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가 제철!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이번 송년회 모임의 식사 메뉴는 방어회였다. 모임 회원 중 한 분이 제주도에서 열리는 ‘방어축제’를 다녀와서는 방어가 제철이라 이번 모임 메뉴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제주에서 올라온 산지 직송은 아닐 지어도, 동네 유명한 횟집에서 포장해 온 방어회는 그 특유의 붉고 두툼한 모양새가 꽤나 먹음직스러웠다. 방어로 한 상을 차려놓고는 그간 지내온 이야기들, 책과 서점 이야기들(동네서점 운영자들 모임이었다.)을 나누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그 많던 방어도 어느새 텅 비어 밑판에 깔린 얼음팩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회 맛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과거에 누군가 광어와 우럭의 차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는 꽤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저 식감의 차이로 광어와 우럭, 연어와 방어와 고등어 정도는 이제 구분할 수 있긴 하지만, 여전히 회의 맛은 초장의 맛 밖에 알지 못한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참 신기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지난밤 맛있게 먹었던 방어는 온 데 간 데 없이 송어가 둥둥 떠다녔다. 영월로 들어서는 길목부터 보이는 ‘송어횟집’ 간판 때문일까? 모두가 겨울이 오면 ‘방어가 제철!’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지금 시즌은 송어가 제철이기도 하다. 내가 중부내륙에서 나고 자란 시골사람이라 그런지, 고등어회나 방어회도 좋지만 역시 내 입에 익숙한 회는 송어회다. 빨간 속살에 온갖 야채를 채 썰어 넣고는 콩가루와 초장을 넣어 무침을 해놓은 그 새콤달콤한 송어회. 지난밤 먹다 지쳐 쓰러질 만큼 방어회를 잔뜩 먹었지만, 어쩐 일인지 자꾸만 입안에서 감도는 그 맛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송어횟집’의 간판을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살펴봤다.

영월에는 다양한 특산품이 있지만, 송어만큼이나 특별한 특산품이 어디 있을까. 민물고기를 사용한 요리들, 날로 먹는 회와 끓여 먹는 매운탕. 도시 출신의 내 또래 지인들 중에는 생각보다 민물고기를 먹어본 경험이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그 수가 한 손에 꼽힐 만큼 적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민물고기는 건강에 해롭다는 옛날 옛적의 인식도 있었기 때문에 거리감을 두는 경우도 많았고. 이 맛있는 걸 안 먹거나 못 먹는다니, 하나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지인들이 영월로 오면 꼭 먹이는 음식 중 하나가 송어회다. 약간의 거부감을 보이던 사람들도 앞서 말한 대로 이런저런 양념들을 넣어 슥슥 비벼주면 일단 그 냄새에 홀려 ‘한 점만 먹어볼까?’하며 젓가락을 내밀기 시작하고, 일단 그렇게 한입 맛을 보면 민물고기인지 바닷고기인지 더 이상 따지지 않게 된다. 맛있으니까!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눈앞에 송어가 아른거려서 참다 참다 결국 주문을 하고 말았다. 방어회를 배불리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송어회로 배를 채우는지. 하지만 마주한 송어회는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생으로 몇 점을 먹어 맛을 본 후, 큰 양동이에 송어와 야채와 다진 마을과 기름과 초장과 콩가루를 듬뿍 담아 요리조리 무친 다음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오오, 미미(美味)! 아름다운 맛! 거부할 수 없이 소주를 부르는 맛!

그야말로 송어가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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