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산사여행/ 산사 가는 길, 곡성 동악산 도림사와 도림사 계곡
천년고찰 도림사의 나이는 올해로 1363살
올여름 수많은 피서객이 도림사 계곡을 다녀갔습니다. 가을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도림사 계곡으로 향하는 지금도 발걸음은 끊이질 않네요. 청아한 물소리를 따라 상류로 향하면 아담한 산사 도림사가 순례객을 맞이합니다.
도림사는 서기 66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입니다. 그러니 올해로 나이가 무려 1363살이나 되는 천년고찰입니다. 절 이름 도림(道林)은 도인이 숲을 이룬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무수한 수행자들이 이 절에서 깨달음을 구했을 것입니다.
인기 만점 계곡 피서지, 도림사 계곡
도림사는 곡성을 대표하는 동악산 품속에 자리 잡은 절입니다. 곡성읍 시가지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대로변에서는 1km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계곡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시냇물 흐르는 소리에 깊은 산속으로 순간이동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도림사 계곡은 널찍한 반석 지대라서 물놀이 장소로도 더할 나위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름철이면 계곡 피서지로도 인기 만점입니다.
도림사 계곡 바위에 새겨진 글씨의 비밀
도림사 계곡 하류에서 상류에 이르기까지 바위에 수많은 한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씨들은 옛사람들이 장난으로 새긴 단순한 낙서가 아닙니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 동안 일제에 항거하는 우국지사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래고, 항일독립투쟁의 의지를 다진 흔적으로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원효 대사가 도림사를 창건한 까닭은?
우리나라 사찰 중 반 이상이 창건주(사찰을 세운 주인공)를 원효대사 혹은 의상대사 그리고 도선국사로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도림사는 이 세분의 합작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동악산에서 함께 수행하다가 깨달음을 얻어 도림사를 창건했고, 훗날 도선국사가 찾아와 이 절을 다시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림사는 진짜 원효대사가 세운 절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시대에는 동악산은 수행하기 좋은 명산으로 서라벌까지 알려져 있었다고 해요. 당시에는 접근이 편리하고 외부의 지원을 받는데 지장이 없는 곳이라야 좋은 수행처로 여겨졌습니다. 수행자들도 식량 등을 조달 받아 기본적인 생활은 해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동악산만큼 좋은 수행처도 드물 것입니다.
의상과 원효는 1차 당나라 유학이 실패로 돌아가자, 10년간 함께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이어갑니다. 스님이 아니면서 불교 지식에도 해박하고, 마당발이었던 윤필 거사가 이분들의 수행을 돕고, 또 기회가 되면 수행도 함께했습니다. 그걸 상징하는 곳이 바로 안양에 있는 삼막사입니다. 이 세 분이 움막 세 채에 기거하며 수행을 했다 하여 삼막사인 거죠.
윤필 거사가 먼저 곡성을 방문하여 답사해 보고 수행을 하기 좋은 곳이라고 확신한 다음, 원효와 의상을 불러 성출봉 아래서 함께 도를 닦았다고 길상암 중수기에 적혀 있습니다.
수행 중에 도를 깨우친 원효대사가 즐거워서 춤을 추자 주변 바위가 나한으로 변하고, 산은 풍악(연주)을 울렸다는 전설입니다. 그래서 풍악을 울린 산이라는 의미로 동악산이라고 한답니다. 이분들은 나한님으로 변했던 바위를 업고 내려와 산 아래 모시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그런 내력을 지닌 도림사로 들어가 볼까요? '도림사'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아담한 산문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들어가면 도림사 절마당이 나타납니다.
도림사 입구 큰 건물인 대루는 행사를 치를 때 사용하는 강당입니다. 일반 순례객에게도 대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됩니다. 의자에 앉아 창밖에서 들리는 시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산사 누각에 앉아 즐기는 숲멍과 물멍 어떤 느낌일까요?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말 그대로 산사
도림사는 산사라는 정감 어린 표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산속의 작고 아담한 절집입니다. 그래서 한 바퀴 둘러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습니다. 절을 거닐다 보면 큰 절에서 느껴지는 위압적인 경건함보다는 편안한 기운에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을 모시는 중심 건물인 대웅전 대신 도림사에는 보광전이 있습니다. 보광전은 부처님의 광명이 온누리에 두루 펼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재의 보고 도림사 보광전
보광전 내부를 보면 먼저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이렇게 세 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공식 명칭으로는 '목조아미타삼존불'이라 부르는데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불교 조형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제작에 참여한 작가( 조각승)와 제작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어 불교 미술사 측면에서도 대단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라고 합니다.
도림사가 간직한 두 개의 보물
도림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두 점의 국가 문화재가 있어, 이 절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줍니다.
■보물 1341호 도림사 괘불탱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화를 말합니다. 도림사 괘불탱은 중앙에 석가불과 좌우에 보살상을 배치한 석가삼존도 형식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길이가 776cm, 폭이 719cm이니까. 상당히 큽니다. 중앙의 본존불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을 내려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 숙종 9년(1683)에 계오·삼안·신균 등의 세 화원 비구가 그린 이 그림은 그 내력을 적어 놓은 기록이 있어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색채 구성과 문양 표현, 인물의 형태 등에서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는 17세기 후반기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리나라의 보물입니다.
■ 보물 1934호 아미타여래 설법도
아미타여래 설법도는 도림사 보광전의 후불화로 봉안되어 있습니다. 1730년 철매(哲梅)의 증명 아래 수화원(首畵員) 채인(彩仁), 진행(眞行), 즉심(卽心), 각천(覺天), 책활(策活) 등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님들이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도림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불상 뒤쪽 벽면에 걸기 위해 조성된 불화로서 18세기 최고의 화승 의겸의 화풍이 그의 유파 화원들에게 어떻게 스며들고 발전되어 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적·녹색의 강한 색 대비 속에 백색, 황토, 양녹, 갈색 등 부드러운 중간 색조가 안정적으로 뒤받쳐 주고 있는 설채법, 주저 없는 유려한 필선, 중후한 이목구비를 가진 부처님의 상호 등에서 1724년 송광사 응진전 영산회상도, 1725년 송광사 영산회상도를 남긴 당대의 최고 화승(畵僧) 의겸(義謙)의 화풍을 잘 계승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미타여래와 관음·대세지를 비롯한 팔대보살, 그리고 권속들이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며 짜임새 있는 화면구성을 갖추었고, 정취하고 유려한 필선과 중간 톤의 안정된 색감과 문양을 통하여 우수한 화격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보물인 이 설법도는 현재 보광전 '목조아미타삼존불' 뒤쪽에 걸려 있어, 누구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도림사 산문 밖에는 산사카페 도란다원이 있습니다. 잠시 들러서 다리를 쉬어가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차와 함께 불교 용품을 판매합니다.
도림사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힐링여행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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