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의 호흡이 12월에 담겨 풍경이 되는 의병탑과 충익사
의령의 호흡이 12월에 담겨 풍경이 되는 의병탑과 충익사
의령군 블로그기자 조윤희
의병탑
-주소: 경남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25(지번. 중동리 산6)
-1972년 4월 22일 건립
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몇 차례를 여행 삼아 들렀던 의령의 시간을 돌아볼 겸 해서 (제가 생각하기에) 의령의 상징같이 여겨지는 의병탑과 충익사를 둘러보러 왔네요.
하늘은 하 맑은데 갑자기 눈발인지 빗방울인지 렌즈 앞을 흐트러뜨리네요.
봇짐 쌀 시간도 없었던 계절이 새 계절 앞에서 꽁지를 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의병탑은 의지(意志)의 상징처럼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게 다가옵니다.
의병탑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와 휘하에 있던 17명의 장수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탑으로, 1972년 4월 22일 의령군 남산 기슭의 남산천변에 의령군민들의 성금으로 건립한 탑이랍니다.
탑 중앙에 둥근 고리가 18개 있는데 이것은 곽재우와 17장령을 상징하고, 고리를 지탱시키는 양쪽의 팔자 형태 기둥은 횃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고리 중간에 한글로 의병탑이라고 적혀 있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랍니다.
27m 높이의 탑 양쪽 하단에는 곽재우 장군의 모습과 의병들의 전투 장면을 부조로 형상화해 놓아서 나라와 민족을 위했던 시간을 잊지 않게 하려는 의령의 의지임을 엿보았네요.
흩날리던 물 알갱이들이 잠시 멈추고 맑고 따뜻한 햇살이 의령군을 포근히 감싸는 것 같아서인지 의병의 발상지요, 의병의 투혼이 살아 있는 의령군의 모습을 의병탑 앞에서 바라본다는 것 또한 참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충익사
-주소: 경남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지번. 중동리 4668)
-의령 9경 중 제 1경
의병을 둘러보고 충익사로 걸음을 옮기는데 제가 충익사를 방문한다는 것을 하늘이 알았을까요?
얼마나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던지 사진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음이 안타까울 정도였답니다.
충익사는 곽재우 장군의 사당이므로 흡연, 고성방가, 취사 및 음식 반입, 애완동물 동반 입장, 자전거 진입, 수록 훼손 행위를 금하오니 협조 바란다는 충익사 관리사무소의 당부와 관람 시간 안내가 입구에 세워져 있답니다.
입구인 충의문 뒤쪽으로 산과 구름이 데깔꼬마니처럼 펼쳐진 그림 같은 자연의 연출 앞에서 그저 감탄만 하다가 얼른 사진으로 담아보았네요.
충의각
-경상남도지정 문화유산자료(2010 12. 09. 지정)
충의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비각이 있습니다.
'충의각'은 1910년도에 초창 된 장엄하고 회려한 비각 형식의 출목익공식 팔작집으로 불교건축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전통건축물로서 의장적, 기술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아서 지난 2010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받았답니다.
청, 적, 황, 흑, 백의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사용한 충의각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1978년부터였다고 하지요.
비각이라고 보기보다는 왕국을 축도해서 지은 것 같이 화려한데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답니다.
정원을 지키고 있는 모과나무, 배롱나무, 서목서향...
1987년 5월 19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83호 충익사 모과나무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의령 충익사 모과나무(宜寧 忠翼祠 모과나무)로 명칭으로 변경되었는데,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8.5m, 둘레는 3m이며, 수성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하던 당산목으로 토속신앙의 대상이었으나 1978년에 곽재우 장군 유적지 정화사업을 실시할 때 충익사로 옮겨졌다고 하지요.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장령 및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의령 제1경인 충익사 경내에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었을 더운 여름날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을 텐데 12월은 배롱나무의 화려함 대신 사색의 문을 열게 하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나무들의 수피 색깔이 코뿔소의 가죽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목서. 봄날에 온실 안에 들어선 것 마냥 겨울의 꽃 구골목서가 충익사를 온통 향기로 채움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자칫 외로울 수 있었을 시간 속에서 꽃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네요. 이렇게 많은 구골목서 군락은 처음 보는 것 같았고요.
정원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연못 또한 빼놓을 수 없지만 겨울의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은 보기에 좋은 모습이랍니다.
곽재우와 열일곱 장수의 위패를 봉안하는 충익사는 사당, 기념관, 충의각, 충현정, 충의문, 홍의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충익사(사당)
충익사의 내삼문이자 제향 공간의 정문인 홍의문을 들어서면 그 공간은 성역이 된답니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이름, 신과 사람이 만난다는 의미를 지닌 '내신문'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답니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익사 사당이라고 부르는 사당 안에는 홍의장군 곽재우와 휘하 17장수 그리고 무명의 의병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답니다. 1972년 이래로 매년 의병 창의일인 4월 22일 의병 제천 행사와 더불어 추모 행사를 가지는데 음력 87월 28일에는 장군의 탄신 다례를 올리고 있다고 하네요.
망우당 곽재우.
명종 7년인 1552년 8월 28일 외가인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 태어나 1585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지만 답안의 내용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파방되자 과거를 포기하고 자연과 더불어 시와 함께 초야에서 지내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국토를 유린하자 그해 4월 22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왜군의 침략을 막았던 의로운 장수였답니다.
항상 붉은 옷에 흰말을 그래서 홍의장군이라 불린 장군은 17명의 장수와 수천의 의병과 함께 낙동강과 남강을 주요 거점으로 뛰어난 전술과 전략으로 왜군의 보급물자 차단과 전라도 진격을 저지함으로써 왜군의 전쟁 수행에 막대한 차질을 안겨주었으며, 왜란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사후에 충익이라는 시호와 함께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고 해요.
마치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나라를 향한 절개와 충심을 대변하듯 사당 바로 옆에는 오죽이 세월을 이기고 지켜 서 있더군요.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뒤덮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온 햇살들의 항거가 홍의문을 비춥니다. 충익사의 외삼문인 충의문을 들어올 때와 달리 지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풍성한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지만 끝내 비를 못 뿌리는 것처럼 보여 발걸음을 빨리해 귀갓길에 오릅니다.
가을의 자리가 서서히 물러나며 겨울이 진입하려는 충익사의 뜨락에는 은행잎의 누런 아우성이 바닥에서 숨을 쉽니다. 새 생명을 위한 진혼곡이라도 울리고 있는 것처럼 나뒹굴지만 처연하게 보이니 말이지요.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타자마자 참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문을 열고 비를 뿌려댑니다.
제가 둘러볼 만큼의 시간을 허락한 하늘은 의령의 12월을 더욱 풍성하게 겨울로 채워가겠지요.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도록 연중 개방하고 있는 의령탑과 충익사에서 여러분의 12월을 계획하고 내년의 시간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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