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양주시 SNS 시민서포터즈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소식은

양주시 향토유적 제2호인

정절사에서 봉행된 춘기 봉향제입니다.

정절사는 고려 말의 충신인

남을진 선생과 조견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봄과 가을에 봉향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양주시 은현면에 위치하고 있는

정절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절사(旌節祠)

경기도 양주시 은현로 382번 길 52

정절사는 고려 말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킨

사천백 남을진 선생(1331~1393)과 송산 조견 선생(1351~1425)

모신 사당이며, 후학을 양성하는 학교 기능의 서원이었습니다.

숙종 38년(1712)에 봉암리 서원마을에 사천서원을 창건하여

남을진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여 오다가

영조 13년(1737)에 조견 선생을 합향하였습니다.

사천서원은 정조 8년(1784)에 정절사로 사액을 받았으며,

매년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절사의 재실인 충모재

왼편 언덕에 남을진 선생의

묘와 신도비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yangju619/221367436578

남을진 선생의 호는 곡은, 본관은 의령입니다.

고려 말 충렬왕 원년(1331)에

남천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사천현에 돌아가 숨어 살았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조정에 나오길 권유했으나

공은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키고 끝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죽기를 맹세하고 감악산 깊은 굴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습니다.

이 굴을 남선굴이라 하며, 태조 2년(1393)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절사의 재실인 충모재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정절사가 있으며, 제향은 정절사에서 지냅니다.

https://blog.naver.com/yangju619/222940720749

↑↑남을진 선생이 은둔하던 감악산 남선굴에 대한 내용은

위의 글을 참조해 주세요.

정절사에 모신 또 다른 한 분은 송산 조견 선생(1351~1425)으로,

초명은 조윤, 자는 거경, 호는 송산, 본관은 평양입니다.

판도판서 덕유의 아들이고 개국공신인 조준의 동생입니다.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신사가 되었으나

형인 조준이 역성혁명에 가담하자 통곡하며 이를 만류했습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송산에서 살면서

호를 송산이라 했고, 양주의 정절사와 송산사에 제향 되었습니다.

공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여수동 산 30에 모셔져 있습니다.

제향이 열리는 정절사에는

두 분의 후손들, 성균관유도회 양주시 지부 회원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께서 참석을 했습니다.

국민의례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후에

제향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설을 맡으신 분과 알자 등 집례자자들이

관세위를 지나 사당으로 들어섭니다.

제관으로는

초헌관 강수현 양주시장님,

아헌관 윤창철 양주시의회의장님,

종헌관 정설화 은현농협조합장님이 맡으셨습니다.

집례자들이 사당에 위치하고,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절을 올렸습니다.

조상의 덕을 흠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느껴져서 경건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제향의 순서는 초헌관이 알자의 안내를 받아 초헌례를 올립니다.

남을진 선생 신위에 향을 사르며

흠향하시길 고한 후에 전폐를 올린 후,

조견 선생께도 향을 사르고 전폐를 올립니다.

향을 사르고 전폐를 올린 후에 술을 올립니다.

집에서 제사를 모실 때는 전을 부치거나

나물을 삶고, 모든 재료를 익혀서 음식을 만드는데

제향에서는 모든 제물이 날 것입니다.

첫 잔을 올린 후 대축이 축문을 읽습니다.

축문이란 제례 또는 상례 때 신령에게 축원을 드리는 글입니다.

축문을 올리게 되는 시간, 올리는 사람의 신분,

제사를 올리는 사실을 순서대로 기록하고

'정성스레 제물을 바치오니 흠향하옵소서'

라는 말로 끝맺는 것이 일반적인 서식이라고 합니다.

축문은 의례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됩니다.

초헌관에 이어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종헌관이 세 번째 잔을 올립니다.

종헌관까지 잔을 올리면

제향의 중요 의식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에 음복례가 있는데, 종헌례가 끝난 후에

초헌관이 신위 앞에 있는 술과 안주를 먹는 의식이며,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신명께 올렸던 술이나 제물을

먹는 의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참석자들은 제향이 끝난 후에

충모재에서 준비된 음식을 함께 나눠 먹습니다.

이어서 철변두가 행해졌는데,

철변두란 제기인 변(籩)과 두(豆)를 거두는 것으로

제사가 실질적으로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망료례는 행사가 끝난 뒤 음식물을 제외한

사용한 물건을 태워 없애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이날은 축문과 지방 등을 초헌관이 태웠습니다.

망료례가 끝난 후에 찬자는 축관과 모든 집사, 제관들을

인도해서 제자리로 돌아가 4배를 올립니다.

두 분의 신위를 닫아 예를 완전히 마칩니다.

의식을 집행하는 손길이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것은

자랑스러운 조상을 향한 후손들의 마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창한 봄날에 열린 정절사 제향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옳은 일이라면

의리를 지키고 목숨도 기꺼이 바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열리는 제향 때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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