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의 끝에 하굿둑이 있다. 여기서 바다와 낙동강이 나뉜다. 그러니 을숙도는 강과 바다를 다 품은 섬이다. 하굿둑이 강물과 바닷물을 완전히 갈라놓기 전에 을숙도는 섬 대부분이 갈대밭과 습지였다. 을숙도에 가기 위해서는 하단 선착장에서 통통배를 탔다. 갈대와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마지막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연인들과 친구들은 같이 손잡고 갈대밭 사이를 뛰어갔다.

부산은 해운대, 광안리, 송정 같은 해수욕장이나 바다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도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이 낙동강이고, 부산이 낙동강의 끝에 있는 ‘강의 도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늘에서 본 낙동강 하구.

길은 외줄기, 강물 위에 철새가 날 듯 구름에 달 가듯 걷는다. 감전야생화단지에서 을숙도 방향으로 외줄기 포장길을 걷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와~!” 그 외의 감탄사는 잠깐 꺼두는 것이 좋다.

엄궁어촌계 장인도선착장. 유명한 일몰 맛집이다. 삼락생태공원 전체가 포토존이지만 그 중 단연 압권은 장인도선착장이다. 값비싼 DSLR 카메라 없이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장인도선착장. 주변 풍경은 하루하루 다르게 푸른 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장인도선착장이라고 했으니 분명 섬이 있을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섬은 보이지 않는다. 물속으로 가라앉았을까? 본래 이 지역엔 4개의 큰 모래섬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장인도였다고 한다. 장인나루터가 있던 자리다. 건너편이 맥도생태공원이다. 삼락생태공원 끝단에서 을숙도까지는 외길이다. 낙동강과 강변대로가 나란히 달린다. 낙동강 쪽 보행로는 이름하여 ‘노을나루길’이다. 낙동강은 하굿둑이 가까워질수록 강폭이 넓어지고 강변대로는 차들의 물결이 더 빨라진다.

재첩국 아지매의 고향 엄궁항

차들은 빠르게 달려가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철썩이며 흐르는 강둑길을 따라서 저 멀리 하굿둑이 가까워질 무렵 엄궁항을 지난다. ‘여기는 엄궁항입니다.’ 안내판이 서 있다. 굉음 속에서 어안이 벙벙해진다.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이곳이 정녕 엄궁항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곳은 항구다. 학장1교 다리 밑에 엄궁항이 있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면 고깃배들이 모여 있고, 엄궁어촌계 사무실도 있다.

엄궁은 재첩과 장어로 유명했다. 특히 엄궁 재첩은 씨알이 굵고 맛좋기로 유명했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에 산다. 엄궁·감전·삼락 재첩이 유명했던 이유다.

재첩은 재첩국 아지매가 전문적으로 팔았다. 부산에는 ‘3대 아지매’가 계신다. 자갈치시장 아지매, 엄궁 재첩국 아지매, 영도 깡깡이 아지매. 밤새 끓인 재첩을 양철 양동이에 이고 새벽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재첩국 사이소~”를 외쳤던 재첩국 아지매의 고향이다. 하지만 1987년 하굿둑 준공과 큰 공단이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을숙도 생태공원 강변을 걷고 있는 시민들. 사진 : 권성훈

아! 을숙도, 문화·생명이 모이는 섬

강은 흐른다. 강은 말없이 흐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강은 제 이름마저 버리고 바다가 된다. 강이 바다가 되는 것을 시인은 ‘미칠 일 하나’라고 한다.

저것 봐, 저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江 중에서

낙동강 하굿둑은 완공된 지 35년 만인 2022년 2월 공식적으로 수문이 열렸다. 수문이 개방된 뒤로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면서 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물고기가 나타났고, 사라졌던 재첩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하굿둑에 막혀서 오가지 못하던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바다와 강을 오가게 된 것이다. 그만큼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졌다.

부산현대미술관,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철새탐조대 모습. 사진: 권성훈

지금은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부산현대미술관, 을숙도문화회관과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들어서 서부산의 대표 문화거점공간이 됐다. 미술관 벤치에 앉아서 AI에게 물어봤다.

