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잊어서는 안 될 그들의 숭고한 희생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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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중 빈
이제는 ‘국가보훈처’보다, ‘국가보훈부’가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된 후, 우리나라 보훈에 대한 예우와 업무가 더욱 다양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움직임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미추홀구 수봉공원에는 참 많은 현충시설들이 있죠? 대표적으로 ‘인천통일관’을 비롯하여 자유평화의 탑, 상륙기념비, 현충탑, 무공수훈자공적비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봉공원 가장 중앙에 있어 찾아가기 쉬운 곳이지만, 현충탑 등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무장애나눔길과 통일관 바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참전비는 현재 국가보훈부 현충시설(관리번호 14-2-22)로 등록되어 있으며 인천광역시에서 관리 중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풍전등화와 같았던 국난의 소식이 재일동포의 자녀 및 유학생들에게까지 전파되어 당시 병역이행의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국 수호를 위해 의용군 조직 및 당시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에게 전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건의문도 제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참전비가 있는 광장에는 약간의 전시공간이 조성되어 있더라고요. 긴박했던 6.25 전쟁 당시의 상황이 사진전으로 전시되고 있어 좋았습니다. 1979년의 역사 속으로 거슬러가 참전비가 세워진 당시의 기념사진들도 있고요.
79년도에 참전비가 세워졌다니, 하편으로는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그때라도 추모하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도 아직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무명 참전용사, 혹은 참전의 기록이 없어 보훈대상자로 등록되지 못하는 등 아픔도 잔존하고 있으니까요.
재일학도의용군은 당시 동경과 오사카 지역의 젊은이들이 당시 미 제1기병 사단에, 규슈 및 기타 지역 젊은이들은 제3사단에 편입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그중 344명은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그 이튿날 인천에 상륙하였다고 합니다.
며칠 후에는 나머지 298명도 참전하여 총 642명의 젊은 학도병들이 전투에 참가하여 크고 작은 전공을 세웠다고 해요. 바다를 건너온 재일학도병들의 장한 뜻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 매년 9월 말에는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올해 9월에는 국가보훈부 장관님께서 직접 수봉공원에 있는 참전비에 오셔서 관계자분들과 제74주년 기념식도 열었다고 하는데요.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관계자분들도 참가해 주셨다고 합니다.
국내 학도병들의 희생과 활약상은 ‘포화속으로’와 같은 유명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펜 대신 총과 칼을 들어야 했던 어린 학생들의 가슴 아픈 절절함이 아직도 생각나는 듯합니다. 그런데 병역의 의무가 없던 재일동포의 자녀나 유학생들이 자진하여 의용군으로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불과 1주일 정도의 군사훈련을 받고, 백마고지 등에서 활약했던 재일 학도 의용군은 당시 전사한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 ‘재일 학도 의용군 동지회’가 결성되어 기념비 건립은 물론 추모 행사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또, 1976년에는 서울 국립현충원에 재일 학도 의용군 위령비가 건립되었다고 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국립현충원 답사도 다녀와야 되겠습니다. 완연한 가을, 수봉공원에 많은 분들이 산책을 나오고 계신데요. 수봉공원에 어떤 현충시설들이 있는지 한번 되새겨보시고, 한 번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넋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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