분양해 1985년 6월 1,130가구가 입주한 주공 1단지 아파트를,

2018년부터 재개발을 시작해 2020년 12월에 준공,

2,267세대가 입주한 에코포레 아파트 입구에서는, 대

전 아파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큰길을 건너 용운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용운중학교와 용운국제수영장을 만납니다.

2009년 8월 29일 국제 규격으로 준공한 용운국제수영장에 대해 임병희 강사는,

용운동이 용이 승천했다는 유래가 있는 마을인데 이곳에 수영장이 생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는 대전시청 소속 조성재 선수가 준결승까지 진출했지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용운도서관으로 올라갔습니다.

용운도서관에는 박팽년 시조비를 보기 위해서인데요.

박팽년은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 중 한 분으로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 생가와 유허비가 있어요.

탄신 600주년을 맞은 2017년에 유허지를 조성한 바 있습니다.

그곳은 가양동 마을 여행 코스에서 소개했어요.

박팽년 시조비는 1998년 박팽년시조비건립위원회가

당시 박병호 동구청장 시절 세운 건데요.

앞면에는 그의 유명한 시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메라...'가 새져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까마귀는 수양대군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박팽년 시조비를 거쳐 용운근린공원으로 올라갑니다.

마을 동산이지만 꽤 가팔라요.

시원한 숲길을 산책(등산) 하고 마을길로 내려옵니다.

이곳에서 문충사를 향해 마을 골목길을 지나는데요.

골목길이 꽤 널찍하고,

주택 담장의 감나무며 대추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들을 보며 한적하게 걷는 길입니다.

문충사(文忠祠)에 도착했습니다.

송병선(宋秉璿)·송병순(宋秉珣)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인데요.

원래 1908년 충청북도 영동에 건립됐던 것을,

송병선의 순국 60주년을 맞은 1966년 그의 순국한 곳인 현 위치로 이전한 것입니다.

입구에 정려와 홍살문이 있고,

너른 앞마당을 거쳐 들어가면 정면 5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인 외삼문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으로 ‘연재송선생 문충사비’와

그 뒤로 용동서원(龍洞書院) 현판이 걸린 강당이 있습니다.

용동서원은 1970년에 건립되었는데,

조선시대의 서원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합니다.

단아하고 소박한 선비를 보는 듯한 건물이에요.

용동서원 뒤쪽 약간 높은 위치의 내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문충사 현판이 걸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이 있습니다.

저희는 문충사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들께 특별히 사전에 두 분께 참배를 하고 싶다고 요청을 드려,

미리 열어놓은 사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연재 송병선(1836~1906) 선생이 을사조약에 항거하기 위해

1906년 01월 24일 음독자살하고 동생인 송병순 선생 역시 1912년 순국했습니다.

그 두 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바로 문충사입니다.

저희는 두 분의 영정 앞에 차례로 묵념으로 참배했습니다.

문충사 홍살문 안 바깥마당 안 왼쪽으로 두 분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문충사 참배를 마치고 용운동 석장승 두 기가 건물이 들어선 구역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용방마을로 향합니다.

용방이 마을의 입구 용운천 좌측 들판은 예부터 구름들 즉 운평이라 했는데,

그것은 정조 때 학자 운평 송능상이 출생한 곳이라 하여

그의 호를 따서 구름들이라 이름 붙였다는데요.

그 뒤 행정동 명이 확정될 때 용방의 용자와 운평의 운자를 합쳐서 이제는 용운동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먼저 잠긴 쇠창살 안에 있던 것을 최근 보호각을 정비하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쇠창살을 제거한 할머니 석장승을 만나보았어요.

원래 이 마을에는 조선조 연산군 때,

그의 폭정에 쫓긴 임 씨(任氏)들이 경기도 광주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후 이 마을에 돌림병이 심하게 돌아 아이들이 많이 죽게 되는 등 민심이 흉흉하게 된 일이 있었다는데요.

이때 이곳을 지나던 도인(道人)이 마을의 지세(地勢)가 세기 때문이라 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내의 보(洑)를 세 곳을 막고,

내의 양쪽에 장승을 세워서 지세를 눌러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비보(裨補)의 역할을 하는 장승을 세웠는데.

처음에는 마을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었지만 어느새 도로가 생기고

건물도 지어져서 두 장승은 서로 보이지 않는 위치가 됐습니다.

장승에 흔히 볼 수 있는 대장군, 여장군이 아닌 장신이라고 새겨진 것은 경기도 광주 지방에서 많이 보인 형태라는데요.

그곳으로부터 난을 피해 용방마을에 자리 잡은 임 씨의 흔적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

이렇게 약 3Km 여정의 용운동 마을여행은 용방마을 장신 인근의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다른 마을의 여행을 하면서 열심히 답사를 하고

자료를 찾은 대전마을이야기 강사님의 상세한 설명으로 재미있는 여행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코스를 따라 천천히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보세요.

조강숙 | 제2기 동구 소셜미디어 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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