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한내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서

106년 전 3.1만세운동을 기립니다.

음성군 소이면은 음성 시내에서 약 6km 괴산과 인접하였습니다. 한천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한내라 불렸으며 1960년대까지는 1일과 6일 장이 섰던 한내장터도 있었습니다. 그 거리에서 106년의 만세운동을 기립니다

음성 소이면은 대소면과 함께 음성군의 대표적인 만세운동 유적지입니다. 106년 전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된 만세운동은 한 달 만에 음성에 이르렀습니다. 4월 1일 한내장날 김을경, 권재학, 이교필, 이중곤 등 애국지사들의 주도하에 만세운동이 행해졌고 약 5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마을 초입으로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이 있어 당시의 역사를 기리게 되네요. 매년 삼일절이면 만세운동이 재현되기도 합니다.

삼일절 연휴에 찾은 기념공원은 만세운동 기념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습니다. 깨끗하게 단장된 공원 곳곳으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3월 1일 기념식을 알리는 플랭카드도 걸렸습니다. 기념공원에는 두 그루의 전나무 사이로 만세운동 기념탑이 있습니다.

4월 1일 펼쳐졌던 한내장터의 만세운동은 수백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까지 행진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을경 이중곤이 일본 경찰에 연행되면서는 주재소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매년 삼일절 한내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서는 만세 재현과 함께 기념식이 진행되네요

기념공원과 맞닿은 한천 초입으로는 한내 중동 1리의 역사와 만세운동이 소개됩니다.

가막산 어래산의 능선 아래로 한천이 흐르고 큰 느티나무가 기념공원을 감싸듯 서 있습니다.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으로 시작되는 소이면 중동 1리에 속하는 한내마을은 시간이 멈추었습니다. 단층의 기와지붕과 양철지붕이 도로 좌우로 이어지는 추억의 거리입니다. 담장 곳곳으로 106년 전의 만세운동과 옛 농촌마을을 추억하는 벽화도 입혀졌습니다. 도로와 맞닿은 주택가 너머로는 넓은 평야가 이어지네요.

거리를 걷다가는 1919년 3월 1일, 그리고 4월 1일 그날의 함성을 더듬어 함께 만세도 부르게 됩니다. 1960년대 이전 한내마을은 소이면의 중심지로써 오일장이 개장되어 성시를 이루었었습니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이유였네요. 하지만 시대적 변화와 교통의 발달에 따라 오일장의 기능은 점점 상실되면서 현재는 농촌의 풍경만을 지니게 됩니다.

양철지붕 사이로 걸린 태극기가 경건하고 파스텔톤 담장과 벽화는 아름답습니다. 여전한 겨울 풍경 사이로 담장에는 봄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파릇파릇 새잎이 올라오고 벚꽃이 만개하였고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왔네요. 힘찬 날갯짓으로 처마 밑 둥지를 찾아갑니다.

거리를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벽화는 대로와 골목 사이로도 이어집니다. 녹음이 짙은 여름 들판, 옛 빨래터, 냇가 등 추억의 풍경입니다. 106년의 시간에서 한 번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되네요.

삼일절로 시작되며 역사를 기억하게 되는 3월이면 한내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은 조금 더 특별해집니다. 106년 전의 만세운동과 함께하는 추억의 거리를 걸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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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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