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o](/_next/image?url=%2Fassets%2Fpngs%2Fwello-profile.png&w=64&q=75)
2일 전
[북구 기자단] 역사를 직접 걸어볼까요? 칠곡도호부의 옛길 - 이종진 기자
역사를 직접 걸어볼까요?
칠곡도호부의 옛길
안녕하세요.
행복북구 블로그 기자단 이종진입니다.
오늘은 좀 걸어볼까 합니다.
대구 북구에서는 역사여행하면서 걸어보는 코스가 있습니다.
바로 칠곡도호부의 옛길입니다.
*도호부란?
본래 중국에서 정복한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한
군사적 성격의 기구였지만 고려와 조선에서는
일반 행정기구로 변화
고려 시대에는 5도호부 체제였고,
조선 시대에는 도호부의 수가 점차 증가해
고종 때에는 75개 읍까지 늘어났습니다.
읍격은 목사와 군수의 중간에 해당했으며
1894년에 군으로 통합되어 폐지되었습니다.
대구에도 여러 역사의 흔적이 있습니다.
대구읍성에서는 경상감영과
영남대로, 종로 등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영남대로는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말하는데요.
조선시대 과거를 치러 한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해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영남대로가 거쳐간 칠곡도호부의 부근에서
여러 역사 현장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칠곡향교입니다.
홍살문이 맞아주고 있는데요.
홍살문이 있는 곳은 향교나 릉 등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데요.
붉은색의 의미가 악귀를 물리치는 뜻입니다.
칠곡향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향 공간인 대성전을 뒤에 배치한
전학 후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가산에 산성 축조,
칠곡도호부 설치 2년 뒤인
1642년 인조 20년에 건축되었다.
또한 1819년 순조 19년에 개축을 한 후 양현청, 주고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사라지고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81년 7월 1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칠곡면이 대구시로 편입되었으나
칠곡향교의 향역은 대구광역시 북구와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으로 이전과 같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공립교육기관으로서
지역의 민풍과 예속을 순화하고 인재를 양성해 왔다.
이곳은 지방관청이 관할하였으며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칠곡향교 전통문화체험관은 2013년 3월 개관하여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에 진력하고 있다.
하마비가 있습니다.
보통 관아나 향교 등 다양한 곳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는 뜻입니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칠곡향교 명륜당이 보입니다.
낮은 담으로 쉽게 볼 수 있는데요.
향교는 보통 언덕보다는 평지에 설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국에 있는 향교 중에 몇몇 경우를 살펴보자면
강릉향교는 전국 최대의 명륜당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이곳 칠곡향교 명륜당의 크기도 꽤나 큽니다.
명륜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명륜당은 교육공간으로서 학문을 익히고 연구하는 곳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1832년 편찬된 칠곡지에는 '명륜당은 6칸이고 협실이 2칸이고 동재가 3칸 서재가 3칸이다. 담장 밖에는 양현청과 주고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조 20년 임오년에 경산인 이주 선생이 쓴 상량문과, 하마비에 나타나는 임오년이라는 기록을 통해 현 건물이 1642년에 건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뒤에는 공자와 대성전이 있습니다.
교육공간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어
전학후묘의 구조라고 말하는데요.
이는 향교의 대표적인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원의 경우는 전묘후학의 구조가 많이 보입니다.
공자상이 앞에 있는데요.
대구향교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칠곡향교의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비롯
우리나라와 중국의 성현 25위를 봉안하고 있고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의 기와집입니다.
칠곡향교를 뒤를 하고
이제 칠곡도호부의 옛길을 걸어봅니다.
칠곡 출신의 천재 소설가 이태원의 소설 <객사>의
주요 배경지를 연계한 스토리텔링 중심의 도보여행 코스인데요.
대구 북구에는 이태원 길이 있고
이태원 문학관도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소개해 드렸는데요.
검색해 보셔서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보는 칠곡성당에는 개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객사는 일종의 숙소입니다.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하거나
사신이 이용하는 관사라고 할까요?
이는 전국에는 여러 객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산시청 옆에도 객사가 있고
상주임란북천전적지, 청송 소헌공원
등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 크기가 꽤나 큽니다.
이러한 객사가 있었다는 것은
이곳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임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남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나오는
읍내동 행정복지센터입니다.
이곳에 관아와 내아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아는 관청입니다.
관아는 관리가 업무를 보는 곳이고
내아는 관리의 살림살이 공간입니다.
관아와 내아는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가까이 있기도 하는데 가까이 있던 사례를 보자면
김제의 관아와 내아 사례입니다.
지금도 명맥을 유지가 되고 있어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바로 이곳이 칠곡도호보의 중심지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다음은 건너편에 있는 칠곡초등학교입니다.
개방이 되어 있어 들어갈 수 있는데요.
안에는 여러 비가 있습니다.
비석의 경우 이태원 선생의 이야기와
류기달선생 교육불망비, 양재하 선생 교육공덕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육방이라고 하는 행정조직이 있던 자리입니다.
관아와 내아 자리에서 맞은편에 있기에
이곳 일대가 그 영역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을
보좌하던 행정조직을 육방이라고 하는데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 6개 부서를 말하고
담당자를 향리라고 합니다.
칠곡초등학교 북쪽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쪽문이 있습니다.
대구칠곡교회 편으로 나오게 되는데요.
이곳에는 영남대로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벽면에 안내되어 있는
칠곡도호부의 옛길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옆에 있기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이 배워보고
이곳 동네 주민들도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전시자료입니다.
이곳의 역사도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수창군의 관할인 팔거리현을 팔리현으로 변경 -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 팔리현을 팔거현으로 개명 - 1018년 고려 현종 9년 팔거현의 소속을 수창군에서 경산부(현재 성주군)로 변경 - 별호는 칠곡, 1593년 조선 선조 26년 팔거현에 경상도 감영 일시 이전 - 1640년 조선 인조 18년 가산산성을 쌓아 안에 관아를 두고 팔거현을 칠곡도호부로 승격 - 1819년 조선 순조 19년 가산산성 안의 관아를 읍내동일대로 옮김 - 1895년 조선 고종 32년 대구부 칠곡군으로 개편 - 1896년 조선 고종 33년 경상북도 칠곡군으로 편입 - 1914년 군, 면, 폐합으로 퇴천면, 팔거면, 문주면이 칠곡면으로 통합 - 1980년 칠곡읍으로 승격, 1981년 칠곡읍이 대구광역시 북구로 편입 |
이제 북쪽으로 돌아서 나오면
칠곡박한의원 옆길이 이어집니다. 현재는 작은 골목인데요.
이곳 일대가 영남대로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보면 작은 길이었지만
옛날에는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이렇게 3km 정도 걸어보면서
대구 북구의 역사도 밟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칠곡도호보의 역사도 살펴보면서
운동도 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는데요.
다음에도 대구 북구의 역사를 밟아보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안녕!
- #대구
- #대구북구
- #대구북구청
- #북구
- #칠곡향교
- #칠곡성당
- #칠곡초등학교
- #대구칠곡교회
- #칠곡도호부옛길
- #역사
- #대구역사
- #대구역사여행
- #역사여행
- #영남대로
- #칠곡
- #대구칠곡
- #대구가볼만한곳
- #칠곡가볼만한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