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 '물불', '건달불'

1887년 경복궁(景福宮) 건청궁(乾淸宮)에서

대낮같이 밝은 이 불을 처음 본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 점등은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개발한 지 불과 8년만입니다.

우리 통영에도 전깃불 터가 있습니다.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김춘수의 시 '명정리(明井里)'가

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명정골, 골목에 있습니다.

서포루가 가까이에서 보이는 명정 마루 근처에

차를 세웠습니다. 예전에는 술을 만들었던

공장의 굴뚝만 우뚝 솟아 오는 이들을 반깁니다.

물이 흘러내리는 고랑에서 가죽을 많이

씻었다는 가죽 고랑 길 새 도로 주소명이

우리를 앞서서 안내합니다.

가죽 고랑 길은 또한 음악가 윤이상과

함께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윤이상 기념관이 근처에 있습니다.

고운 동백이 환하게 불빛처럼 꽃피운

벽화 앞에 쉬어가라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작은 길 건너편에 서피랑 99계단으로

올라가는 골목이 나옵니다.

골목에는 은빛 물고기가 방문객의 손가락을

간지럽히듯 살짝 문 듯한 박충익의 <동행>

조형물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이끕니다.

기분 좋은 동행길, 동백이랑 서피랑이라는

정겨운 간판 아래 갈매기 조형물들이

끼룩끼룩 노래 부르며 반기는 듯합니다.

곁에는 "보이소! 반갑습니데이~" 누구에게나

인사하는 거리를 알리는 안내판이

덩달아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게 합니다.

이곳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어디를 걸어도 넉넉하고 아늑합니다.

그러다 저만치에서 다정하게

입맞춤하는 조형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사랑이 넘실거리는 기분입니다.

은행나무잎을 닮은 노란빛의

<서피랑 국수>에서 걸음은 멈췄습니다.

길가에 거울이 붙어 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이들 곁을 지나면 작은 아파트가 나옵니다.

통영 청년센터, 통영 청년 세움입니다.

한전직원 기숙사였던 곳이 지금은

통영지역 청년들에게 필요한 스터디룸,

창작 및 휴게공간 등 활동공간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취·창업, 주거·금융 상담,

창작·문화 활동 지원 등 다양한 청년 지원사업을

제공하는 통합 서비스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1층에는 갤러리가 있습니다.

잠시 갤러리 <토닥>에 들어가

전시작들을 둘러봅니다. 그저 찬찬히 둘러보았을

뿐인데도 토닥토닥 위안받는 기분입니다.

건물 밖으로 나와 길가 쪽에 앙증스러운

조형물과 함께 <전기불터> 비석이 서 있습니다.

"이곳은 1917년 10월 25일

통영 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이 고장에

처음으로 전기를 발전하여 공급했던 곳"이라는

안내 글귀가 나옵니다.

전깃불을 구한말 사람들은 한자로

'묘화(妙火)'라 했습니다.

일상의 등잔불과 다른 새롭고도

이상야릇한 불이라는 뜻입니다.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더구나 박경리가 실감 나게 묘사한

김약국의 딸들이 살았던 흔적을

밟으시는 분이라면 더욱더 명정골 전기불티에서

이상야릇한 전기의 역사와 함께 여유롭고

정감 어린 동네 분위기에 젖어보기 좋습니다.

즐거운 숨은 보물 찾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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