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묻어나는 경주읍성

오늘은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묻어나는

경주읍성에 대해 함께 알아보려 합니다!

산책 가기 좋은 곳으로만 생각했던

경주읍성인데 이렇게 알아보며,

역사적 가치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경주읍성은 고려현종 3년(1012) 때

축조되었다고 추정되고 다양한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읍성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합니다.

당시 경주는 중앙정부와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이런 읍성이 필요했던 것이죠.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타고 허물어졌던 이 성은 인조 10년,

영조 21년을 거치며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세종, 선조, 영조,

고종에 이르기까지 경주 읍성에 많은

증·개축 과정과 내·외부의 구조 변경이

있었음을 문헌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경주 읍성이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어떻게 변화하면서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경주 읍성에는 4대 성문이 있었는데,

동쪽에는 향일문, 서쪽에는 망미문,

남쪽에는 징례문, 그리고 북쪽에는

공진문이 있었습니다.

특히, 남문인 징례문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려있는

신라 성덕대왕 신종이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주 읍성이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에 대부분 헐려나가고

동벽만 약 50m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많은 유적들이

훼손되었던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주 읍성의 가치를 인지하고

이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경주읍성 정비복원 기본계획"

수립하고, 2018년에는 동성벽과 동문의 복원,

주변 탐방로 정비를 완료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주변의 노후 불량주택을

매입 정비하고 북쪽 성벽 등의

복원정비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최근에는 경주시가 '경주읍성' 동북쪽

성벽 215m 구간을 추가 복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석축으로 개축했던

모습을 재현해 도심 관광과 경제 활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주읍성은 현재는 일부만이 남아있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 작업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들이 계속되어

고려시대의 중요한 유산인 경주 읍성이

완전히 복원되어 그 역사와 문화를

후대에 전달하길 바랍니다.

2023 경상북도 SNS 서포터즈

윤여진 님의 글과 사진입니다. ​

* 본 게시글은 경상북도 SNS 서포터즈의

글로 경상북도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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