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전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학문과 교류의 장소 '취백정'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학문과 교류의 장소 '취백정'
오늘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취백정(翠白亭)이라는 아름다운 정자와 그곳에 깃든 역사적 배경,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취백정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학문과 교류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역사와 문화의 배움의 장소로 필수코스이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찾아간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은 매우 조용하여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농촌 풍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 10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마을 공영 주차장에 주차하고,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 취백정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제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여오고 있었답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에는 서리가 제법 하얗게 내려 있었습니다.
주차장과 가까운 곳에 사진과 같이 취백정으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취백정으로 가는 길. 항상 맞이해주는 황토 담장과 푸른 대나무숲 사이로 아침햇살이 드리우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취백정(翠白亭)의 ‘취(翠)’는 ‘푸를 취(翠)’로, 보통 대나무의 푸른빛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학문과 절개를 중시한 송규렴 선생의 선비 정신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정자에서 학문을 가르치고 토론하던 선비들은 대나무처럼 올곧고 청렴한 삶을 지향했을 것입니다.
<문화재 자료 제9호>인 '취백정'의 풍경입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취백정(翠白亭)은 조선 시대의 유서 깊은 정자로, 학문과 교육의 중심지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정자는 1701년(숙종 27년)에 건립되었으며, 특히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 1630∼1709)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취백정은 원래 미호서원(渼湖書院)의 부속 건물로서, 송규렴 선생이 만년에 관직을 떠나 금강 주변 미호 지역에서 제자들을 교육하던 장소에 세워졌습니다.
송규렴은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삼송(三宋)'으로 불렸으며, 이러한 학문적 배경 속에서 취백정은 학문 연구와 교육의 요람으로 기능하였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송규렴이 지은 '미호신사(渼湖新舍)' 상량문이 걸려 있으며, 이는 당시 학문적 열정과 교육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또한, 정조(재위 1776∼1800)가 직접 써서 내린 '사호각(四皓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가득 퍼지고 있는 취백정 주변 풍경입니다. 거침없이 뻗어있는 가지 위에는 항상 까치들이 앉아 쉬는 모습을 봤었는데, 새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더욱 고요한 느낌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송규렴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 관찰사와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났습니다. 그는 만년에 관직을 떠나 현재의 금강 주변 미호에서 미호서원을 지어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으며, 그와 관련된 건물이 바로 취백정입니다.
취백정과 송준길의 역사는 조선 시대 학문과 정치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송준길의 학문적 업적과 정치적 활동은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이러한 인물들의 노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한국 문화와 사상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취백정은 조선 시대 학문과 교육의 산실로서, 그리고 송준길과 같은 위대한 학자의 정신이 깃든 장소로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 취백정은 대청댐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대전의 문화유산은 관심을 필요로합니다. 한 번쯤 지나는 길에 핸들을 돌려 잠시 조선시대 학문과 교육의 산실이었던 취백정에 들려서 보기를 권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유산이 많은 관심으로 보존되고 연구되어 후대에 알려지고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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