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산에 있는 이유는?

왜 사찰이 있는 곳은 대부분 산중일까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돼버렸는데 그건 아닙니다.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탄생한 조선왕조는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탄압하기 위해 무수한 사찰을 문 닫게 만들고 승려들을 강제로 환속시켰습니다. 고려 시대 사찰들은 요즘 교회나 성당처럼 대부분 마을이나 도시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우선 이런 사찰들을 정리하고 이어서 산사도 많이 없앴습니다. 따라서 불교 탄압을 피해 저잣거리에 있던 사찰이 산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산에 있던 사찰 중 일부가 간신히 살아남았다'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선정(禪定)을 위해 산으로 들어간 절집

백담사. 해인사. 대흥사. 화엄사 같은 유명 사찰은 신라시대 또는 고려 시대에 창건하여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불교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를 국교로 삼던 시절인데도 이들 사찰은 왜 깊은 산중에 절을 지었을까' 하는 질문은 그대로 남습니다. 불교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인 지정해(戒定慧)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불교는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활용하여 궁극의 경지인 부처가 되고자 하는 종교입니다. 즉 불교 신자로서 계율(戒律)을 지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유지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깊은 선정(禪定) 이르러 깨달음을 구하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먼저 공부한 조사들의 행적과 어록을 통해 지혜(智慧)를 터득하는 것입니다. 이중 선정(禪定)을 위해 번잡스럽지 않은 곳에 수행처를 마련하다 보니 사찰이 점점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구산선문 동리산파의 본거지 태안사와 중시조 혜철선사

신라의 승려로서 당나라에 유학 중이었던 혜철은 당나라 고승 지당 선사의 수제자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혜철의 귀국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신라 문성왕은 그를 태우고 온 배가 도착하는 회진포로 신하들을 급파하여 대사를 융숭하게 모셔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혜철은 왕의 부름도 물리치고 홀연히 곡성 땅 동리산(지금 봉두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작은 절집인 태안사로 들어와 선승(禪僧)으로서 수행을 이어갑니다. 혜철이 태안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승려와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온 덕분에 태안사는 나날이 사세를 키워갑니다. 혜철은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왕실이 아닌 나라와 백성을 위한 대단히 진보적인 현실 불교운동을 펼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사 교과서에 수록되고 대학 수능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구산선문 운동의 시작입니다. 태안사는 구산선문 동리산파의 본거지로서 태안사는 고려가 건국하여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도 직간접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 원조라 알려진 도선국사도 태안사에서 혜철선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으며 3년에 걸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합니다. 왕건은 도선을 정신적인 스승으로 여기고 추앙한 인물입니다.

태안사 알고 보면 참으로 대단한 절집이지요? 구산선문의 발원지 태안사는 한마디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절입니다. 여름휴가를 전후하여 뭔가 새로운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면 곡성 태안사로 오세요.

태안사 가는 길

태안사 가는 길은 최근까지 비포장도로였습니다. 여행자들은 운치 있는 길로 여겼지만, 태안사 스님들이나 신도분들 입장에서는 오가는데 불편함이 많아 불가피하게 포장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태안사 입구에서 태안사 경내 주차장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예전처럼 태안사까지 걷는 재미를 맛보고 싶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농어촌 버스를 타고 오셨다면 당연히 걸어서 들어가야 하고, 자동차를 타고 왔어도 조태일 시문학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묵사묵 걸어서 올라가시면 됩니다.

태안사 숲길

태안사까지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말고도, 걷기 전용 오솔길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울창한 숲속에 나있는 오솔길은 줄 곳 계곡을 따라 올라갑니다. 이따금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하는데, 계곡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힐 수도 있습니다.

태안사 계곡

태안사의 백미 능파각

능파각은 태안사로 들어가는 다리를 겸한 누각입니다. 능파(凌波)란 당시(唐詩)에서 차용했다는 설이 있는데 '치마를 마루에 끌면서 우아하게 걷는 여인의 발걸음'이라는 대단히 낭만적인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누각에 이런 이름을 지어준 선승 혜철선사는 낭만시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능파각

능파각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누각에 걸터 앉아 바위 위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마음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는 것이 느껴질 것입니다.

능파각 건너가는 길

능파각을 건너면 진입로 양쪽으로 아름드리 삼나무( 혹은 전나무)가 도열하고 있습니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능파각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이 길에서는 오래된 나무에서 풍기는 특별한 향기가 서려 있습니다.

태안사 가는 길

앞에는 동리산 태안사, 뒤에는 봉황문이라는 이름이 씌어진 태안사 일주문은 절제된 화려함과 단아함이 돋보이는 걸작 건축물입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본당 들어가는 계단에서 내려다보면 그 아름다움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 일주문에 깃든 역사성과 건축적인 예술성을 인정받아 작년에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태안사 일주문

일주문 옆에 마련된 탑전에서는 태안사를 거쳐간 고승들의 승탑들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이중 광자대사 윤다의 승탑과 탑비는 각각 '국가유산 보물'입니다. 태안사 일주문을 포함하여 보물 석 점이 한데 모여 있는 셈입니다.

참고로 금년부터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대신 '국가유산 보물'로 부릅니다.

태안사 탑전

백련이 피어 있는 연못

일주문을 지나 태안사 본당으로 가기 전에 태안사 연못으로 내려가서 탑돌이를 하듯 한 바퀴 돌아보세요. 연못에는 하얀 백련이 피어 있습니다. 이곳을 '태안사 백련지'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습니다.

태안사 연못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혼탁한 물에서도 아름답고 풍성한 피어나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 같은 꽃이지요? 태안사 연못에 피어난 새하얀 백련은 버리고 비우면서 마음의 근본 자리를 찾아가는 선정(禪定)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연못에 있는 섬은 돌다리를 통해서 건너갈 수 있습니다. 섬에는 고려 시대에 조성된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연못 위쪽 멋진 한옥은 태안사 찻집 [아란야]입니다. 통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며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꼭 누려 보세요.

오층 석탑과 백련

태안사 대웅전과 백일홍

태안사 절마당으로 들어서면 단순하면서도 정갈해 보이는 대웅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널찍한 절마당에는 참선도량다운 맑은 기운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수형이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백일홍은 8월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데 피를 토하는 것 같은 붉은 백일홍과 대웅전이 환상적인 어울림을 보여줍니다.

대웅전과 백일홍

연못에 피어난 백련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의 티없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뜨거운 무더위 속에서 백일동안 쉬임 없이 붉게 피어나는 백일홍은 수행자의 부단한 용맹 정진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선불교에서 참선을 하는 승려에게 던지는 화두(話頭)를 '공안'이라 합니다. 배롱나무 아래 비석에는 시심마(是葚麽)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불교의 대표적인 화두에 속하는 [이뭣꼬]의 오리지널 버젼이 바로 '시심마'입니다.

'시심마 이뭣고'의 화두를 품고 배롱나무 옆으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끝까지 올라갑니다. 마침내 고개를 잔뜩 숙이고 배알문(拜謁門)을 통과합니다. 거기 지금으로부터 1185년 전 태안사를 찾아왔던 위대한 선승 혜철선사의 승탑이 있습니다. 혜철선사는 아마도 그 답을 찾았겠지요?

혜철선사 승탑은 석공의 정끝에서 태어나 무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다 겪었음에도 여전히 정교함을 보여주고 있어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이 걸작은 국가 유산 국보 승격을 앞두고 있습니다.

적인선사 승탑

이 포스팅이 좀 더 깊이 있는 시선으로 태안사를 바라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천년 고찰 태안사가 전해 주는 위안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얻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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