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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전
전주 역사 여행 - 덕진공원에서 만나는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전주 역사 여행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 1. 덕진공원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를
찾아온 첫 행선지는 전주 시민의 힐링 스팟
덕진공원입니다.
전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알았던
덕진공원에 기려진 발자취를 찾아
배워가는 여정을 떠나보겠습니다.
우선 동학동민운동의 의미와
동학농민운동 발상지로서 전주의
의미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조선말 고종의 무능과 왕비 민씨의 권력 횡포와
부패가 만연되고 계속된 외세 침탈에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습니다.
이에 봉건체제의 개혁 1차, 일제 침탈로
항일무장투쟁 2차 봉기로 전개된
농민 중심의 혁명이 동학농민혁명입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여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민주주의와
항일투쟁의 시작이 전주였던 것입니다.
또한 전주화약은 농민군과 조선 정부 간의
휴전 협정으로 동학농민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승리와 개혁요구가
실제로 이루어진 혁명의 무대가
전주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위 사진처럼 아름다운
덕진공원에 기념된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를 만나보시겠습니다.
덕진공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만남의 장소는
넓은 벤치와 그네가 있습니다.
그 만남의 장소 오른쪽에
동학농민운동을 기리는 기념비와
동상이 위치해 있습니다.
김개남기념비
김개남장군(1853~1895)
정읍 출신의 태인 대접주
동학농민운동의 핵심 지도자로서
전봉준 다음가는 실력자였다고 합니다.
김개남기념비의 상단 돌의 모습으로
“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새야 새야 파랑새야”와 함께 불렸던 글귀로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수천군사
어디두고 짚둥우리가 웬 말이냐 ”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김개남은 당시 남원을 점령하였고
청과 일본이 개입하자 남원 부사를
처단하고 동학 군정을 실시했답니다.
‘김개남장군추모비’는 김개남 장군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뜻을
계승하기 위해 조성한 기념비입니다.
손화중기념비
손화중(1861~1895)
정읍 출신 대접주
동학농민운동 핵심지도자
하단에 “보국안민 척양척왜 ”라는
글귀가 동학농민운동의 이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상단의 돌엔 ‘사람이 한울이다’
손화중장군추모비라고 적혀있습니다.
나주성 전투에서 피해 피신했다가
1895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오른쪽 멋진 나무가 손화중장군의
기개를 표현하는 듯합니다.
손화중장군 추모비는 1998년 11월 7일
손화중장군을 추모하는 사람들이란 단체에서
조성하였음이 추모의 글에 나와있습니다.
전봉준동상
전봉준 (1855~1895)
전북 고창군 출신 고부접주
전봉준 선생상은 동학농민운동의
최고지도자였던 그의 ‘애국단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청동상이라고 합니다.
눈이 소복히 쌓여 보이지 않기에
눈을 치워내니 글자 안에 눈이
채워져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국안민”
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함
이 글귀는 전봉준이 관군에 체포된 뒤
1895년 일본 영사관 2차 재판에서
스스로 동학에 입교하게 된
경위를 밝혔을 때 나온 것으로
장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전봉준동상은 전주화약을 주도하던
장군의 모습인 듯 생동감 넘칩니다.
이렇게 전주 역사 여행 덕진공원에서
전주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알아보고
그 뜻을 기리는 기념비와 동상을
만나보았습니다.
전주 역사 여행을 통해
동학혁명과 항일투쟁의 발상지인
덕진공원을 마주하고 세 장군님의 뜻을
기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출처) the–booja님의 블로그,
VISIT JEONJU,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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