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탐진 안씨의 자긍심이 돋보이는 이충각과 배롱나무스팟이기도 한 문중 정려각

의령군블로그기자 이수이

순흥 안씨 탐진군파 헌납공 문중의 선조들의 효와 충을 기리는 효충원은 의령 입산마을 입구에 자리하며 4기의 비석과 1기의 비각이 서 있습니다. 후손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효충원에서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습니다.

우국지사 고헌 안여상선생 행장비, 항일 애국지사 송은 안창제 선생 사적비.

수파 안효제 선생 행적비, 백산 안희제 의사 순국기념비.

지헌선생 탐진 안공 유허비와 이충각이 있습니다.

이충각은 ‘이효위충’이라는 말에서 유래가 된 것으로 부모에게 지극한 효자는 효행을 국가로 옮겨서 실천을 하면 충신, 충의가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95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 곽재우 장군 휘하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워 원종공신 이등에 서훈되고 이조참의에 추증된 지헌공 안기종 장군의 유허비입니다. 이충각은 원래 안골에 있었으나 유허비를 보호하기 위해 입산마을로 옮겨진 것이라 합니다.

효충원 아래 붉은 목배일홍이 곱게 핀 자리에 선 탐진안씨 문중정려각.

1773년 영산현에 있던 칠효정려각을 입산마을 입구로 이건하여 동족마을의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정려각을 보호했습니다.

칠효각은 조선 초 태종 5년(1405)에 문신 안도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산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간을 정성껏 시묘하였는데 조정에 천거되어 하사 받은 정려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입니다.

이후로 효를 몸소 실천한 효자 호조정랑 안경, 효자 전라도도사 안건 등 연육세 여덟 분의 선조가 정려를 받아서 배향되어 있으며 창효각과 창렬각에도 효자 열부가 배향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여섯 세대에 걸친 8효자와 열부 등 10분의 효행을 기린 분을 모신 정려각이지만, 초기에 일곱 분의 효자를 모신 정려였기에 칠효각으로 불리고 있으며, 조선시대 윤리와 가치관 등 사회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려각 뒤로는 묘소가 잘 정리되어 있고 푸르름 녹음에 평온해 보입니다.

충효를 생활에서 실천해왔던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입산마을

붉은 꽃 핀 배롱나무와 나라꽃 무궁화가 효충원에 잘 어우러져 있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금 일깨워주듯 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장마비에 배롱나무 꽃이 떨어져 탐진안씨 문중 정려각 백세문 주변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초록초록한 논뷰에 붉은 배롱나무꽃까지 마치 한편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합니다.

​입산마을로 드는 진입로에도 진분홍꽃이 곱게 핀 배롱나무들이 가로수로 줄서 있음이 그림같습니다.

효충원 앞 홍살문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탐진안씨 집성촌으로 효자. 효부가 많은 유서깊은 마을로 탐진안씨 문중 정려와 함께 전통마을로 그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중의 자랑이자 자긍심이 붉은 홍살문 너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의령여행 중이라면 입산마을에서 배울 수 있는 효와 충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길 바랍니다.

▣ 효충원

경남 의령군 부림면 의합대로 18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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