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경상좌도 병영성

조선시대 사적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에 있는 조선시대 경상좌도병영의 성곽으로 1415년 울산에 군사진이 설치되었고, 동시에 울산읍성 축성이 시작되었으며 1417년에 울산 고을에는 경상좌도병마도절제사영이 설치되면서 읍성으로 축조된 성이 병영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병영성은 울산에서 478년간이나 유지되었기 때문에 초창기와 임진왜란 이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당시 울산읍성의 위치는 지금의 중구 병영성 일대에 해당하는데 축성의 목적은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에 걸맞은 새로운 성곽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병영성과 일대의 중구 모습_울산광역시 중구청 제공

조선 후기의 병영성의 모습은 성벽 둘레는 9,316자, 높이는 12자였다고 하고 성벽에는 밖으로 돌출시킨 치성이 있고 성벽 위에는 군사들이 몸을 숨기는 여장이 빠짐없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안에는 지금의 병영초등학교 자리에 병마절도사가 근무하던 체오현과 객사 선위각을 비롯해서 부사령관격인 병마우후가 근무하던 친주헌 등 수많은 관아와 창고, 그리고 둑당과 같은 제사 시설, 연못 3곳, 우물 7곳 등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이 됩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동문에서 북문을 거쳐서 서문까지와 병영성당 부근의 서남치성이라고 합니다. 2010년 병영성 복원 정비 기본 계획이 수립되어서 동문지 부근에서 북문지, 서문지구간이 발굴조사를 거쳐 정비되었고 동문과 서문 등도 복원 계획이라고 합니다. 도시 개발에 의해 지금은 옛 모습에서 많이 바뀌었지만 경상좌도병영성은 조선시대 성곽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북문지 서문지 구간

축성 600주년 기념공원은 병영성 주차장 앞에 있습니다. 공원 맞은편에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습니다.

105주년 울산병영성 3.1만세운동

제24회 재현행사

오래전 독립을 위하여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열리는 대한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전해 들은 울산 병영 청년들이 1919년 4월 4일에 현재의 병영초등학교에서 축구 시축을 신호로 시작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가두행진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오래전 그 뜻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하여 축성 600년의 역사를 지닌 병영성에서 그날을 재현하는 시축을 시작으로 병영성에서 병영오거리까지 가두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의 재현행사가 앞으로도 울산 중구 지역의 행사를 더 널리 알리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확산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행사장에 모인 모두가 바람 해 보았습니다.

2024.4.5 진행된 재현행사는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출정선언~시축행사~가두행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의미 있었던 현장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축구공의 시축을 시작으로

취타대를 선두로 가두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행렬은 병영성을 벗어나 병영오거리로 향했습니다. 오래전 그날의 함성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듯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경상좌도 병영성은 울산 중구의 역사입니다. 이곳에 담긴 문화적 가치가 바로 울산 중구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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