“을숙도를 정원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AI의 대답은 이렇다.

“을숙도를 정원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을숙도는 부산의 중요한 생태 자원이자 철새 도래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의 보존과 정원 조성 사이에는 신중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정원 조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자연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면서도, 을숙도의 자연 환경과 서식지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정원 조성을 고려한다면, 환경 보호와 생태계 유지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고, 로컬 식물들을 이용한 정원 디자인을 통해 생태계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백조의 호수 ‘맥도생태공원’

강을 건너 맥도생태공원 쪽으로 간다. 봄이 되면 벚꽃터널이 되는 자전거길과 맥도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메타세콰이어길이 있다. 메타세콰이어길을 걸어서 연꽃단지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소란스런 소리가 들린다. 귀에 익은 소리다. 연꽃단지가 백조의 호수로 변했다. 큰고니 150여 마리가 쉬고 있다. 엉덩이를 들고 물속에서 먹이를 찾거나, 머리를 날개에 파묻고 잠든 모습, 서로 큰소리로 다투다가 활짝 날개를 펴기도 한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듯이 희고 큰 날개를 퍼덕이며 수면을 박차고 뛰어가다가 서서히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큰고니는 낙동강 하류 지역에 도래하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천연기념물이다. 주로 인적이 드문 을숙도 일대에서 겨울을 나는데 맥도생태공원에 먹이터가 조성되면서 이동했다고 한다. 인구 330만의 대도시 옆에 이렇게 훌륭한 생태자원이 공존하고 있고, 잘 보존되고 있다는 건 사실 놀랍다.

날아오르는 큰노니들. 사진제공 : 국제신문

맥도생태공원을 비롯한 낙동강 일대는 11월부터 조류독감 예방과 겨울철새 보호를 위해 진입로들이 통제된다. 출입금지 표지와 현수막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니 도로변 가까이에서 큰고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인 동시에 조심해야 할 일이다. 새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차량 서행과 행동을 조용히 해야 한다. 나무 뒤에 몸을 가리고 붙어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큰고니 멍’을 때린다.

낙동강생태공원을 ‘K-정원’ 표준으로

그동안 부산의 낙동강은 외곽에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해수욕장과 바다 쪽에 비해서 많이 소홀했다. 멀리 한강에 비교할 것도 없다. 주변에 고층건물, 문화시설이 밀집해 있는 수영강과 비교해도 뒤떨어진다. 접근성도 좋은 편이 아니다. 뛰어난 생물다양성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삼락생태공원을 제3호 낙동강국가정원으로 만드는 일이 부산의 고질적인 동서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부산의 공간 대개조를 이루는 것과 바로 직결되어야 하는 이유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여러 외국 사례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특히, 유럽의 정원 도시들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의 다양한 국가에서도 정원 관련 사례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했다고 말한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핵심 가치는 뛰어난 생태적 다양성에 있다. 갯벌과 갈대숲, 그리고 다양한 생물종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라는 점을 자랑하고 있다.

부산은 어떤가? 낙동강 하구는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나 쇠제비갈매기가 날아오는 철새 이동 경로상의 대표적인 철새 서식지이자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생태보전지역이다. 우리나라 200곳의 철새도래지 중 철새 종 다양성 1위이기도 하다. 낙동강 하구의 아름다움은 가히 세계적이다. 가꾸지 않아서 그렇다.

기후위기시대에 세계는 하구의 자연성 회복과 가치에 주목한다. 삼락생태공원이 제3호 낙동강국가정원을 넘어서 을숙도, 맥도생태공원과 함께 ‘K-정원’의 표준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으리라 믿는다. 낙동강국가정원 만들기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흐른다. 강은 새와 풀과 돌과 흙과 바람 사이로 흐른다. ‘사이’를 두지 않으면 강은 흐를 수 없다. 흐르지 않는 강은 고정형이며 과거형이다. 그러기에 강은 늘 현재며 미래다. 강은 미래를 향해 흐른다. 강물소리가 귓전에서 철썩거린다.〈끝〉

글·원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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