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석전대제일까?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725


▲ 유교의 명맥을 잇고 있는 태안향교의 외삼문

유교(儒敎)는 지금으로부터 2575년 전 중국의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의 사상(思想)과 철학이 담긴 종교입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로 승화되었습니다. 유학의 근본 사상은 인(仁)입니다. 공자의 논어를 보면 “인은 곧 사랑이다”라고 표현합니다. 공자의 철학은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랑도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석전대제의 식순

9월의 햇살이 한여름 햇살처럼 뜨겁습니다. 처서(處暑)가 지나고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무척 당혹스러운 무더위입니다. 2024년 9월 10일은 태안군 향교에서 ‘추기석전대제’가 열리는 날입니다. 국가 무형문화재인 석전대제(釋奠大祭)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문묘대제 또는 석전제(고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지금은 각 지방의 향교에서 매년 음력 2월과 8월 정해 놓은 날에 공자를 비롯한 옛 성인들의 학덕을 추모하는 제사입니다.

▲ 유림의날을 기념하는 현수막

▲ 태안향교 표시석과 비석들

태안향교는 1997년에 충남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국가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는 것은 관광의 의미보다는 선조의 얼이 담긴 문화재를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태안향교로 향하다 보니 3개의 비석과 표시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태안향교 앞 홍살문 우측 아래에 ‘하마비(下馬碑)’라고 쓰인 비석이 눈에 보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던 곳이지요. 공부하는 유생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 홍살문과 그 아래 하마비

태안향교는 백화산 남쪽 자락에 위치해서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에 해당하는 곳이지요. 백화산 위쪽에는 태안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이 있습니다. 밑으로는 태안읍사무소가 있고, 옆으로는 태안초등학교가 있습니다. 태안읍사무소 자리는 조선시대 사또가 업무를 보던 관아로 ‘목애당’이 있습니다. 경이정과 목애당 그리고 태안향교와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모두 역사적으로 소중한 유적지입니다.

▲ 향교에서 바라 본 태안읍성과 성벽 뒤편 기와지붕이 목애당

홍살문을 거쳐 외삼문을 지나니 유생들이 공부했던 명륜당(明倫堂) 건물이 있습니다. 유생들의 서예 솜씨를 뽐내듯 붓글씨를 전시해 명륜당의 명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명륜(明倫)은 ‘인간의 윤리를 밝히다.’란 의미를 가진 한자로, 『맹자』 등문공편(滕文公篇)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에서 유래했습니다. 명륜당과 동재 사이의 작은 문으로 들어서니 내삼문 앞에서 ‘추기석전대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내삼문과 명륜당 사이의 50평 남짓한 공간을 두고 서쪽은 서재, 동쪽은 동재의 건물이 있습니다. 서재와 동재는 유생들의 기숙사입니다.

▲ 명륜당 앞에 진열 된 붓글씨

▲ 명륜당을 둘러싼 소나무와 왼쪽 건물이 동재 오른쪽 건물 서재의 모습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大成殿)의 건물이 고고한 자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태안향교는 4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모두 수령이 240년 이상입니다. 태안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지요. 나무의 높이가 23m에 달하고 둘레가 2.2m에서 2.9m에 달합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주는 은행나무 그늘은 무척이나 시원합니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공부를 하다가 이곳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늘 행사를 안내하는 현대의 유생들은 너무 더워서 전기세를 걱정합니다.

▲ 은행나무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는 행사 진행자들

태안향교 대성전에는 5성, 10 철, 송조 6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5성은 대성지성문선왕 공부자(大成至聖文宣王 孔夫子)인 공자와 그의 수제자 복성공 안자(復聖公 顔子) 안회, 종성공 증자(宗聖公 曾子) 증삼, 공자의 손자인 술성공 자사(述聖公 子思), 그리고 맹자를 의미합니다. 10 철은 공자가 아끼는 제자들로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계로, 자유, 자하입니다. 송조 6현은 정호, 주희, 주돈이, 정이, 소옹, 장재를 의미합니다. 18현은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를 의미합니다. 5성, 10 철, 송조 6현은 중국의 성현들이고, 18현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르는 우리 민족의 성현입니다.

