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가 제철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며칠 전 지인과 함께 점심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맛집으로 유명한 고씨굴에서 식사를 하고는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하나씩 손에 쥔 채,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슬쩍 읍내와 반대로 차를 몰았다. 영월읍과 고씨굴을 지나 김삿갓면으로. 김삿갓면에서 김삿갓보다 더 유명한 건 포도다. 예밀리는 ‘예밀포도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포도는 물론 와인과 체험센터, 팜스테이 등, 다양한 체험이 있는 휴양마을을 표방한다. 김삿갓면으로 들어서면 길 좌우로 넓게 펼쳐진 포도밭은 물론, 각 농장에서 방금 수확해 직접 판매하는 직판장도 여럿 만날 수 있다.

드라이브를 하던 우리도 창밖에서 풍겨오는 포도향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 직판장에 들러 포도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이게 웬걸! 사장님이 시식용 포도를 한상이나 차려 놓으셨다. 공짜로 얻어먹기엔 죄송하니 맛이 괜찮으면 나도 한 박스 사야겠다 싶었는데, 포도 한 알을 입에 넣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를 했다. 지인에게 택배로 한 박스를 보내고, 부모님 댁에 드릴 포도 한 박스, 명절을 맞이해 고마운 분에게 드리려고 한 박스, 그리고 내가 먹으려고 한 박스.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4박스를 결제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지만 전혀 아쉬움이 들지 않았다. 그제야 마음 놓고 시식용 포도를 맛보고, 돌아가는 길에 사장님께서 또 포도를 한 송이씩 덤으로 주셔서 오랜만에 포도로 양껏 배를 채웠다. (*영월포도 최고! 이제 곧 추석 명절이니까 고마운 분들께 영월 포도를 한 상자씩 보내 드리자!)

지인과 함께 포도로 배를 채우고는 강가에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에는 가족들과 계곡보다 강으로 더 많이 피크닉을 다니고는 했다. 덕분에 웬만한 영월의 강에는 추억이 하나씩 다 있는데, 이번에 자리를 편 곳도 그렇다. 어린 날 이 강에 왔을 때는 다슬기를 잡았고, 어쩌다 땅벌집을 밟아서 벌에 쏘인 추억이 있다. 물론 이제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트렁크에 돗자리와 캠핑용 의자를 가지고 다니는 센스! 나무 아래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뭐 특별할 일이 있겠나. 그냥저냥 서로 사는 얘기,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어떤 지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가을날, 강은 흐르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하고, 달달한 포도맛이 아직도 입안에 남아 있고. 꽤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자영업자라 딱히 점심시간의 제한이 없지만, 지인은 직장인인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지인은 예밀마을에 농촌유학 프로그램이 있다고 내게 알려줬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한 학기나 두 학기 정도 여기 시골 마을로 내려와 지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초등학생 아이들이 시골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라 했다. 꽤나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시골이 정착을 위해 내려오는 곳이 아니라, 정말 가끔씩 쉬러 내려오는 곳으로 스탠스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평생’이라는 말은 너무 거대해서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적게는 한 달 살기에서 한 학기만 보내는 농촌 유학으로, 길게는 별장이나 농막을 두어 한두 해 보내고 다시 도시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지인과 헤어지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옆에 포도 농장 사장님이 덤으로 주신 포도를 알알이 쪽쪽 뽑아 먹으며 왔다. 주변이 온통 산이라 오랜만에 빌딩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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