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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전
[✈️천안시민리포터] 이동녕 선생 생가지에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천안시민리포터
지구촌 사람입니다.
천안은 충절의 고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 유관순 열사와 이동녕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이며
3.1운동의 발상지가
천안 아우내 장터였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위치한 것도
다 그러한 이유인데요.
오늘은 석오 이동녕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인 생가지가
목천읍 동리에 위치해 있어
다녀왔습니다.
이동녕 선생 생가지는
목천읍 동리4길 36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아늑한 뒷산이 감싸주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또한 왜가리 서식지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옆은
석오 이동녕 선생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
안에는 들어갈 수 없어 건물 사진만 남깁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이 조약이 체결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다 옥살이를 하였고
감옥에서 나온 후
1906년 만주 북간도로 망명,
이상설과 함께 한국 최초의 해외 사립학교인
서전의숙을 설립,
민족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뒷날 독립운동의 기수들을 양성하신 분입니다.
국내에서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임시 의정원 초대의장을 역임하는 등
평생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신 분입니다.
이동녕 선생 휘호석에서
<산류천석> 이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이 성어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인데요.
노력에 관련된 표현으로 많이 쓰입니다.
한 물방울, 한 물방울이 모여
끊임없이 흐르면
언젠가는 그 힘으로
돌마저 뚫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작은 노력이라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해외에 망명하여 노력해오신
이동녕 선생의 생과 그 결을 같이 하기에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생가지로 방문해 보겠습니다.
생가지는 2005년 12월에
보수 및 정비가 완료되고,
생가복원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더불어 우물, 포토존(이동녕 선생 좌상) 등
구조물이 구성되었고,
생가에는 안방, 사랑채 등에
옛가구 및 인물모형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이동녕 선생 생가에 있는 우물입니다.
생가 옆에 서있는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역
석오 이동녕 선생 서거 85주기를 맞아
천안시에서 3월 13일(목) 14시부터 15시까지
석오이동녕 기념관에서
추모제 행사를 실시합니다.
관심있는 시민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리며
이상으로 이동녕 선생 생가지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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