▲ 대성전의 모습

▲ 18현 중 대성전 왼쪽에 모셔진 9현의 위패

석전대제(釋奠大祭)가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8현의 위패가 포함된 제례의식이기 때문일까요. 대성전의 중앙에 있는 공자의 위패와 제례상의 흰 종이를 치우는 것으로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위패의 위치도 중국의 5성 10 철은 중앙에 송조 6현은 중앙의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성현인 18현의 위패는 9현은 동쪽 벽에, 나머지 9현은 서쪽 벽에 위치해 있었지요. 제례의식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석전대제의 주인공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노나라에서 송나라에 이르는 성현들을 대한민국의 무형문화재로 제례를 지내는 것이 의아합니다.

▲ 공자의 위패를 열고 제례상을 준비하는 모습

▲ 5성 10철 송조6현 18현의 위패와 제례상

절차는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분헌례, 음복례, 망예례 순서입니다. 식전행사를 포함하면 2시간 정도 걸리는 시간이지요. 매서운 늦더위에 예복을 갖춰 입은 행사 관계자들의 얼굴에 땀방울과 순서를 잊은 현대 유생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사뭇 웃음을 자아냅니다. 현대인들이 조선시대의 제례의식을 대행한다는 어색함이 아쉽습니다. 조선시대 유교는 배척사상이 강하고, 확증편향된 논리로 이기주의를 양산했지요.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불교에 대한 배척과 유교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비들의 논리는 이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거대한 은행나무에 몸을 숨기고 한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처럼 집사인 알자의 ‘전폐례!’, ‘초헌례!’ 목소리만 대성전 앞마당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 대성전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고 얼굴을 닦는다

▲ 전폐례의 구호에 맞추어 절을 한다

태안향교는 특별한 행사 외에는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봄, 가을 석전대제와 기타 행사를 진행해도 1년에 4번 정도 개방을 하고 있지요. 조선시대 향교는 오늘날로 말하면 ‘공립학교’입니다. 향교에서 사서삼경이나 논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지자체의 선택적인 정책 때문입니다. 향교를 자라나는 아이들의 유교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석전대제의 초헌은 보통 지방자치단체장이 맡습니다. 매년 진행하는 석전대제를 보면 몇몇 관계자들의 요식적인 의례로 보입니다. 태안향교는 석전대제를 오전에 진행하고, 오후에는 ‘유림의 날’ 행사를 진행하면서 ‘휘호시연’이나 ‘투호놀이’를 합니다. 어른들이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잔치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 관계자들이 내삼문 앞에서 식순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를 하면서 작은 대통령들이 난무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그 지방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려고 하지요. 전임자의 치적을 자신의 공적으로 덮는 행위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지역의 브랜드 로고나 마스코트가 바뀌지요. 전임자의 치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자체의 특성을 살리려는 의미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전임자의 치적을 인정하고 그 치적보다 더 가치 있는 공적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정치입니다. 자신의 공적이 후임자에게 치적으로 인정받고 후임자는 더 가치 있는 공적을 쌓는 정치가 그리워집니다.

▲ 명륜당 뒷 마당에 식순을 진행하는 모습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단군조선의 철학과 사상이 담긴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유교의 인(仁확)을 포함합니다. 공자와 제자들의 사상과 철학을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체성(主體)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족의 근간(根幹)은 국민들의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명륜당 앞마당에 석전대제를 지내는 관계자들을 위한 음식상이 차려집니다. 제사를 지냈으니 음식으로 음복을 하는 것은 옳습니다. 몇몇 사람들의 제사나 행사가 아닌 지역의 행사로 승화될 수 없을까요. 이웃지간의 정(情) 그리운 주변의 독거노인이나 약자들에게 태안향교의 석전대제는 어떤 의미일까요? 명륜(明倫)의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히다.’란 뜻이 무색합니다.

▲ 명륜당 앞마당에 잔치상이 차려지는 모습

태안향교 입구 주변에 있는 ‘예절관’이란 건물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에게 유교적인 예절을 교육하는 곳으로 보이는데 적막하여 발길이 닿지 않습니다. 국민의 혈세가 제대로 쓰이는지 궁금해지네요. 선조들의 문화적 가치를 현대의 생활에 접목하여 실용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선조들의 문화재에 있습니다. ‘문화’는 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수천 년을 아우르는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이 9월의 햇빛처럼 대지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 예절관 건물 모습

‘태안향교- 추기석전대제’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향교길 7 태안향교

○ 운영시간 : 행사 시 임시개방

○ 관람료 : 무료

○ 문의 : 041-670-5937

○ 사이트 : https://www.heritage.go.kr

○ 취재일 : 2024년 9월 10일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나드리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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