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고도의 중심 왕궁 여행

'왕궁리 여행을 어떻게 해야 왕궁의 속살까지 볼 수 있을까?'

기자는 고심 끝에 여러분께 도보 여행으로 '왕궁 여행 100배 즐기기'를 안내하려고 합니다.

​기자가 '왕궁댁'이라는 택호를 갖게 된 지도 어언 4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기자는 40년간 왕궁을 지킨 왕궁 사랑꾼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명에서 그 지역이 가진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자가 왕궁댁이 되고 나서도 10여 년간 왕궁에 대한 이견이 많았습니다. 혹자는 견훤성이라고도 하고, 안승의 보덕국 성이었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백제왕궁일거라는 발굴 성과가 나온 초창기에도 문헌에 없으니 백제의 도읍이 아니라 별도였을 거라는 설(說)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 발굴과 누적된 고고학적 성과, 지역사회 역사학자들의 노고로 이젠 누구에게라도 떳떳하게 백제왕궁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백제왕궁을 두고 어떤 이견을 내는 이도 없습니다.

▶왕궁에는 백제왕궁을 비롯해 고려시대 석조여래 입상(금마), 조선시대 표옹 송영구 관련 유적지 망모당과 우산정사, 아름다운 경관을 품에 안은 함벽정이 있습니다.

​하루에 걷기엔 무리라 2개 권역으로 나누어 안내하며 함께 걸어보실까요?

인용/ 말주머니

잠깐! 진짜 함께 걸어주겠느냐고요?

네! 좋습니다.

아래 댓글 남겨주시면 진짜 함께 걷겠습니다.

왕궁댁이 안내하는 왕궁리 도보여행도 멋진 익산 여행이 될 것입니다,

#왕궁리 도보여행 하루

​기자는 익산세계유산센터에서 출발해서 고도리석조여래입상, 왕궁리유적지, 백제왕궁박물관, 제석사지, 제석사 폐기장까지 걸었습니다. 4월 말부터 6월 초순까지는 모내기철이라 기자가 걸었던 길과는 또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무논에 담긴 파란 하늘과 봄바람이 만들어내는 잔물결도 만날 수 있고, 어린 모가 심어진 유록(柳綠)의 들판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정취와 따사로운 봄볕이 함께 피워낸 수많은 들꽃들도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익산세계유산센터에서 제적사지까지 걷는 길은 대부분 자전거길과 농로여서 비교적 안전하고 유유자적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빨간색 선은 기자가 걸은 길이고 파란색 선은 자전거 도로입니다. 기자는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을 소개하고 싶어서 농로를 이용해 옆길로 잠깐! 빠졌다가 왕궁리유적지 북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익산세계유산센터

'한눈愛고도 익산세계유산센터'에서 걷기 시작한 이유는?

세계유산 벡제유적지구 왕궁리 유적지를 비롯해 익산시에 산재한 문화유산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익산세계유산센터에서 관련 정보를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여행을 시작한다면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파란 버튼을 누르면 유적지까지 거리와 간략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동선을 고려한 익산 여행을 계획하기 편리합니다.

▶익산은 두 고대국가의 도읍이었습니다, 그 중심지가 왕궁·금마입니다. 기자는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古都, 王都 익산 사랑꾼입니다. 그래서 왕궁·금마 지역 주민으로서 갖는 자긍심도 대단하답니다.

