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사람이 움츠려 든다’ 추우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다르게 생각해 보시죠. 겨울엔 사람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다들 모이잖아요. 물질문명보다 자연에 순응하던 시절에는 겨울이면 사람들이 햇볕이 잘 드는 양지녁 따스한 사랑방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어요. 물리적인 온도 보다 사람들끼리 온기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 거지요.

저수지 물을 서로 먼저 대겠다고 아웅다웅 싸우던 윗마을과 아랫마을도 화해를 하고 괜한 오해가 생겨 토라져 있던 이웃과도 다시 살가워지는 시기가 겨울입니다. 내년에는 열심히 일해서 논을 몇 마지기 더 사야겠다. 소를 한 마리 더 키워야겠다. 아들 장가보내야겠다. 겨울엔 이런 꿈과 희망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신년 계획을 세우듯 말이죠.

겨울 침실습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요?’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책 읽을 정신이 있겠어요. 진짜 독서의 계절은 겨울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길고 긴 겨울밤 등잔 심지를 키워가며 독서 삼매경에 빠지곤 했어요. 농사일 대신 마음의 밭을 일구었던 것이죠.

섬진강 변

일 년 내내 농사일에 시달리느라 성한 곳 없는 몸을 산과 들에서 캐온 약초를 다려먹으며 지친 심신을 치유하던 시기도 겨울이었어요. 약초 뿌리 삶은 물이 워낙에 써서 먹을 수가 없으니 조청과 함께 다려 먹곤 했어요.

겨울에는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친척을 찾아가기도 하고 여성분들이 친정 나들이를 가는 시기도 주로 겨울입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겨울은 여유로움, 만남, 화해. 이해. 소통. 정겨움. 나눔 이런 단어가 떠오르는 계절이었음을 5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곡성 농촌마을의 겨울

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이제 아랫목을 찾을 필요도, 사랑방 같은 곳에 옹기종기 모일 필요도 없어졌어요. 이젠 더 이상 추위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아울러서 겨울의 정서도 사라져버렸네요. 겨울이란 그저 춥고 바깥나들이하기 불편한 계절로 여겨질 따름이지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따뜻한 나라에서 한 계절 지내고 온다는 것은 이제는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아요.

도림사 오토캠핑 리조트

우리는 겨울의 잃어버린 겨울 정서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저 시류에 따라 사는 수밖에요.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인 이상 계절이 주는 힘은 꼭 필요합니다.

겨울도 우리에게 큰 힘을 줍니다. 겨울을 피해버리면 그 힘을 가져다 쓸 수가 없어요. 한 가지 예를 들게요. 보리나 밀은 가을에 심었다가 겨울을 나고 초여름에 수확을 하는데, 굳이 겨울을 날 필요 없이 봄에 심으면 어떻게 될까요? 희한하게도 그러면 이삭이 영글지 않는답니다. 마늘 같은 많은 구근 식물들도 겨울을 나야 제대로 밑이 듭니다. 그걸 우리 인간사에 비유해 볼게요. 옛날 농사짓던 사람들이 겨울에 새운 한 해 계획은 거의 50% 이상은 이루어졌습니다. 겨울을 제대로 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다들 신년 계획을 세우잖아요. 그런데 90% 이상은 결실 없이 계획한 것으로만 끝나버려요. 겨울을 나지 않는 보리가 이삭이 영글지 못하는 거나 똑같아요.

도림사 가는 길

겨울은 어떤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모으는 힘입니다. 그것이 감정이든 행동이든 습성이든 쓸데없는 것은 다 버리고, 필요한 것만 한데 모아서 사용해야 혹독한 겨울에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나무 나이테도 겨울에 만들어진 것이 훨씬 밀도가 높아서 단단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겨울은 부질없는 것은 다 버리고, 사는 데 필요한 것만 채우는 시기입니다. 그것의 결과는 모임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한데 모아져 단단한 가정. 사회. 회사. 국가를 만드는 거죠. 겨울엔 그렇게 서로 살을 부대껴야 수월하게 추위를 이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 힘이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도림사 같은 산사를 거니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겨울로부터 힘을 얻어 소망을 이루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춥다고 움츠리고 실내에만 있지 말고 뭘 하든 자연과 접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신년을 즈음해서는 북적이는 관광지. 리조트. 바닷가 이런 곳보다는 한적한 시골 소읍 같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편안하고 평화롭게 지내면서 신년을 구상하고 오솔길을 걷거나 산사를 찾아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겨울나기 여행이랄 수 있겠네요. 기회가 된다면 그런 곳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이나 여행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2025년 소망에 대한 굵은 타이틀을 결정한다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엄청 높아집니다. 꼭 그렇게 해보세요.

