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기자]

경기도에는 다양한 연구 기관이 있는데요,

그중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이 있습니다.

한중연은 1978년 한국의 역사, 문화, 철학 등

한국학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부 산하 국가기관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의정과 5층 석탑 만추 풍경 ©이재형 기자

한중연은 연구 기관이지만,

청계산 자락에 있어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만여 그루의 잘 가꾸어진 수목과

운치 있는 연못,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가을이면 단풍과 함께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방문 프로그램 표찰 및 장서각 지하 주차장 ©이재형 기자

한중연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반인 누구나 출입할 수 있으나

월요일에는 출입이 불가하다고 합니다.

단 장서각 전시기간 12월 27일까지는

평일 모두 출입할 수 있습니다.

정문에서 신분증을 제시 후

방문 프로그램 표찰을 받아

연구원 단풍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주차는 장서각 지하 1층에 할 수 있으며,

주차장이 넓어서 주차 걱정은 없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건물 ©이재형 기자

정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 장서각입니다.

조선 왕실 도서관인 장서각은

왕실 도서 약 12만 권과 전국에서 수집한

고문헌 6만여 점을 소장한 도서관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내부 ©이재형 기자

장서각은 조선 왕실 및 양반가의 문서와 서적 등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장서각 1층 전시실 ©이재형 기자

장서각 1층에 전시실이 있습니다.

전시실에서 2024년 장서각 기획전으로

<사도세자와 두 임금의 시선>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 기간을 보니 12월 27일(금)까지인데요,

연말까지 하니 여유 있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세자와 두 임금의 시선> 전시회 ©이재형 기자

전시 제목이 <사도세자와 두 임금의 시선>이잖아요.

여기서 사도세자는 정조의 아버지이며,

두 임금은 영조와 정조를 말합니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와 정조의 기록을 중심으로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명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숭(追崇)하는 과정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1층 전시실 ©이재형 기자

전시 구성은 장서각과 타 기관 소장자료

총 57건을 선정해

△효장세자의 사망과 영조의 슬픔

△사도세자의 탄생과 영조의 기대

△사도세자의 일탈과 영조의 절망

△영조의 결단과 영빈 의열의 현창

△정조의 비애와 사도세자 추숭(追崇)

총 5부로 나누어 구성하였습니다.

57점의 전시물을 다 소개하진 못하고

사도세자를 두고 영조와 정조가 어떤 시각,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1부 효장세자의 사망과 영조의 슬픔

제1부 효장세자의 사망과 영조의 슬픔 ©이재형 기자

조선의 제21대 국왕 영조(재위 1724~1776)는

역대 왕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영조는 첫째 아들 효장세자(1719~1728)가

세상을 떠나자 요절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친히 지은 영조의 행록(行錄)과 지문(誌文),

연보(年譜), 시(詩) 등을 지었는데요,

자식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효장세자 상례 등록 ©이재형 기자

효장세자 상례 등록은

효장세자가 사망한 1728(영조 4) 11월 16일부터

1731년 1월 4일 사이에 이루어진 일들을

날짜 별로 정리했습니다.

자료마다 자세한 해설과 설명이 있어

고문헌 등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영조 어제 제문 ©이재형 기자

영조가 직접 쓴 제문(祭文)입니다.

아들 효장세자가 죽은 것을 애도하며 썼는데요,

내용도 아비의 애끓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글씨를 자세히 보니 참 잘 썼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영조도

자식 교육은 뜻대로 되지 않아

그 심정을 표현한 제문입니다.

2부 사도세자의 탄생과 영조의 기대

제2부 사도세자의 탄생과 영조의 기대 ©이재형 기자

영조는 갓 태어난 세자가 얼마나 예뻤겠어요.

영조가 효장세자에게 걸었던 기대가

혹독한 교육열로 바뀐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 세자는 영민한 면모를 보였으나,

10세 무렵부터 공부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에 실망과 분노가 커진 영조가

어린 세자를 훈계하고 교육하고자

지은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왕세자 가례 등록 ©이재형 기자

왕세자 가례 등록입니다.

1744년에 치러진 사도세자와 세자빈 홍 씨의

가례 과정을 예조에서 날짜별로 정리했습니다.

1743년(영조 19) 2월 21일,

세자빈 간택을 위해 금혼령을 내리는 시점부터

간택 단자 봉입,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 등을 거쳐

1744년 1월 13일 가례에 참여한 관원들에게

상을 내리는 것까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영조가 사도에게 써준 훈유(訓諭) ©이재형 기자

1743년 3월 17일 관례를 치르는 사도를 위해

영조가 동년 2월에 직접 짓고 쓴

훈유(訓諭, 일종의 교훈집)를 모각하여

첩으로 만든 것입니다.

