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맞이하는 휴일 한낮은

아직 따갑습니다.

그래도 그냥 집에서 보내기에는

모처럼 맞이하는 휴일이 아깝습니다.

김천 혁신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봉저수지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김천 근교의 휴식공간이죠.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지만,

한 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가끔 가족과 함께 들리곤 합니다.

오늘도 오봉저수지는

여느 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삼삼오오 산책하는

가족들 모습이 간간이 보이고

젊은 남녀가 흔들 그네에 앉아

낭만을 즐기는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김천의 국보,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김천시민이 함께 김천으로 되찾아옵시다.”

“국보 갈항사지 삼층 석탑은 김천으로”

이미 시내 곳곳에도 걸려 있던 현수막이지만,

유독 오늘 크게 느껴진 이유라면

아마도 ‘삼층석탑’보다

‘국보’란 그 단어 아니었을까요?

‘국보급 유물이 김천에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되새기며

한 시간여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봉저수지에서 1Km여 부근에

이정표를 알리는 간판 하나가

눈에 확연히 들어오네요.

‘김천 갈항사지 석조여래좌상 2.3Km’

아는 만큼 보이나 봅니다.

평소 자주 다니던 길이었지만

갈항사지 이정표를

본 기억은 없었는데 말이죠.

오봉저수지에서 불과 3~4Km 부근에

국보급 유물이 있었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갈항사가 어떤 사찰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김천시민이 그토록 반환을 바라는

동·서 삼층석탑이 있었던

갈항사지를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갈항사지 가는 길 주변 풍경입니다.

길 주변에는 과수원이 많습니다.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오봉지’라는 작은 저수지도 보입니다.

저 멀리 금오산 보이나요?

금오산 와불(臥佛)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입니다.

길 주변에는 칡덩굴이

여기저기 울창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갈항’이란 마을 이름과

이 칡이 무관치 않을 것이란

추측도 해봅니다.

차 하나 피하기 힘들 정도로 좁은 동네의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금오산 자락으로 들어서면

끝자락에 갈항사의 옛 터로 짐작되는

공터 하나가 나옵니다.

갈항사는 김천시 남면에 있었던

절이었습니다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고 합니다.

692년(통일신라 효소왕 1년)

승전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삼국유사에 ‘승전이 개령군에 절을 짓고

돌멩이 800여 개를 모아놓고

화엄경을 강연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비어있는 공터를 보면서

문득 시조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천오백 년(오백 년) 갈항사지(도읍지)를

필마로 들어서니 산천은 의구한데

좌·우 삼청석탑(인걸)은 간데없네

오봉리 석조석가여래좌상

갈황사의 금당 뒤에 있던 여래좌상입니다.

없어진 절에 터만 남아 있고,

불상은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보호각에 안치돼 있는 석조석가여래좌상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어

실물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여래좌상을 설명한 안내판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둥근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눈·코·입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가슴이 발달하였고 허리가 잘록하며,

왼쪽 어깨를 감싼 옷은 굴곡 있는 신체에 밀착되어

부드러운 옷 주름 선을 나타내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아래를 가리키고 있지만,

오른 손목과 손등뿐이며 왼손도 일부 깨졌다.

양손과 하반신 일부가 손상되어 있지만,

형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중략)

전반적으로 온화하면서 세련미가 있는

8세기 중엽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사진 출처 : 좌측의 사진 동.서 삼층석탑은 네이버 지식백과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모습입니다.

갈항사 옛 터에는 삼층석탑에 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국보 제99호인 동·서 삼층석탑은

그 당시 석조석가여래좌상의 동쪽과 서쪽에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하자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에

결실 부분이 있음에도

‘석가탑’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8세기 중엽에 유행하였던

그 비례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호각 맞은편에는

석조비로자나불상이 있습니다.

석불과 대좌는 여러 군데 깨져 있고,

불두와 왼팔은 시멘트로 붙여놓은 듯한 모습으로

철책 안에 갇혀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마멸이 진행되어

세부 표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갈항사지 바로 뒤에는

갈항사란 작은 절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갈항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잠시 들러봤습니다.

여름 끝자락의 어느 휴일 오후

갈항사지 탐방을 마친 소감은 복잡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 도굴꾼에 의해

뜻하지 않게 김천을 떠나야 했던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그 석탑이 있던 자리는 아직도

주인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텅 비어있었습니다.

갈항사 석탑은 2단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동탑의 기단에는 ‘통일신라 경덕왕 17년(758년)에’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했다’란 내용이

이두문으로 새겨져 있어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석탑이라고 합니다.

이 두 탑이 1962년 김천에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됐지만

아직 갈항사 터에는 삼층석탑이 보이지 않은

그 모습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습니다.

다행히 김천시가

10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갈항사 삼층석탑의 반환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하고

석탑이 있었던 원위치의 기반 여건 조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돼 기쁩니다.

국보든 보물이든 제자리에 있을 때

빛이 나고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 김천의 국보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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