제월섬 메타쉐콰이어 숲

딱히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그러면 머뭇거리지 말고 그냥 곡성으로 오세요. 곡성은 정말 포근해요. 다른 곳에 비해 날씨도 포근하고, 인심도 포근하고, 음식 맛도 포근하고 커피 맛까지도 포근합니다. 지어낸 말이 아니라 곡성에 한 번이라도 다녀가신 분들은 다들 그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구경거리가 많아서 오시라는 건 아닙니다. 어딜 가나 정감만큼은 흘러넘치는 곳이 곡성이라서 오시라는 겁니다. 그냥 여행 가방 하나 싸 들고 기차 타고 오세요. 겨울에는 비수기라서 시설 괜찮은 펜션도 저렴합니다. 펜션 사장님한테 곡성역까지 좀 데리러 나와달라고 부탁하면 거절하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곡성역 앞에 택시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택시를 타셔도 됩니다.

섬진강과 함허정

겨울 곡성 여행은 별거 없습니다. 펜션에서 휴식을 즐기면서 주변을 산책만 해도 됩니다. 기왕에 곡성까지 왔는데 어디라도 좀 가봐야 되지 않겠냐 싶은 분들을 위해 여행코스 몇 군데를 추천해 드릴게요.

섬진강과 함허정

당일여행 코스

영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오전에 왔다가 오후에 가셔도 기분전환이 됩니다. 당일치기 여행지로는 곡성읍을 추천합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 소읍 다운 소읍이 없다 할 정도로 북적거리는 번화가에 고층 아파트가 즐비해서 특유의 한가로움이나 정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걱정 마세요. 곡성읍은 여전히 전형적인 소읍이니까요. 먹거리도 참 좋습니다. .

수제피자, 파스타. 수제 돈가스에서 전라도식 백반, 맛있는 짜장면과 짬뽕, 오리지널 시장 국밥, 횟집. 일식집. 가성비 뛰어난 한우고기 전문점까지 다 맛집입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도 스무 집도 넘습니다. 그걸 알고 KTX를 타고 와서 곡성읍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가는 소읍 여행자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곡성읍에서는 그냥 발길 닿은 데로 아무 데나 다니셔도 길 잃을 걱정 없습니다.^^

만약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오시게 된다면 택시를 타고 곡성읍에서 가까운 도림사나 섬진강 침실습지를 찾아가면 눈부신 설경을 만날 수 있어요. 거대한 설원으로 탈바꿈하게 될 동화정원도 볼만하겠네요. 당일코스로 오실 땐 굳이 차 가져오지 마시고 기차 타고 오세요. 그러면 정말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함허정

1박2일 코스

[1일차]

첫날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곡성읍에서 식사도 하고, 카페도 들르면서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세요. 여기에 굳이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섬진강 기차마을에 가서 증기기관차는 꼭 타보세요. 덜커덩 거리는 증기기관차에 몸을 싣고 겨울 섬진강을 감상하는 맛도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섬진강 침실습지

2일차

만약 차를 가져오셨다면 대황강 드라이브를 추천합니다. 내비게이션에 태안사 또는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을 찍으세요. 아주 추운 날씨가 아니라면 차는 조태일시문학기념관에 세워두시고, 걸어서 태안사까지 다녀오세요. 앞에서 말씀드린 겨울의 기운을 받으시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녀오셔서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별관에 있는 카페에 들러 뜨거운 커피나 차를 한잔하시는 것도 좋을 듯싶어요.

다음 목적지는 대황강 출렁다리입니다. 출렁다리 건너면서 청양고추 같은 알싸한 추위 맛을 한번 느껴보세요. ^^ 그다음 찾아갈 곳은 석곡면 소재지입니다. 여기서는 시장기를 좀 달래는 것도 괜찮겠네요. 석곡면 소재지에 가면 흑돼지 숯불구이가 유명합니다. 백종원 씨가 소개하고, EBS 한국기행에 나와서 난리가 난 맛있는 칼국숫집은 석곡 시장 입구에 있어요.

침실습지 용무정

그다음 목적지는 천태암인데, 혹시 길에 눈이 쌓였는지가 중요합니다. 길이 멀쩡하다면 내비게이션에 천태암을 입력하고 거길 찾아가세요. 모든 차종이 다 올라갈 수 있습니다. 천태암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를 눈에 담아 오면 한동안은 마음이 든든할 겁니다.

천태암 석양

눈 내리는 곡성읍 중앙로

여러모로 어느 해 보다 힘든 연말입니다. 곡성에 오셔서 이틀만 쉬어가시면 천종 산삼을 먹은 것처럼 기운이 불끈 솟을 것입니다. 희망찬 새해의 소망이 다 이루실 수 있도록 곡성이 힘을 드릴 거예요. ^^ 으라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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