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익산 왕궁리유적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유엔(UN) 산하의 전문 기구로, 교육,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촉진하여 세계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유네스코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세계유산을 등재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이는 크게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구분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은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의 등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4건이 등재되어 있으며, 자연유산으로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한국의 갯벌(2021) 두 곳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2015년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는 공주 공산성, 부여 왕릉원, 익산 왕궁리 유적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 유적지는 찬란했던 백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입니다. 마한에서 시작해 백제까지 이어진 익산의 왕궁리 유적은 당시 강력하고 융성했던 백제 왕실의 생활상과 유적을 관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백제로 떠나는 역사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익산의 백제왕궁박물관과 백제 왕궁리 유적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그들의 삶을 면밀하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 왕궁리 유적은 무려 28만 평 규모(929,791㎡)의 유적지로 백제시대 유적으로 가장 큰 규모에 속합니다. 당시 백제 무왕의 왕궁이었다는 견해가 유력한 곳으로 후원(대궐 안에 있는 동산)을 포함하면 한참을 걸어야 할 정도로 광활한 곳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익산에 왕궁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들의 생활상은 어떠했는지. 문득 여러 궁금증이 들었는데요. 왕궁리 유적을 돌아보기 전에 궁금증의 실마리를 해결하기 위해 백제왕궁박물관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 전시실인 백제 왕궁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목격하게 되는 첫 번째 문구는 “왕궁에 담긴 백제 중흥의 꿈”이라는 문구입니다.

우리는 비록 터를 통해 왕궁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지만 당시 출토되었던 여러 유물과 기록을 통해 당시 백제 왕궁에서 드러나는 백제의 위상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요.

수부(首府), 이른바 수도였음을 나타내는 도장이 찍힌 기와가 발견됨으로써 익산 왕궁리 유적이 한때 무왕 시대 백제의 수도였으며, 왕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마침 도슨트 해설을 진행하고 있어 관람객 사이로 슬그머니 합류하여 옆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관람하는 것보다 문화해설을 통해 듣는 것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법이니까요.

아까 주차장 너머로 보았던 왕궁리 유적의 디오라마입니다. 사각으로 표현된 터 자리에 정전을 비롯한 궁궐과 관련된 수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로는 남아 있는 것은 고려시대 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과 여러 단의 쌓아 올린 축대입니다.

석탑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다른 형태로의 석탑으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왕궁이 어찌하여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는 석탑을 쌓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가질 텐데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백제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 시대 때 사용되었던 궁궐로 추정되며, 무왕이 승하하자 아들인 의자왕이 무왕을 추모하기 위해 왕궁을 능사(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진 사찰)로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석탑을 주변으로 사찰의 주요 건물 양식인 금당 터와 강당 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형을 평탄하게 만들기 위해 기단을 쌓아 올리고 담장에 기와를 올린 방식에서 당시 백제의 건축 기술 수준이 어떠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왕궁리 유적에 대한 해설 중 가장 재미있었던 해설이 있었는데 바로 화장실 터의 발견입니다. 처음에는 참외 씨나 굴 껍데기, 밤 껍데기 등이 발견되는 것을 보아 곡식을 보관하던 저장고라 생각했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구덩이에서 나오는 냄새가 생각 외로 고약해서 출토된 흙을 분석한 결과 인간의 몸에서 배출된 기생충 알이 발견되어 과거 화장실로 쓰였던 유적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장실 구덩이에서 발견된 여섯 개의 막대기입니다. 처음에는 이 역시 자와 같은 길이를 재는 도구라고 생각했었답니다. 이후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보아 화장지처럼 뒤처리하기 위한 막대기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 외에도 주방에서 사용했던 솥과 도가니, 그릇, 금과 보석을 제련하는 공방 터도 발견되었는데요.

현미경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지 뚜렷하게 모양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당시 백제의 세밀한 금공예 기술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유리구슬, 청동방울 등 당시 진귀했던 보석들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보석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은 익산에 잘 어울리는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당시 백제 왕실과 귀족들의 세련된 미적 감각과 함께, 국제 교류를 통해 다양한 재료와 기술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익산이 실크로드와 연결된 거점 중 하나로 기능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를 통해 당시 백제의 문화적·경제적 번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백제왕궁박물관 2층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과 기획전시실 등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조성된 공간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 여행이라 하여 다소 지루한 어른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온 가족이 가족여행으로 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자, 이제 박물관에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실제 유적지를 둘러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인데요. 대한민국 국보 제289호로 지난 1997년 지정되었습니다.

석탑의 주변으로 과거 옛 궁궐이었던 정전이 있던 자리와 이후 사찰로 변모한 이후 금당지와 강당지가 놓여 있습니다. 지금은 직사각 모양의 작은 언덕으로 구분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기단을 통해 단을 세우고 후원까지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과거 이곳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섰던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정원 주변에는 수로 역시 발견되었는데요. 수로는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실제로도 물이 흐르고 있어 더욱 실감 나는데요. 후원을 길게 쭉 돌아보며 과거 융성했던 백제의 왕궁터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보석의 세공 수준을 보아 당시 백제 왕궁 역시 화려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내가 백제왕이 되어 궁궐과 정원을 한 바퀴 거닐어보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드넓게 펼쳐진 정원 사이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시설이 있었는데 바로 화장실 터입니다.

지금은 복원이라기보다 재현한 화장실 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 백제인 모형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옛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화장실 터 발견은 흔하지 않은 발견이라 생소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익산의 백제 왕궁리 유적을 둘러보았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유적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가꾸고 보호해야 할 인류 보편적인 문화유산을 의미합니다.

백제 왕궁리 유적을 비롯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인이 과거 한반도 이남 지역에 살았던 옛 왕궁의 유적을 가치 있게 받아들이고 보존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유적을 통해 떠나는 전북으로의 역사 여행은 어떠신가요?




글, 사진 = 조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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