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의 천년사찰 신암사

여느 해 보다 올해 9월은 30도를 훌쩍 넘기는 열대야로

전국이 몸살인 이때 오랜 역사를 간직한 당진의 천년사찰

신암사로 마음의 평안을 주는 힐링 여행을 떠난다.

충남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있는 신암사 입구에서 보이는

고즈넉한 풍경의 산기슭에 잘 가꾸어진 가족 묘역이 보인다.

잠시 의아한 생각에 궁금증만 더해간다.

화순 능주를 본관으로 하는 구씨 가문은 고려 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 무인의 명가로 이름을 높인 가문이다.

사찰 주변은 능성 구씨 가문의 집성촌으로, 신암사는

소원과 명복을 빌었던 능성 구씨의 원찰이었다.

당진 천년사찰 신암사는 1,200년대에 창건된 사찰로,

9세기 말과 1995년 2번의 중수 과정을 거쳐 지금에 모습이다.

극락전을 받치고 있는 석축등만 당시의 것이고 건물은 모두

나중에 중수된 것으로 짐작된다.

천년사찰 신암사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과 사천왕상은 보아지

않고 극락전과 주변에 산신각,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다.

신암사는 주차가 편했고 사찰 규모는 작은 편이다.

당진 천년사찰 신암사 6층 석탑은 기단과 탑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극락전 앞에 서 있는데 표지판이 없어 연대를

알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당진 천년사찰 신암사에는 아주 특별한 창건 역사가 있다.

고려 충숙왕 때 고려의 중신 구례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

신씨가 남편의 영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당진 천년사찰

신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암사는 천 년 동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원찰

이름 그대로 망자의 명복을 빌고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개인이나 가문의 원찰로는 유일무이하게도 당진 천년사찰

신암사는 능성 구씨의 원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신암사 창건 당시 불상을 인도에서 모셔 왔다고 하니 당시

능성 구씨 집안이 쾌나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천년사찰 신암사는 고려의 충신 구례의 극락왕생을 위해

창건하여 주불전이 대웅전이 아니라 극락전으로 불리고 있다.

신암사 극락전에 보물로 지정된 금동여래좌상은 삼존불 중

중앙의 불상으로, 높이 88㎝에 불과하지만 어른 수 십 명이

겨우 들 수 있을 정도로 무게가 나간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금동여래좌상이 없고

그곳에 부처님 사진만 남아 있다.

신암사 극락전 뒤편 야트막한 언덕에 산신각이 있다.

우리나라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 기존의 종교인 샤머니즘과

연결하되 자연스럽게 사찰 한쪽에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한 산신각에서 바라보니 신암사의

탁 트인 전망과 함게 여러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스쳐 들려오는 풍경소리도 좋다.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 가장 번성했던 불교 예술을 감상하고,

아주 특별한 창건 설화와 함께 보물 금동여래좌상의 아름다운

불상이 있는 신암사에서 역사도 배우고 힐링을 얻고 싶다면

당진으로 떠나보기를 추천한다.


{"title":"당진의 천년사찰 신암사","source":"https://blog.naver.com/dangjin2030/223597341624","blogName":"당진시 공..","blogId":"dangjin2030","domainIdOrBlogId":"dangjin2030","nicknameOrBlogId":"당찬당진","logNo":223597341624,"smartEditorVersion":4,"caf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lineDisplay":true,"blogDisplay":true,"m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