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생육신 이맹전을 추모하는 영천 용계 서원
달콤한 복숭아 향이 그윽한 영천을 다녀왔습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이곳은 영천을 대표하는 과일 복숭아가 한창 무르익고 있어요.
푸르름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어느덧 용계 서원이 있는 용각 마을에 다다랐더라구요.
용계 서원은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정조의 어명으로 토곡동에 세워졌으며
'용계'라는 이름을 사액 받았습니다. 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노향동으로 옮겨지고 서당으로 사용되다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엔 용계 서원이 한창 공사 중인 것처럼 보입니다.
앞쪽에 공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뭔가 어수선해 보이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강당과 외삼문 보수 공사 중이라고 하는데요 공사기간은 끝이 난 것 같은데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문은 잠겨져 있지는 않아서 잠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용계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익공계 형식으로 지은 누각 건물이에요.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뭇조각 공포를 새 날개 모양으로 간단하게 만든 목조양식을 익공계 형식이라고 합니다.
처마 끝에 있는 공포의 모양이 용의 형상인줄 알았는데 새의 모양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현판의 위치는 건물의 정중앙 즉,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용계 서원의 현판은 왼쪽 두 번 째 칸에 위치하고 있어요.
아마 익공계 공포의 위치 때문에 현판을 가운데 배치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천천히 돌아본 서원의 전경은 흑백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했습니다.
주변은 온통 푸르른데 서원의 주변은 공사 때문인지 생기 없는 메마름이 느껴졌는데요.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충직과 청렴을 나타내는 배롱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져 있었다면 서원에 생기를 불어놓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의 이유로 몇 번의 이동 끝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텐데 관계자들의 관심과 관리가 조금 더 필요해 보입니다.
우측으로 난 작은 문을 통하면 이경은 선생 제단이 있습니다.
이맹전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숙종 39년에 이맹전의 후손들이 지은 건물로 화강암을 다듬어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아 만든 맞배집입니다.
서원의 건축 양식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요. 건물의 외관이 조금 세련되고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로 건물의 앞뒤로 난간을 두른 쪽마루가 있는데요 세련된 건축 감각이 엿보이는 건물이죠.
오른쪽 두 칸 넓은 문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마루이고 왼쪽의 세 칸은 온돌방이에요.
겨울에는 온돌에서 따뜻하게 여름에는 우물마루로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육신 이경은 선생 부조묘는 제단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생육신 이맹전을 위해 정조의 명으로 건립되었습니다.
문이 잠겨져 있어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더라고요.
서원은 유교 성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학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에요.
인품이 훌륭한 성현을 본 받고 지방의 풍속 순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듯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후세에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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