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일 전
홍주천년역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홍주성역사관
홍성 가볼 만한 곳 홍주성역사관을 다녀왔습니다.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매주 월요일/1월 1일/설날/추석 휴관일
점심시간 12:00~13:00
점심시간에는 근무하지 않으니 참조하세요.
전화번호 041-630-9231
홍성 가볼 만한 곳 홍주성역사관은
홍주 천년 역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2011년 5월 개관한 홍주성역사관은
하늘에서 북이 떨어진 천혜의 명당이라는 의미인
'천고낙지의 땅 홍자'를 주제로
홍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찾아보는
역사의 공간입니다.
또한 홍성이 배출한 역사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알려주고.
'홍주와 보부상'을 주제로
보부상의 유품과 활동상, 천주교 박해와 홍주의병,
홍성의 독립운동 등
고려 시대 이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적인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홍주 역사 연표가 쭉 늘어져 있습니다.
고대의 홍성/천년의 고을, 홍주
홍성은 서쪽으로 천수만과 접하고
나지막한 구릉과 하천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홍성읍 옥암리 구석기 유적, 광천읍 상정리 신석기 유적,
홍성읍 남장리 청동기 유적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나말여초 홍성지역은 '운조'라 불렸는데,
운주성주 긍준이 고려의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군을 몰아내면서
고려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1018년(현종9)에 '홍주'로 고치고
3군 11현을 두어 '지주사'를 파견했습니다.
1358년(공민왕7) 왕사 보우(1301~1383)의
고향이라 하여 '목'으로 승격되었고,
조선까지 이어져 내포지역의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홍성의 사족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살기 좋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면서 넓다.
또한 소금과 물고기가 많아서
대를 이어서 사는 사대부들이 많다'라고 할 정도로
사족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었습니다.
사족들은 내포지역의 토지와 생산된 물자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많은 역사인물을 배출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홍성군에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남당 한원진 선생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던 기호학파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요.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 송시열-권상하-한원진
그중 남당 한원진은 권상하가 사망할 때
그 유품을 물려받은 제자입니다.
기호학파의 계보를 이으며
호락농쟁에서 호서지역 학자들을 이끌었습니다.
홍성군 서부면에는 한원진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인 양곡사가 있습니다.
기호유학의 큰 별 남당 한원진 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묏자리, 홍주성지
서해와 인접하고 삽교천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내포지역과 홍주는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시기와
전파속도가 빨라 천주교 신도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1792년 홍주옥에서 얼어 죽은
원시장 베르로를 시작으로
212명의 천주교신자들이 홍주목에서 순교하여
'신앙의 묏자리'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124위 시복미사에서
홍주목에서 순교한 원시장 베르로,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라우렌시오,
황일광 시몬이 시족되었습니다.
홍주 가볼 만한 곳 홍주성역사관에서는
시대별로 중요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홍주 지역의 동학/홍주의병
1894년 7월 태안, 서산 일대에서 일어난
충청도 동학군은 반봉건,반외세의 가치를 내걸고
내포지역을 휩쓸고 홍주성을 포위하였습니다.
하지만 관군과 유학군에 막혀 패퇴하였고,
무자비한 학살이 이루어졌습니다.
동학군의 시체가 동문 밖과 숲속에 쌓였고,
생포된 동학군은 홍주성 북문 밖에서 처형되어
빙고치(현 목빙고 주변 고개)에 매장하였습니다.
동학군의 패배로 내포지역에서
동학군의 위세는 타격을 입었지만
외세에 대한 저항정신은 훗날 홍주의병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홍성
홍주는 1894년의 홍주부, 1896년의 홍주군을 거쳐
1914년 일제에 의해 홍주와 결성이 통합된
홍성군으로 개편되었습니다.
홍성에서는 일제의 무단통치에 강하게 저항하였는데,
1919년 3.1운동 당시 홍성 전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으며
그중에서도 장곡,홍동,금마면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하였습니다.
1926년 6.10만세운동 때도
홍성공립보통학교(현 홍성초) 학생들이
홍주읍성 내 남산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홍성의 유림들도
유교부식회 활동을 하면서
유교를 통한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는 역할을 했어요.
홍성의 의로운 역사, 뼈아픈 역사
이곳에는 만주벌 호랑이 백야 김좌진 장군과
저항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홍주.결성, 홍성이 되다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1942년에는 광천면이 광천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
60년대 이후로 저수지 건설과 새마을 운동의 일환인
마을 정비 사업으로 농촌 생활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80년대부터 홍성읍의 도시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면지역의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나,
90년대 이후 각종 산업시설과 대학교가 들어오고
다양한 산업 형태가 출현하여
새로운 발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13년 대전에 있던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였고,
충남도청사가 들어온 홍북면은 2017년 7월
홍북읍으로 승격되어
현재 홍성군은 3읍 8면 141 법정리고 구성되어 있습니다.
홍성 가볼 만한 곳 홍주성역사관
홍성군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내용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홍성 여행 시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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