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소들공원과 농민운동기념비

1894년 1월 충남 합덕에서

농민들의 항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민씨 정권의 부패와 일본의 경제적 침투로

농민들이 극도로 피폐해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소들공원의 합덕농민운동기념비를 찾아보며 ..

"형님,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그의 말에 수백 명의 농민들이 웅성거리며 답답함을 토해냈다. 어둑한 저녁, 벌써 모인 사람들만 약 800명이 넘었다. 이른 봄의 쌀쌀한 기운에도 모두 얼굴이 상기된 채,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찬 표정이었다.

"우리한테 남은 게 뭐라고 자꾸 빼앗아가! 합덕지 근처도 자기 땅이라며 막아버렸다잖아."

나성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땅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작지만 강했다.

"홍주목으로 가서 이정규의 악행을 알리고야 말겠소. 이대로 참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소!"

"맞소! 우리의 억울함을 모아 직접 나섭시다!" 누군가 힘주어 외치자, 사람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모인 800여 명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날 밤, 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위해 결심을 굳혔다. 내일이면 이 억울함을 풀어줄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서 ...

1894년,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서 발발한 합덕 농민항쟁은 단순한 농민들의 반란이 아니었습니다. 이 항쟁은 당시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고 합덕에 온 이정규의 탐학과 억압에 맞서 싸운 농민들의 힘겨운 저항이었으며, 그들이 겪은 고통과 분노가 모여 이뤄낸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894년, 조선은 외척 세도가의 부패와 일본의 경제적 침투로 농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합덕 지역 역시 이러한 정세의 영향을 받아 피폐해져 갔습니다.

이정규는 합덕지 주변의 농민들을 위협하고 착취하여 지역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그는 농민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을 고갈시키는 등 악행을 일삼았고, 이러한 행위는 합덕 지역 주민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합덕농민항쟁은 1894년 1월 20일, 합덕 방죽 근처의 도랑댕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약 800명의 농민들이 모여 이정규의 악행을 홍주목에 호소하기로 결의하였고, 그들은 대표를 선출하여 이정규의 범죄를 기록한 ‘혈원록’을 작성하고 홍주목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정규는 농민들의 진정을 악의적으로 무시하고, 그들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사태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농민들은 그날 밤 다시 모여 이정규의 집을 포위하고 그의 악행에 대한 응징을 결심했습니다. 이정규는 농민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했지만, 이미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고, 결국 그의 집과 친지들의 집들이 불타는 결과를 맞았습니다.

정부는 이정규의 악행에 대해 처벌을 내렸지만, 항쟁의 주도자들 역시 유배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후 농민들은 다시 홍주목과 공주 감영에 진정을 했고, 결국 이정규는 2년간의 유배형을 받았으며, 농민들의 대표인 나성로도 함경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덕 농민항쟁은 동학 농민 전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소들공원은 이러한 농민들의 의로운 투쟁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그들의 희생과 용기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합덕농민운동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1997년, 합덕농민운동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기념비에는 농민들의 분노와 결단, 그리고 그들의 싸움을 통해 이루어진 변화를 기억하기 위한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소박한 농민처럼 소들공원은 접근하기 쉽고 규모는 작습니다. 하지만 운동하거나 산책하기에는 최상입니다.

그리고 경치도 좋고 게다가 이곳은 과거 합덕에 대한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곳입니다.

이곳은 여느 공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관심 없어 할지도 모르지만 농민운동은 동학농민전쟁과 연결되어, 농민들의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약간 선구적인 역할을 한 거죠. 그리고 합덕 농민운동이 발생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 1997년 12월 30일, 당진의 소들 공원에는 이 운동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이곳에 세워진 것입니다.

소들 공원 주변을 더 둘러보겠습니다. 일단 초반에 비탈길이 약간 있습니다만 일단 올라오시면 우거진 나무들이 사방에서 반겨줍니다.

그리고, 공원에서 많이 보이는 운동하기 알맞은 기구들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농민운동에 대해 많이 찾아보니 과거나 지금이나 유능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당시 이정규라는 수리계장은 합덕지의 농업 자원을 독점하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며, 개간지와 같은 지 역 자원을 사유화하는 등의 불법적인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과거 기록을 보면 완장을 차고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농민들이 상소를 올렸는데 그러한 사람들을 다시 죽이라고 명령한 서신을 보내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은 결국 봉기를 일으켜 이정규의 집을 포위하고 불을 지르는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공원에도 마치 그때의 불을 상징하듯이 지금 단풍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푸르른 하늘과 대비되어 선명하게 보입니다.

결국 이정규는 정부의 조사와 처벌을 받았지만, 농민들이 겪었던 고통과 억울함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합덕 농민항쟁은 당시 봉건적 지배 구조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이 사건은 동학농민운동(1894)과 같은 다른 대규모 농민 운동의 서곡이자 중요한 배경이 된 것입니다.

소들 공원의 주변 산책길은 경치가 좋아서 과거를 회상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과거 역사의 고행을 상징하듯 자갈로 된 지압 길도 보입니다.

과거에 고생했던 원남참전전우기념비도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변에 작은 산책길이 이어집니다. 당시 사람들의 의로운 투쟁을 기리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관광버스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는데요.

역사적 중요성을 알리는 장소라서 그러한 것 같습니다.

소들 공원의 상단 주변 경치입니다.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곳곳에 CCTV로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바쁜 현대 일상이 계속됩니다. 잠시나마 마음을 안정시킬 장소가 필요하시면 소들 공원에 들려서 당시 사람들의 회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냥 잠시 쉴 수 있는 벤치도 잘 마련되어 있답니다. 한번 둘러보시면 과거 역사도 생각나면서 불끈 용기가 생기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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