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합천이라는 지역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요. 산속 깊은 곳에 따뜻한 온기가 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합천영상테마파크를 비롯하여 대장경테마파크와 황매산, 오도산 자연휴양림이 자리한 곳입니다. 볼거리 외에도 인물도 있는데요. 바로 남명 조식 선생입니다.

남명로를 따라서 가다 보면 남명 조식의 생가지로 가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경상남도 합천에 가면 남명 조식 선생의 생가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자라난 남명 조식은 40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명 조식은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이 그를 가리켜서 “사람됨이 우뚝 솟아 속세를 벗어났고 희고 맑은 성품이 세상 밖에 있을 정도로 높고 멀다.(亭亭物表 皎皎霞外)”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조식에 의하면 학문이란 모름지기 반궁 실천(反躬實踐) 하고 지경 실행(持敬實行) 하는 것이어야 하며 현실에서는 일반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고 삶을 영위하는데 실제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꾸준하게 그를 불러내기 위해 조정에서는 노력을 했지만 자신 한 명이 관계에 나갔다고 해서 바뀌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말 한마디보다 바로 행동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행동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빈말을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이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다른 감성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성리학을 중시하면서도 천문·지리·의학·복서(卜筮)·병학(兵學) 등의 이른바 잡학(雜學)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능통하였던 조식은 평생을 배우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으로 본다면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고 그리고 고쳐야 할 점을 명확하게 알았던 사람입니다.

합천의 남명 조식의 생가지로 가본 것은 처음입니다. 다음번에는 남명 조식의 길을 걸어봐야겠습니다. 골목길을 돌아서 아침 일찍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옛날에 한 풍수 도인이 이 마을을 둘러보고는 암토끼가 달에 있는 수토끼를 쳐다보며 누워 있는 형상의 땅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명 조식 생가지는 조선 중기 때의 대학자인 남명 조식이 태어난 곳입니다. 본가는 삼가면 하판리이고 이곳 토동 마을은 조식의 외가라고 합니다. 조식은 연산군 7년(1501)에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엄격하였던 남명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이 똑똑할 때 훌륭한 사람들을 쓸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가 되지 못하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우둔한데 똑똑한 사람이 아래에 있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남명 조식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던 사람입니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남명 조식이 올린 글을 검색해 봅니다. “자전(慈殿)께서 생각이 깊다 하나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어린 나이로 선왕의 한 아들일 뿐이니, 천백 가지의 재앙을 어찌 다 감당하며 억만 갈래 민심을 어찌하여 수습하렵니까?” 이 글로 인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대신과 언관의 구원으로 무사했으며 조야에 명성을 크게 드러내게 되고 후세까지 길이 칭송되었다고 합니다.

홀로 생각하며 그 길이 맞는지에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곳에는 옛날에 사용했던 농사 기구들도 남겨져 있습니다. 부친상을 당했을 때 타던 말을 팔아서 장례를 치른 남명이었습니다. 남명이 다른 유학자가 다른 점은 학문을 하고 그걸 직접 실현했다는 점입니다. ‘칼 찬 선비’로 잘 알려진 남명 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허리띠에 달고 다닐 정도로 항상 마음 챙김에 힘을 썼다고 합니다.

읽고 보고, 행동하고 직접 해보는 것이 모두 같이 이루어져야 자신에게 모든 것이 흡수가 됩니다. 이곳은 1970년 새마을 운동으로 철거되었다가 현재는 건물을 복원하여 정비 중에 있습니다. 남명의 흔적을 살펴보면 스토아학파와 닮아 있었습니다. 철학이란 금욕과 절제를 통해 개인에게 행복을 얻는 힘을 주는 것이나 마음 챙김과 연결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본성적으로 갖는 합리성을 발전시킴으로써 충동을 넘어서 자연에 일치된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남명이 추구했던 삶과도 닮은 점이 있습니다. 남명 조식에게 배운 사람들은 후대에 실천주의를 전승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앞서서 의병을 일으켜서 진짜 학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남명 조식 선비길에서 만난 칼 찬 선비 남명은 문과 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실천적 가치는 비교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명 조식 선비 길 체험은 남명 생가지와 용암서원, 뇌룡정 등 남명 선생 유적지에 대한 관내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인식 제고와 유적지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남명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되기도 했었습니다. 남명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남명 유적지 해설, 남명 선비길과 남명 생가지 탐방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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