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나 옛 도심은 있습니다. 삶의 자궁이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곳입니다.

울산에도 원심 도시가 중구 성남동과 옥교동 일원에 있습니다.

울고 웃었던 추억의 여백이 살아 있는 울산의 원심 도시 중구의 거리를 소개합니다.

원심 도시의 첫걸음은 젊음의 거리 너머에 있는 눈부신 하츠(Herz)에서 시작했습니다.

스테인리스로 된 박범진 작가의 '하츠'는 열정과 사랑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먼발치에서 젊음의 거리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서있는 하츠는 사랑과 열정을 일으키는 공간으로써 거리를 걷는 젊은이들에게 확장과 활성화가 되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조명이 눈부신 젊음의 거리는 옛 영화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젊음의 거리는 만남이고 소통의 장소입니다.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원심 도시 명성에 걸맞게 젊음의 거리는 온통 화려한 빛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울고 웃는 인생의 여백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흔적과 풍경들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오래된 옛 거리의 풍경도 설핏 보이고, 현대적 문화와 예술의 새 옷을 걸쳐 입고 있었습니다.

울산의 원심 도시였던 중구 옥교동 옛 거리에 서서 옛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젊은 날, 낭만가를 불렀던 젊음의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가면서 말입니다.

옛 자취는 사라지고 없지만, 추억은 버젓이 발걸음을 총총 따라다닙니다.

화려한 간판을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옛 기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자주 드나들었던 다방과 고고클럽, 양복점과 술집이 즐비했던 곳을 차례대로 지나갑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던가요.

간판 너머로 젊은 날의 낭만이 판타지 명작 화면처럼 소환되었습니다. 기억에서 멀어져 간 일화도 스멀스멀 떠올랐습니다.

성남동과 옥교동 일원에 원도심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울산은 1970, 80년대 한국의 ‘산업 수도’였습니다.

당대의 흔적 위에 트렌드한 요즘 문화가 덧씌워져 있었습니다.

듬성듬성 생각나는 낭만은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 보냈기에 생생한가 봅니다. 간판이 나를 유혹하고, 나는 간판의 추억에 잠깁니다.

젊은 날로 돌아가 한바탕 춤판을 벌일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옛날 누렸던 낭만을 다시 한번 만끽해 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50m 거리에 다양한 포토존과 볼거리를 조성했습니다. 복고 감성을 자극하는 포차 술집 간판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습니다.

특히 질겅질겅 씹어 먹던 술안주를 생각하면 구미가 당겼습니다. 옛 추억을 퍼올리는 LED 불빛은 현란한 유혹의 빛이었습니다.

‘울산큰애기’ 조형물. 울산 중구 원도심을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유난히 피부가 곱고 상냥한 성품의 중구 여성을 일컫는다 했습니다.

가수 김상희가 1969년 발표한 노래 ‘울산큰애기’가 모티브가 됐습니다.

울산중앙시장은 역사와 맛, 그리고 사람들의 온기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울산의 대표 먹거리 천국으로 울산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이었습니다.

1922년 옥교(玉橋) 시장으로 시작한 이래, 100년이 넘게, 한자리에서 여러 가지 애환을 함께 해 온 울산중앙시장은 혼수품과 커튼, 그릇, 제기, 의류 등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 시설을 가진 울산중앙시장은 30여 가지의 먹거리가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때 울산의 물산과 생활필수품 거래의 중심지였고,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장 곳곳에 있는 골목에는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곰장어 골목은 울산의 대표적인 먹거리로 유명합니다.

가던 발걸음을 돌려 뒤를 바라봅니다. 지나오면서 놓쳤던 몇몇 간판들이 나를 손짓합니다.

어떤 간판이 안에 들렀다 가라고 슬쩍 눈길을 주지만 나는 추억에 빠져 관심도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거리를 걷고 있지만 쌍쌍입니다. 활기를 띠고 있어 좋았습니다.

어지러운 간판을 지나치며 거리를 활보해 봅니다.

나름대로는 차별적인 이름을 새긴 간판이지만 디자인과 가게 이름, 글꼴이 산만해서 어지럽습니다.

간판 중 더러는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세계화 추세에 걸맞게 영어 간판도 있고, 젊음의 거리에 걸맞게 한글과 외국어 간판이 자웅을 겨루고 있었습니다.

가독성이 떨어진 간판도 눈에 띄지만 대개 미술적 감성과 예술성이 깃든 간판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색찬란한 거리 간판의 서체가 율동하며 눈요기를 시켰습니다.

분야도 규모도 각기 다른 간판들이 저마다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매혹적인 헬베티카(Helvetica) 서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위스를 지칭하는 라틴어 ‘헬베티아’에서 딴 이름입니다.

애플이 만든 컴퓨터 매킨토시 기본 서체로 세계의 유수 기업들이 로고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미적으로 화려하고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간판들이 여전히 자신을 봐달라고 술렁입니다.

장소나 상품을 고객과 만나게 해주는 간판이 오늘은 밥값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간판들이 제 몫을 다하기 위해 화려한 빛을 반짝이며 호객행위를 해보지만 쉽지 않은 듯합니다.

원심 도시의 랜드마크인 시계탑이 옛 추억을 일깨워 줍니다. 일제강점기 성남 역사 자리에 시계탑을 건축했습니다.

또 울산역이 있던 자리를 추억하기 위해 울산역 원도심 시계탑 모형열차를 만들었습니다.

매시 정각에 모형기차가 시계탑 돔 위를 도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시계탑 사거리를 지나 문화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옛 문화의 흔적을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성남동 일대에는 '가로수'와 '명' 등 다방이 많아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문화 시설이 전무했던 그 시절, 다방은 전시장이자 문학과 낭만이 꽃 피던 공간이었습니다.

문화 예술에 대해 논하고, 전시회, 시 낭송회 등 문학과 낭만이 피어나던 공간이었습니다.

커피잔을 내밀며 ‘모닝커피 했습니까?’라며 묻는 남성의 조형물이 이 거리에 세워진 이유입니다.

격동의 산업화 과정에서 성공과 좌절을 맞본 이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서로를 토닥토닥 위로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이 골목에서 사람 그림자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더럽고 어두워서 간 큰 사람도 선뜻 들어가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길에 ‘시간의 골목’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경제개발의 그늘에서 길러낸 자식들이 먼바다를 돌아 회귀할 날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지 싶습니다.

현재 급격한 현대적 도시화로 거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익숙함과 편안함, 살아온 삶의 방식과 이야기가 그 의미와 가치를 잃어간다는 일이 안타깝습니다.

낡음이나 불편함을 피해 황금도시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지만, 장구한 세월 축적해온 옛것이 쓸데없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영혼과 정서도 메말라가고 작고 소박한, 공동체적인 삶도 머지않아 시야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길을 건너면 좁고 어두운 ‘똑딱길’을 걸어 울산시립미술관에서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시계 소리를 차음해 지은 거리 이름입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낭만의 거리 중구 젊음의 거리를 한 번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title":"울산의 원심 도시 중구의 거리를 걷다","source":"https://blog.naver.com/ulsan_nuri/223544896077","blogName":"울산광역시..","blogId":"ulsan_nuri","domainIdOrBlogId":"ulsan_nuri","nicknameOrBlogId":"울산광역시","logNo":223544896077,"smartEditorVersion":4,"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m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