서두에 ‘훈유’라는 제목이 있고,

이어서 “뜻을 원대하게 세우고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부리고 공평한 마음으로

똑같이 대하고 현명하고 유능한 자에게 일을 맡겨라”

라는 16자가 있습니다.

영조 어제 「노인이 스스로 탄식하는 것을 흉내 낸 회문시」 ©이재형 기자

하지만 영조의 사도세자를 위한 교육은

뜻대로만 되지 않았죠.

1746년 5월 21일 영조는

승지에게 회문시를 받아 적게 한 뒤

세자가 근래에 놀기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싫어하며

학문적 성취가 없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이런 우려와 한탄을 한시라는 양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회문시입니다.

3부 사도세자의 일탈과 영조의 절망

제3부 사도세자의 일탈과 영조의 절망 ©이재형 기자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못마땅한 영조와

이를 두려워한 사도세자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던 시기의 일들을

사도세자가 남긴 예필 등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무렵 사도세자와 혜경궁 사이에서 태어난

세손(훗날 정조)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영조는 세자가 아닌 세손에게

훈계의 글을 써주기 시작합니다.

사도세자 예제 예필(1758년) ©이재형 기자

1758년 2월 15일에 사도세자가

별감 황석기에게 써준 칠언시입니다.

파초 문양이 찍힌 용지 위에

사도세자 특유의 투박한 서체로 작성되었습니다.

사도세자는 모친의 일주기에

일개 미천한 관원에게 장난기가 농후한

엉터리 시편을 써준 것입니다.

사도세자 예제 예필(1761년) ©이재형 기자

1761년 4월 9일 사도세자가

평양부에 거주하는 서필영 자손의

잡역 면제를 지시한 영지입니다.

영지란 대리청정하는 왕세자가

신하에게 내리는 명령입니다.

사도세자의 글씨를 볼 수 있는데,

어려서 그런지 글씨를 그리 잘 쓰지 못했습니다.

4부 영조의 결단과 영빈 의열의 현창

제4부 영조의 결단과 영빈 의열의 현창 ©이재형 기자

사도세자의 일탈과 기행이 극에 이르자

생모 영빈이씨가 아들의 죄상을 고하며

대처분을 요구하고 이에 영조가

사도세자의 처분을 결심한 자료 등으로 구성했습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아흐레 만에 비극적으로 사망한 후

영조는 사도세자의 장례를 간소화하고

처분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역설했습니다.

「폐세자 반교문」 ©이재형 기자

전시에서는 영조가 아들의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왕의 책임을 다하려 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감정은

단순한 개인적 분노나 실망을 넘어선,

국가 통치자로서의 중대한 결정으로 다가왔습니다.

「폐세자 반교문」은 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자정이 넘었을 때 영조가 써서 반포하면서

아들이자 사도세자를 폐위하고 처분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 것입니다.

사도세자 사망일 「영조실록」 기사 ©이재형 기자

영조는 아들이 죽자 세자 위호를 회복시키고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시호는 사도가 예전 잘못을 후회하다가

요절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조는 나중에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5부 정조의 비애와 사도세자 추숭

제5부 정조의 비애와 사도세자 추숭 ©이재형 기자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생부 추숭의 의지를 드러내며

시호와 존호를 올리고 육체와 혼령이 깃든

공간의 이름을 바꾼 정조의 내용을 다뤘습니다.

여기서 추숭(追崇)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특별한 예우나 존경을 표하며

그 지위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정조가 쓴 임진예찰 ©이재형 기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를 위한 사당을 짓고,

그를 추숭하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이 예찰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그리움과 혜경궁의 비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정조 어제 어필 ©이재형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정조가 남긴 기록과

그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벌인

여러 행적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정치적 안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자투성이 고문헌과 딱딱한 설명이 즐비한 전시지만,

관람을 마치고 나니 부자 간의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실 ©이재형 기자

우리가 역사를 책으로 배우잖아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책이 아닌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와 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영조와 정조가

각각 사도세자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즉, 두 임금의 서로 다른 시각을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사도세자와 두 임금의 시선> 전시회 ©이재형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기획전 <사도세자와 두 임금의 시선>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도세자와 그를 바라본 두 임금의 이야기

심도 있게 탐구한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전시회에 온다면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 간의 생생한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정보

장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기간

2024.10.7~12.27

관람시간

화~금 10:00~16:00

(매주 월요일, 공휴일 휴관)

관람 및 주차료

무료

문의

031-709-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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