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수원시 SNS 시민 서포터즈가 취재한 내용입니다."

수원하면 조선시대 정조대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관련된 유물이 많습니다. 그중 최고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으로 오늘은 장안문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성 밖의 모습으로 장안문과 성곽의 형태가 모형으로 전시되어 수원화성의 구조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성안에서 바라본 장안문. 수원화성의 북쪽 문으로 정문입니다. 흔히 남쪽 문이 정문인데 화성에서는 북쪽의 문으로 북문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이유는 한양 궁궐에서 출발하여 성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기 때문입니다.

성 안 장안문 입구에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문화관광 해설 시간은 10:00, 11:00, 13:30, 14:30, 15:30으로 최소 4인 이상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장안문 안쪽에 성벽 하단에 성혈이 보입니다. 아낙네들이 작은 돌을 기단석에 돌려가며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빌어서 나타난 흔적으로 민간신앙의 힘을 빌린 곳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신비했던 성혈입니다.

성혈을 보고 계단을 올라 성벽 위로 갑니다.

장안문 양쪽에 적대가 있습니다. 적대는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기 위한 방어 시설로 포루나 치성과 다르게 성의 안과 밖으로 절반씩 돌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성곽 중 적대가 설치된 곳은 수원화성이 유일하며 팔달문과 장안문에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좌우 2개의 적대가 남아있습니다. 장안문에서 화서문 방향은 북서적대, 창룡문 방향은 북동적대라 부릅니다.

장안문 양쪽의 적대는 구조도 같고 안에 홍이포를 설치했습니다. 홍이포는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한 화포로 성곽이나 포루 등에 배치했으며 사정거리는 700m입니다.

북서적대에서 화서문 방향으로 바라본 성곽의 모습으로 그림자도 예쁩니다.

북서적대에서 바라본 장안문으로 반원형의 옹성이 멋집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면서 성루의 전진기지 역할을 합니다. 옹성이 함락되면 성문과 성이 위험에 빠질 수 있어 적대를 설치하고 적을 공격했습니다.

적대는 옹성보다 돌출되지 않으면서 옹성을 완벽히 보호하는 구조로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창이나 활, 화살 등을 비치해 두고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한 시설물입니다. 적대 성 밖으로 길게 뚫은 구멍은 현안으로 총안을 만들어서 유사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장안문을 감싸고 있는 북옹성으로 갑니다. 옹성은 반달 모양으로 쌓은 성으로, 성문을 이중으로 지키는 시설물입니다.

누각에서 성 밖 성곽에 물을 저장하는 오성지를 설치하여 화공에 대비했습니다. 수원화성에만 설치한 색다른 방어시설로 정약용이 제안했는데 설계안대로 시공되지 않았습니다.

성 밖에서 본 오성지로 적이 성문을 불 질러 파괴하려고 하는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파괴하거나 성벽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적군이 있으면 이 구멍으로 물을 쏟아부어 성문을 보호하고 적의 공격을 저지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문루가 불타 훼손되었는데 1975년 축성기록서인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복원했습니다.

장안문에 대해 검색하다 보니 지난 21일 방영된 <이유 있는 건축>에서 수원화성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 건축 여행으로 패널들이 수원화성을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보고 건축 이야기뿐 아니라 역사, 예술, 종교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알찼습니다. 조선시대 최초 신도시이자 프랑스 파리보다 앞선 계획도시 ‘수원화성’으로 유현준 건축가를 통해 화성의 새로운 지식도 얻었습니다. 장안문 누각은 2층으로 왕권을 나타내는 특별한 지붕이라고 합니다. 궁금하면 <이유 있는 건축> 2편을 참고하세요.

창룡문 방향의 복동적대입니다. 북서적대와 비슷한데 적대 옆에 치성이 있습니다. 북동치로 북동적대 위치에서 성곽이 급하게 꺾어 북쪽을 방어하기 위위해 적대에 치를 덧붙였습니다. 장안문을 지키는 중요한 북동치로 가장 크게 치성을 만들고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총안과 타구를 설치했습니다.

장안문에서 북동적대를 바라보면 저 멀리 화홍문, 방화수류정, 동북포루루와 동북공심돈까지 보입니다.

장안문 누각 2층을 개방하여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개방 시간은 정확하지 않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무더위로 땀이 솟았는데 내부는 외부와 온도 차이가 있어 에어컨이 가동된 듯 시원해 쉬다 갈 만했습니다.

수원화성에 전해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 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졌다는 가사로 시설물의 상태를 알려줬습니다. 장안문은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 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의 장안문은 1978년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래대로 복원되었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누각 아래 양쪽 벽면에는 여기저기 다양한 구멍이 있는데 한국전쟁 때 맞은 폭탄 자국입니다. 그 아래 기다린 의자가 붉은 의자가 있는데 '이유 있는 건축' 덕분에 성문의 빗장으로 만든 쉼터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장안문을 방문하면 새롭게 보일 겁니다.

성 밖으로 장안문과 북옹성 가운데로 통로를 내면서 무지개 모양 문 2틀을 만들었습니다. 장안문의 경우 성 안쪽 홍예의 높이는 19척, 바깥쪽은 17척 5촌입니다.

정조가 을묘년(1795) 2월 22일에 “화성 성문에 이제 곧 편액을 달 것인데 성의 북문은 ‘장안’이라고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이며, 진남문(鎭南門)을 고쳐 신풍루로 한 것은 대개 한나라 제실이 풍패에서 일어났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다. 호조참판 조윤형에게 명하여 신풍루. 장안문의 편액을 써 올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진시(8시)에 터 다지기 공사에 착수하여, 그해 8월 15일 상량하고 9월5일 2층 문루까지 모두 완성한 장안문.

축조 비용은 장안문 50,890냥, 북옹성 15,608냥이 들어 모두 66,498냥으로 팔달문(68,127냥)에 이어 화성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공사비용이 소요된 시설물입니다.

주간도 볼만한 수원화성의 정문 장안문인데 일몰 명소로 해넘이 때와 야경도 볼만합니다.

수원화성 장안문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장안문관광안내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

2024 수원시 SNS 서포터즈 박미연님이 작성해 주신 글입니다

박미연 서포터즈님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yd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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