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산청]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돌무덤을 찾아서
2024년 경상남도 온라인 홍보 명예기자단 조윤희
산청 전 구형왕릉
-주소: 경남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로 92-12
(지번. 화계리 산 16)
-국가사적 제214호(1971. 2. 9. 지정)
산청. 山(뫼 산) 淸(맑을 청)이란 지명은 산청을 여행하면 할수록 그 공간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와닿는 지역인 것 같습니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펼쳐놓은 짙은 녹음은 산청은 특히나 더 짙은 것 같습니다.
갈맷빛으로 물들었던 숲은 점점 다가오는 계절에 길을 터놓고 낯선 이방인에게도 환영의 빛을 담아 보내고 있는 구형왕릉을 방문했네요.
함께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을 만나러 가보실까요?
김해에 살고 있는 저에게 금관가야의 흔적을 산청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친근감이 느껴져 제 걸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는가 한편 반대로 책임감도 느껴진다고 할까요?
알고 보니 제가 찾은 구형왕릉은 산청9경 중 4경이더라고요.
구형왕릉이 자리한 곳은 산청 방장산(지리산) 중 왕산인데, 이곳은 가락국 시조 김수로의 태왕 궁지였답니다, 서기 162년 김수로 대왕은 첫째 왕자인 거등에게 나라를 양위하고, 방장산 자락에 별궁을 짓고 왕의 호를 보주 황태왕, 왕후를 보주 황태후로, 궁은 태왕궁으로 산은 태왕산으로 명명했다고 하는군요.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의미로 서원이나 향교에 설치하였으며, 집안 재실 또한 능과 묘에도 설치했으며 충신, 열녀, 효자 등을 배출한 집안이나 마을에도 설치하도록 했다고 하는 홍살문이 왕의 무덤으로 길을 터놓고 있었지만 세워진지 오래된 홍살문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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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이 멀리서도 보이는 개방형인 것도 특이했고, 계곡에서 왕릉까지 이어지는 두 개의 다리가 멋진 그림처럼 보였는데 수채화 배경으로 삼고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가락 지품천 태왕산은 구형왕께서 이거한 당시에도 수정 같은 맑은 물이 샘솟고 있어서 궁궐의 이름을 수정궁(水晶宮)이라 불렀다고 하는데요.
가락국의 역사는 거등왕, 마품왕, 거질미왕, 이시품왕, 좌지왕, 취희왕, 질지왕, 겸지왕, 구형왕에 이르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함으로써 막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가락국(가야)마지막 왕 구형왕(仇衡王)
오후에 들렀던지라 산 너머로 기울어지는 햇살이 비쳐주는 왕릉의 모습을 처음 보는 저와 함께하신 선생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답니다. 이곳이 왜 산청의 4경인지 알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나름 많은 자료들을 찾아봐도 구형왕의 출생과 사망 연도에 대한 기록은 없고 단지 재위 521년~532년이 그의 생을 대변하는 것 같이 안타까움만 돌무덤과 함께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네요.
532년 음력 9월 신라 법흥왕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해 오니 왕이 친히 맞서 싸우려 했으나, 군사적 열세로 대항하여 싸울 수 없어 동생 탈지 이질금(脫知 爾叱今)을 보내 본국에 머물게 하고, 왕자 및 상손(上孫) 졸지공(卒支公) 등은 항복하여 신라에 들어갔다고 하는 기록이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19년(532) 조에 기록되어 있다지요.
금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기 한 해 전인 구형왕 11년 531년(신라 법흥왕 18) 겨울에 밤마다 연자루(燕子樓)라는 누각에서 큰 소리가 나 도성인 금관성을 진동시키자 왕이 누(樓)를 헐도록 명하였다고 해요. 시조대왕의 옥첩(玉牒:왕실의 계보)에 ‘연자는 임자(壬子)이니 나라를 신라왕에게 전하여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명에 따라 구형왕은 왕위를 물려주고 산청 방장산에 들어가 버렸다고 하는 ...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빼앗긴 채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구형왕이 죽어가며 "나라를 잃은 죄인이기에 돌로 무덤을 만들어 달라"라며 남긴 그의 유언을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진 돌무덤. 그러나 삼국에 가려 먼 후대까지 전해 내려오는 자료가 많지 않아 구형왕릉이라는 설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제10대 구형왕의 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 전해지는 무덤이므로 전(傳) 자가 앞에 붙어서 전 구형왕릉(傳 仇衡王陵)이라고 한다지요.
구형왕릉은 기단석 총 7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높이는 7.15m, 둘레는 24m로
일반 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답니다.
산청 전 구형왕릉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돌로 쌓은 무덤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곳은 국가사적 제214호로서 석릉 주변에는 높이 1m의 담이 둘러져 있고, 앞에는 비석과 제단, 석등과 문무인석, 사자상 등이 배치되어 있더군요.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사당을 지어 7년 동안 시능을 하였으며 무예를 연마하며 삼국통일의 바탕을 이루었고 왕의 5대 외손인 신라 문무대왕은 제향을 받드는 비용으로 왕산 일대의 토지를 하사하였답니다.
전쟁의 피해에서 백성들의 안위와 목숨을 우선시했던 구형왕의 마지막 결단으로 나라는 역사 속에 사라졌지만 그의 후대는 또 다른 나라에서 이름을 떨치는 무장이 되었고 왕이 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비록 역사 속에서 잠시 빛을 발했던 금관가야, 가락국의 역사의 흔적이라 할지라도 어린아이와 함께 내일을 위한 어제의 시간을 들려주는 것도 바람직한 민족성과 세계관 고취에 좋은 교육의 산실일 것 같은 산청 전 구형왕릉으로 여행 삼아 구경 오세요. 산청 4경의 풍경이 점점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멋진 풍경에 힐링하실 수도 있으실 거예요.
산청 전 구형왕릉
✅ 주소 : 경남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로 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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