#고도리 석불여래입상

익산세계유산센터에서 왕궁리유적지까지는 자전거 도로가 있습니다. 지도에 표시한 파란색 길은 자전거 도로입니다.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면 안전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기자는 자전거도로에서 벗어나 농로를 걸어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에 다녀왔습니다.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석불은 200m쯤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서 있는 남녀상이다.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冠) 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이다. 도포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 없이 몇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와 불상을 같은 돌에 새겼는데, 앞면을 약간 깎아 대좌 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다리꼴의 돌기둥 같은 신체나 비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마치 분묘(墳墓)의 석인상(石人像)과 비슷하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불상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로 보인다.(출처/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여행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두 석인상은 섣달그믐날 밤 자정이 되면 만나서 1년 동안의 회포 풀고 새벽닭 우는소리를 듣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옥룡천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다리가 전설처럼 아름답진 못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 속 애틋함을 담아내고자 애쓴 흔적으로 둔탁하나마 그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마주 선 고도리 석불입상엔 석불의 위엄보다는 얼굴에 담긴 엷은 미소와 친근함이 오히려 석인에 가까워서 그런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석인상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습니다. 기자도 석인상이라 소개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왕궁리유적지

​백제 왕궁 박물관 마주 뵈는 왕궁리 유적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궁리유적지 정문으로 들어가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백제왕궁의 정문인 남문 앞에서 바라본 왕궁리 5충석탑의 자태입니다. 왕궁리 5층석탑은 이 자리에서 보아야 가장 아름답습니다.

기자는 항상 왕궁리유적지에서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한 대목을 읊조립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고운 왕궁리 5층석탑을 즐기는 기자만의 흥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백제왕궁의 뒤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뒤태를 즐기기 위해서는 북문으로 들어가시길 추천합니다.

▶백제왕궁 북문

▶자주 내린 비로 U자형 곡수로엔 물이 고여 있습니다.

▶물오른 산수유와 매화가 곧 꽃망울 터뜨릴 기세입니다. 봄이 어느새 성큼 다가섰습니다.

▶백제왕궁의 가장 높은 언덕에서 바라본 왕궁리 5층 석탑의 자태입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4월 말 5월 초순 무렵 피는 벚꽃을 배경으로 우뚝 선 오층석탑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입니다.

▶백제왕궁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왕궁면 너른 들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돌려 1,400년 전 백제왕궁의 위용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왕궁리유적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기간 발굴 조사가 진행된 유적지입니다. 30년 이상 발굴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발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왕궁리유적지 발굴은 백제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가는 신비로운 시간여행입니다,

▶백제왕궁의 정원유적지

백제왕궁의 정원유적지입니다.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게 1,400년 전 이곳에 있었을 정자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선 바둑알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기자에게 유적지 답사 길라잡이가 되어 주셨던 교수님은 이런 화제(話題)를 주셨습니다.

"무왕께서 지명법사를 모셔서 여기에서 함께 바둑을 두지 않았을까요?"

​기자의 상상은 일본 정창원이 소장하고 있는 의자왕이 쇼무천황에게 보냈다는 아름다운 백제의 상아 바둑알까지 소환해 냈습니다. 정말 훌륭한 세계유산입니다.

아래 링크로 꼭 확인해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4월 중 익산야행을 백제왕궁에서 즐겨보세요! 벚꽃 핀 날의 백제왕궁 야경을 여러분께 추천해 드립니다.

백제왕궁은 왕궁면 탑리 마을에 있습니다. 마을과 연결된 백제왕궁의 측문을 나와 마을 골목길을 지나 농로를 따라 제석사지로 이동하였습니다. 제석사지는 왕궁면 궁평(宮平) 마을에 있습니다. 걸어서 15분 거리, 지형이 평야라 빤히 뵈는 거리입니다. 제석사지는 왕궁리 유적만큼이나 소중한 유적입니다.

#제석사지

1998년 5월 1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 24,218㎡로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제석들’이라고 불렀는데, 현재 칠층목탑의 탑지가 있는 토루(土壘) 중앙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심초석이 남아 있다. 인근에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으로 알려진 왕궁리 절터가 있다.

제석사는 백제 무왕(武王:?~641)이 도읍을 왕궁평으로 옮길 계획을 추진하면서, 왕궁 부근에 창건한 것이다. 이곳은 제석천을 모시면서 왕실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던 내불당인 셈이다. 백제 무왕대에 익산천도의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왕궁평 유적과 관련되어 있다.

