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과 제향 공간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부끄러움!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10


9월까지 이어지는 무더위로 집 밖을 나서기가 보통 망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집을 떠나면 어떤 새로운 것을 보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가 앞섭니다. 9월 12일(목), 서천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날 비가 내려 습도가 높은 데다 먹구름이 끼어 있어 언제 또 비가 내릴지 예측할 수 없기에 출발 전에는 심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천에 도착하자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아 마음이 분주해졌습니다.

▲ 문헌서원(文獻書院) 전경

오늘 소개할 곳은 볼 것 많은 서천에서 꼭 소개할 곳 중 한 곳인 문헌서원입니다.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지방에 세운 사학(私學)을 말합니다.

문헌서원은 1592년(선조 27)에 건립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1년(광해군 3)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611년 문헌서원으로 사액되고 이종학, 이자, 이개 등 세 명의 위패를 추가로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1871년 (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1년 옛 터에 단을 만들고 제향해 오다가 196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에 자리한 문헌서원은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과 그의 부친인 가정 이곡(1298~1351) 등의 한산 본관 중심으로 여덟 분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문헌서원에서 배향하는 목은 이색(牧隱 李穡)에 관해서는 많은 분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간략히 소개하면, 목은 선생이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으로 고려 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지낸 관리이자 학자입니다. 고려 말 삼은(三隱: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혹은 도은 이숭인))의 한 분으로 3년 상을 제도화하고, 성리학 발전에 공헌하셨습니다.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드높이기 위해 후손들이 발간한 문집, 목은문고(牧隱文藁)와 목은시고( 牧隱詩藁)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정 이곡(稼亭 李穀)은 고려 말 학자로 시호는 문효공(文孝公)입니다.『동문선』에는 100여 편에 가까운 이곡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교과서에도 소개돼 기억하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가전체문학인「죽부인전」이 대표적입니다. 참고로 문헌서원에는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 외에 이종덕, 이종학, 이종선, 이맹균, 이개, 이자 여섯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 목은 이색(牧隱 李穡)선생 동상

문헌서원에 당도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목은 이색 선생의 동상이 모셔진 곳이었습니다. 이 동상은 국내에는 두 개 밖에 없는 백옥으로 제작된 것으로 을유년(乙酉年, 2005)에 목은 선생의 이십대손이 헌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 문헌전통호텔(munheonhotel.co.kr)과 문헌전통밥상 단지

목은 선생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문헌서원 안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기와를 얹은 한옥 건물 여러 채가 보였습니다. 서원 내에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눈여겨보니, 숙박시설과 식당이 자리한 곳이었습니다. 전통 방식의 숙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문헌서원에 체류하는 방문자들뿐만 아니라 서천에서 1박 이상을 계획하는 여행자들은 이용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문헌서원의 홍살문과 하마비(下馬碑) 주위에 붉은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어 있다.(2024.9.12)

▲ 홍살문을 지나면 비석군이 보인다.

조경이 잘 된 문헌서원 안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붉은 배롱나무꽃이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며 보니, 오랜 세월을 이겨낸 나무가 피워낸 꽃들은 9월 무더위를 잊게 할 만큼 곱디 고왔습니다. 사찰 건축물과도 잘 어울리는 배롱나무꽃은 서원에서도 튀는 듯 튀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 연못과 경현루(景顯樓)

▲ 진수문(進修門)

연못과 주변 풍광을 즐기기 좋은 경현루를 지나니 '진수문'이 보였습니다. 진수문은 외삼문을 말합니다. 서원은 존현(尊賢)과 강학(講學)이라는 기능에 의해 공간구성과 배치법이 보입니다. 선현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과 교육을 담당하는 강당, 유생들이 공부하며 숙식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크게 나뉩니다. 외삼문은 중심 건물의 출입문으로 우측 문으로 들어가서 좌측 문으로 나오면 됩니다.

▲ 진수당((進修堂)

진수문을 지나니 강학 공간이 나타납니다. 강당에 해당하는 진수당이 정면에 보입니다. 진수당은 문헌서원의 원생이 학업에 정진하며 수양하던 곳입니다. 강당의 현판인 '진수당'은 『주역』에 나오는 '진수덕업(進修德業)'에서 따온 말로, 덕을 쌓고 학업을 닦는다는 뜻입니다. 현판의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다시 고쳐 쓴 것이라고 합니다.

