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마을 속 충효정신 서린 상로재

의령군 블로그기자 이수이

상로재는 1908년 백산 안희제 선생이 본 건물에 창남학교를 설립하여 문명개화를 이끌 인재를 양성한 역사성이 있어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입산마을은 전체가 문화유산이 가득한 충절의 마을입니다.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인 백산 안희제 선생을 비롯, 충효의 표본이 되는 인물들을 배출한 가문인 탐진 안씨의 집성촌으로 나지막한 한옥들이 모여 있습니다.

입산마을은 탐진안씨가 1600년 초에 한 고승의 예언을 쫓아 길지로 알려진 입산으로 이주하여 10 종가 천석지기 부자 이름으로 대를 이어온 탐진안씨의 집성촌입니다.

상로재는 ’서리가 내리면 조상의 산소를 돌보고 군자의 도에 따라 조상께 제사를 지내야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희제 선생 생가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상로재는 재실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지만, 항일애국지사 백산 안희제 생가와 항일 독립 정신의 배양소였던 사립 창남학교의 임시건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역의 인재를 배출한 고산재가 있는 등 경상남도 문화재가 5곳이나 모여 있을 정도로 역사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입산마을입니다.

여전히 소박하지만 위풍당당 외삼문인 이필문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상로재는 화려하고 큰 규모의 고택이 아닌 소박하고 작은 고택입니다.

뺑 둘러 낮은 담장이라 조금만 까치발을 들면 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입니다.

솟을대문인 이필문 안에는 마당같이 널찍한 터가 먼저 보입니다. 보통은 대문 정면에 본채가 먼저 보이는데 상로재는 용도를 알 수는 없으나 마당처럼 보이고 단을 세워 뭔가를 했던 곳이 먼저 보입니다.

좌측 옆에 상로재로 드나드는 협문이 자그맣게 서 있습니다.

협문 안에서 상로재가 섰고, 상로재와 마주 보는 담장 앞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는데 고택치고 연못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커 보입니다.

연못가 노거수 느티나무의 위용이 제법 커서 더 멋지게 보이기도 합니다.

상로재 뒤편에 있는 작은 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상로재는 1722년 설산재 안여석이 제사를 지낼 목적으로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충효사라는 표지석이 있어 아마도 사당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로재 마루에 올라 바라보면 작은 연못과 함께 낮은 담장 너머로 가을이 익어가는 모습이 쭉 펼쳐지듯 전원풍경이 고즈넉하다 싶으면서도 편안한 게 멋들어집니다.

▣ 상로재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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