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들의 관심과 시선이 집중되었던 제33회 프랑스 파리 세계 올림픽 대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지구촌은 더한층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와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올림픽 대회의 가치와 원칙을 대표하는 개념인 올림픽정신은 인류의 평화, 우정, 협력, 존중, 국제적 이해 등을 표방함으로써 선수들과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가 이를 따르고 지키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차별없는 평화롭고 더불어 번영을 누리며 진보하는 세상은 반드시 오리라고 본다.

입추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30도를 웃도는 폭염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있다. 이번 8월에는 오산 화성궐리사에서 쉼과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면서 파리 올림픽의 여파로 남아있는 흥분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거 같다.

▶ 오산 화성궐리사는 경기도 오산시 궐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공자만을 모신 사당이다. 오산 화성궐리사는 논산의 노성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제2대 궐리사중 하나로서 1792년 정조 16년에 서원적 사당으로 친필 사액된 것으로 대성 공자를 봉안하고 있다. 외삼문 앞에 세워진 홍살문은 신성한 곳이라는 영역표시하기 위함 이면서도 사악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하기위해 세워졌다.

▶ 오산 화성궐리사 성묘에는 정조가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다가 화성궐리사에 내려주었던 공자 초상화가 모셔져있다. 오산 화성궐리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공자만을 모시는 사당이며 성묘란 이름은 정조가 하사한 명칭으로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화성궐리사의 중심공간이다.

▶ 화성궐리사를 세울때 정조대 당시 영의정 채제공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이다. 제사를 지낼때 향으로 쓰기위해 심었다고 한다.

▶ 1993년 공자의 고향 산둥성에서 기증받은 공자와 그의 애제자들의 석조상이 안치되어 있는 성상전의 모습이다.

석상을 모신 기단부에는 공자가 태어난 때의 모습을 조각으로 새겨놓았으며 공자석조상 좌우에는 공자의 학통을 이어받아 대성을 이룬 4성위의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의 성현들이 공자를 모시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지치고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공자는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할까? 공자의 가르침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자.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자왈: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공자는 “경제적인 부를 추구할 수만 있다면 설령 채찍을 잡고 말을 모는 하찮은 직업일지라도 나는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할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을 추구할 수 없다면, 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을 것이다."고 하였으며, "그러나 부에는 운명이 있으니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리에 안주할 따름이다. 헛되이 치욕을 당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다. 공자가 말한 종호소호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싫증은 커녕 그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세상에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취미활동이나 운동과 여가활동에 전념하는 메니아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메니아들이 일정한 시간과 함께 탁월한 능력을 키워서 그분야의 아웃라이어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순위 8위에 드는 진기록을 세웠다. 대체적으로 MZ세대들로 구성된 양궁, 펜싱, 사격, 베드민튼 그리고 태권도에서 금메달 13개를 획득하였다. 선수들의 고군분투도 눈에 띄었지만 대체적으로 선수들은 어릴적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에 시간과 정성을 쏟았고 전념한 결과 오늘에 금메달의 영예를 얻을 수가 있었다.

8월은 광복절이 들어있는 달이기도 하다.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찾겠다는 신념 하나를 가지고 헌신한 결과 오늘의 광복을 맞이할 수가 있었다. 유려하고 기품있게 격변의 시대를 살다간 독립운동가 김가진(1846~1922)은 1910년 한일강제합병이 이루어지자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부하고 칩거에 들어갔다가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 역시 분연히 일어나 그해 10월 73세 노구를 이끌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으로 추대돼 독일운동에 힘쓰던 김가진은 1922년 77세로 타계했다. 그는 파란만장했지만 거칠 것 없이 격변의 구한말~일제강점기를 통과해온 독립지사이자 서화가 였다. 김가진은 자신의 삶을 요약한 '종호소호(從吾所好·내 좋아하는 바를 따르라).'라는 서화를 남겼다. 기러기 날갯짓같이 유려한 행초서로 쓴 그의 글귀는 약삭빠른 처세와 출세대신에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 고난과 가난으로 점철된 독립운동가의 길을 결연하게 걸어갔던 인물로써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구한말~일제강점기 서예가이자 독립운동가 김가진이 행초서체로 쓴 논어구절 '종오소호(從吾所好)'이다.

유려하고 기품있게 격변의 시대를 살다가 그의 삶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서체이다.

▶ 오산 화성궐리사의 행단의 모습이다. 행단은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중국 곡부의 행단과 비슷하게 꾸며놓았다. 2009년 10월 22일 준공식을 거행했으며 우리나라 궁궐양식으로 이루어낸 한국 최초의 유일한 행단이다.

▶ 화성궐리사 경내에 수백년의 세월의 풍상을 의연하고 기풍당당하게 버티며 서있는 은행나무이다.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 선생이 낙향하여 강당을 세우고 강당 앞에 손수 은행나무 한 그루를 심은 후 북을 달아놓고 문하제자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치며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그 나무가 자연 고사하였다가 정조 때 화성궐리사를 짓게 하고 사액서원을 세우는 가운데 은행나무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 하며 오산시의 명물이기도 한 화성궐리사 은행나무는 수령은 500년 이상이고 수고 17미터, 나무둘레 5.9미터로 오산시 보호수로 1982년 10월 15일에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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