▲ 존양재(存羊齋)

동재는 서원 강당의 동쪽 건물로 원생들이 수학하며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1611년(광해 3) 문헌서원이 사액서원이 되던 이듬해인 1612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동재의 현판인 '존양재' 역시 동춘당 송준길이 쓴 것이라 하며, 『맹자』와 『중용』에 나오는 '존양성찰(存羊省察'에서 유래한 말로 '마음의 본성을 지키며 자기 잘못을 살피고 반성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석척재(夕惕齋)

서원 강당 서쪽에 자리한 서재도 원생들이 수학하며 생활공간입니다. 동춘당 송준길이 쓴 서재 현판 '석척재(夕惕齋)'는 『주역』의 '건건석척(乾健夕惕)'에서 유래한 말로 '군자는 낮이나 밤이나 힘쓰고 조심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서원의 원생으로 이름을 올리고 군역을 피하려는 사람이 늘자 1707년(숙종 33)에는 사액서원의 서재생을 20명으로 정하고 '교안(명단)'에 이름을 기록하게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기숙사와 비교해 보면, 최소 인원이 20명인데 서재의 규모로 봤을 때 생활에 제약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경현문(景賢門)

▲ 효정사(孝靖祠)

강학 공간 뒤편에는 제향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경현문'과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지내는 사당 '효정사'는 일반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살피니, 효정사(孝靖祠)는 정면 3칸, 측면 3칸에 다포집과 겹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풍판(풍차판: 맞배지붕의 양 측면 부분에 비바람을 막기 위해 판재를 이어 붙여 만든 부분)이 달려 있습니다. 참고로 문헌사원의 향사일은 매년 음력 3월 9일 중정일(中丁日)입니다.

▲ 전사청(典祀廳) 일원

▲ 영모재(永慕齋)

경현문 인근에서 내려다보니 제례를 준비하는 영모재와 유생들의 교류와 휴식의 공간인 '강륜당(講倫堂: 누각)', 그리고 교육관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교육관 이용에 관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그와 관련해서는 기사 하단부에 상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장판각(藏板閣)

중심 건물은 아니지만, 선현들의 문집이나 판각본을 보관하는 '장판각'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헌서원의 장판각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가정목은선생문집판( 稼亭牧隱先生文集板)' 등이 보관돼 있습니다. 2024년 10월 초순까지는 목판 훈증 처리 작업이 진행되는 관계로 관람이 불가합니다.

▲영당 삼문

▲ 목은 이색 선생 영당(影堂)은 역사상 중요 인물을 그린 것으로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관람한 곳은 영당이었습니다. 충청남도기념물인 '이색선생묘일원(李穡先生墓一圓)' 옆에 있습니다. 영당은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앞에는 신도비가 있습니다.

이색 선생의 초상화는 관복 차림과 평상복 차림의 두 종류가 있었으나, 현재는 관복 차림만 전해진다고 합니다. 문헌서원의 '이색초상-영모영당본( 李穡肖像-永慕影堂本)'은 서울 목은 영당본과 동일한 형식으로 1755년에 새로 옮겨 그린 것으로, 수준이 높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합니다.

▲ 목은 이색 선생 신도비(神道碑) 후면에 낙서가 돼 있다.

영당을 나오며 목은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를 살폈습니다. 1405년(태종 5) 하륜이 짓고 비문의 글씨는 공부(?~1416)가 쓴 것을 1433년(세종 15)에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소실돼 1666년(현종 7)에 하륜의 찬문과 이색의 손자 이맹륜의 글을 일부 인용하여 우암 송시열이 음기를 써서 후손들이 다시 세웠으며, 1904년 신도비 앞면을 갈아내고 이용원이 서문을, 송병선이 명을 짓고 후손 이용직이 글씨를 써서 다시 새긴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여러 대에 걸쳐 지켜온 신도비의 후면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광범위하게 낙서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훼손된 부분만 복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더욱 참담했습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방법이 개개인의 양심과 교양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안타까웠습니다. 가정 선생의 차마설(借馬說 :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을 곱씹으며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문헌서원

○ 주소ㅣ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 172번길 66

○관람시간ㅣ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휴관일ㅣ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때는 개관하고 그 다음날 휴관),1월 1일, 설날, 추석날

○교육관 이용 안내ㅣ www.munheon.org

○문의/ 예약 ㅣ(041) 953-5895

○촬영 일자ㅣ 2024.09.12(목)

※ 문헌서원에서 배부하는 리플릿에 오기(誤記)가 더러 보여 수정·보완되었으면 한다.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엥선생깡언니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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