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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전
신평성당과 원머리성지의 성스러운 겨울
신평성당과 원머리성지의 성스러운 겨울
이제 입춘도 지나갔으니 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좀 차가운 날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신평 성당과 원머리성지에 다녀왔습니다.
신평성당에서 원머리성지는 약 2.5km가 되는데 자동차로 5분 정도 걸립니다.
당진은 어느덧 우리나라 성지순례 1번지가 되어서 많은 성지순례객들이 찾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를 비롯하여 한국의 카타콤바 신리성지와 황무실성지, 원머리성지와 신평성당 그리고 합덕성당까지 많은 성지가 있어 성지순례객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집니다.
신평면 신평시장2길을 지나면 도로변에 신평성당이 있습니다. 서해안 내포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신평성당은 원머리 성지에서 약 2.5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1975년 신평면 소재지에 신평성당을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 성당 소속의 원머리 성지와 1801년 천주교 탄압을 피해 이주해온 많은 분이 살던 교우촌이 있던 지역입니다. 조선 후기 100여 년의 박해로 이곳 출신 순교자만 18명이 있고 무명 순교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1876년 원머리공소 설립을 시작으로 매산, 음섬 공소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신앙 교우촌 공소가 셋이나 있었고 많은 순교자들이 현재의 신평성당을 낳게 하였습니다.
성당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2009년에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마티아 기념비를 세웠고 기념비를 읽으면서 숙연하게 해 줍니다.
사실 개인의 종교를 떠나서 믿음을 지키면서 순교한 분들을 보면 정말 경외심이 절로 흘러나옵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숙이고 잠시 기도합니다.
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순교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원머리 성지를 돌아본 후에 신평성당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달리면 원머리 성지가 있습니다. 도로변에 이정표가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지를 돌아보면서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를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원머리’는 간척을 위해 제방을 쌓아 놓은 첫머리를 뜻하는 ‘언머리’가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원머리는 옛날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간척 사업으로 지금은 평야의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원머리성지는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새로 지어진 초가집은 ‘원머리성지경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재현해 놓은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성모마리아상 서 있어 좀 더 숙연해지게 하고 누군가 밝힌 촛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신평 원머리에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1780년대 후반에 신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미 원머리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민중 종교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신분과 남녀의 차별을 극복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재물을 나누어 주어 당시에는 혁신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원머리 신앙 공동체는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1868년까지 16명의 원머리 출신의 순교자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6명은 홍주와 해미에서 생매장을 당해 순교하였습니다.
이런 박해로 인해서 파괴되었던 원머리 공동체는 1880년대에 이르러 되살아났습니다.
박해 중 잠시 떠났던 신자들이 되돌아오면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하였고 이 이어져 나중에는 신자들이 마을을 주도하는 형태로 변모하였습니다. 원머리와 주변 지역은 성장을 거듭하여 신평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이루었기에 1975년 신평 성당이 설립될 때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원머리성지에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1868년 수원에서 순교한 박선진(마르코)과 박태진(마티아)의 무덤이 있고, 두 분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운구한 공로로 그들의 묘 옆에 서덕행 공로자의 묘가 있습니다.
수원감옥에 갇힌 지 15일 만에 순교했는데 순교할 때 박선진(마르코)는 33세였고 박태진(마티아)는 52세였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순교를 하였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천주교의 부흥을 가져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선진과 박태진의 묘소는 1989년 신평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가 2009년에 다시 원머리로 옮겨졌습니다. 그 사이 원머리 묘역에는 순교자 유해가 없었음에도 빈 무덤을 잘 보존하고 있어 원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원머리성지는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고 원머리성지에 대한 설명과 병인박해 시 순교자 명단, 근현대 순교자 두 분과 순교자의 사복추진 현황 등을 안내하는 게시판이 서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과정을 동상으로 재현해 놓았고, 14개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은 순례자들에게는 소중한 곳입니다.
어디를 먼저 돌아보아도 좋은데 원머리 성지와 신평성당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오늘의 천주교가 있게 한 배경에는 이렇게 순교로 믿음을 지킨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진 여행을 하면서 천주교 성지를 돌아보아도 참 좋습니다. 이곳에 신평면 관광 지도가 있으니 참고하면 좋습니다.
원머리성지
주소 : 충남 당진시 신평면 원머리로 261-57
신평성당
주소 : 충남 당진군 신평면 신평길 63
전화 : 041-363-6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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