이 절의 창건에 관해서는《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나타나 있는데,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639년(무왕 40)에 중창된 것을 알 수 있다. 제석사는 벼락으로 폐사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탑 아래 심초석에 넣어 두었던 불사리와 동판 금강반야경을 넣었던 칠함이 보존되어 있어, 이를 안치하기 위함이었다. 근래 절터에서 불상을 비롯해 석등의 옥개석·종편 등이 발견되었으며, ‘帝釋寺’라고 새겨진 명문와편도 발견된 바 있다.

1993년 실시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굴 조사 결과, 목탑지·금당지·강당지 등의 기단이 확인되었다. 금당지의 남측기단은 동서 31.7m, 남북 23.2m이다. 기단구조는 익산 미륵사지와 같은 형태의 이중기단으로 확인되었다. 강당지의 남측기단은 동서 52.7m, 남북 18.4m로 백제유적에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출토되었다. 이는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익산 제석사지 [Jeseoksa Temple Site, Iksan, 益山 帝釋寺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기자는 익산세계유산센터에 주차하고 제석사지까지 걸었습니다. 이런저런 구경과 간섭을 다하느라 3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걸음으로 12,000보. 도보여행으로 즐기기에 적당한 거리입니다. 제석사지에서 금마 택시를 타면 7~8천 원 정도면 익산세계유산센터 이동 가능,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도 있어 궁평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제석사지를 돌아보는 것도 차편 활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석사 7층목탑의 심초석입니다. 정비를 하기 전에는 둘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발굴, 정비 후 심초석이 번듯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백제사에 애착이 많은 기자에겐 나뒹굴어진 심초석을 보며 백제 패망을 마주하는 씁쓸함이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백제왕궁과 제석사지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석양에 제석사지 7층목탑지에서 왕궁리 5층석탑을 바라보면 아주 아름다운 노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제석사지 발굴조사 및 유적 정비 과정에서 수습된 석재들입니다. 초석, 지대석, 갑석 등 다양한 건축 부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자는 이 돌들 하나하나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1,400년이라는 세월을 담아낸 석재 유구들 앞에서 숙연해지곤 합니다. 짧은 인간의 시간으로 감히 천년돌 앞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제석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폐기장은 수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전반적인 범위와 규모가 파악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아래쪽이 약간 각진 타원형이며, 규모는 남북(잔존) 32.4M, 동서 약 28M이다. 폐기장 내부에서는 수막새를 비롯한 삼국시대(백제)의 다양한 와전(瓦塼)과 소조상, 건물 벽체 편 등이 다량 출토되었는데, 조사 결과 일괄 폐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기록된 <정관13년(639년) 뇌우로 인해 불당과 칠층탑 및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以貞觀十三年歲次 己亥冬十一月 天大雷雨 遂災 帝釋精舍 佛堂 七級浮圖 乃至廊房 一鎧燒盡……)>라고 하는 내용과 관련하여, 전소된 제석사의 폐기물을 이곳에 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익산 제석사 폐기장 안내문

▶여기서 출토된 다양한 와전(瓦塼)과 소조상, 건물 벽체 편 등은 백제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여기 쌓인 와전(瓦塼)은 제석사 폐기장에서 출토된 편들을 쌓아놓았다.

기자는 동네 사람이라 폐기장 발굴 당시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폐기장은 궁평 마을 뒷동산에 있습니다. 주인 H 씨가 과수원 개간을 위해 파다가 기왓 더미를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해서 비교적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일이 늦어져 어쩌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빨리 신고해서 잘 했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개인의 재산권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지정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사는 사람들은 두 마음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튼그이의 덕택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지켜진 것은 사실입니다. H 씨는 지금도 동네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가는 건전한 시민입니다.

▶제석사지에서 만난 스탬프 투어 박스!

왕궁면 여행은 자동차로도 하루에 마치긴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2회로 나누어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둘째 날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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