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의 맛을 찾아서⑨ 동구 동부동 하동식당
겨울, 헛헛한 일상을 위로하는 뜨끈한 국밥
글 이상길 칼럼니스트 : 울산동구 서부동 토박이. 울산제일일보 기자이자 영화·드라마 파워블로거. 내돈내산 내맘대로 맛집 탐방을 하며 깐깐한 입맛으로 자체 평가한 음식을 감칠맛 나는 글을 선보이고 있다.
국밥은 이름처럼 볼품이 없다. 한식의 가장 기본인 ‘국’과 ‘밥’이 사실상 전부인 만큼 이른바 상다리가 휘어지는 진수성찬(珍羞盛饌) 같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초라하다. 게다가 국밥은 선택권도 없다. 애초에 밥을 국에 말아 나오는 만큼 주는대로 먹어야 한다. ‘따로 국밥’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국밥의 본질에서 살짝 벗어난 느낌이다.
아무튼 국밥은 전형적인 서민 음식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선택권도 제한된 국밥은 오로지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바쁜 우리 서민들의 처지와 닮았기 때문. 해서 한 그릇의 뜨끈한 국밥은 늘 ‘위로’가 된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날에는 더하다.
어느새 겨울이 왔고,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울산 동구를 대표하는 국밥 맛집인 ‘하동식당’을 찾게 됐다. 가게 이름은 ‘하동식당’이지만 늘 ‘하동국밥’으로 불릴 정도로 국밥이 유명한 곳이다. 필자도 하동국밥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동구에서 살면서 찾게 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늦었던 이유는 딱히 없었다. 걍(그냥) 인연이 늦었던 것. 언제 한번 간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동구의 관문과도 같은 남목에 있다 보니 늘 지나치기만 했었다. 또 나이를 먹고서는 거부감 없이 잘 먹지만 어려서부터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커서도 일부러 찾아가 국밥을 먹을 정도의 마니아도 아니다. 해서 하동식당을 처음 찾게 된 그날도 가게에 들어서기 전까진 실은 ‘국밥이 다들 거기서 거기지 뭐’라는 심산이었다. 허나 잠시 뒤 필자는 국밥의 ‘신세계’를 만나게 됐다.
우리가 찾은 시각이 대략 오전 11시 40분 정도였고, 가게 안은 이미 사람들로 꽉 채워지고 있었는데 국밥집의 풍경이 대개 그렇듯 다들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뜨끈한 한 끼의 위로를 위해 찾는 듯한 느낌이 역력했다.
다행히 남는 자리가 아직 몇 개 있어 일행과 함께 잽싸게 앉은 뒤 주문했다. 참, 이 집엔 ‘내장’, ‘살코기’, ‘섞어’ 세 종류의 돼지국밥이 있다. 같은 종류로 따로국밥도 있는데 국밥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난 살코기 돼지국밥을 시켰다.
국밥이 나오기 전, 메인 반찬인 석박지를 접시에 담은 뒤 젓가락으로 집어 맛을 봤는데 익히 들었던 “석박지도 맛있다”는 세간의 평을 단번에 실감할 수 있었다. 갓 담은 것 같은 데도 살짝 익어서 엄마가 직접 담가 식탁에 올린 느낌이었다.
잠시 뒤, 드디어 기다리던 국밥이 나왔다. 국밥 위에 잘게 썬 파와 고춧가루 한 웅큼이 가운데 놓여나왔는데 전체적인 색(色)의 조화가 우선 좋았다. 또 숟가락이 국밥에 꽂혀서 나왔는데 마치, 어서 빨리 맛을 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 이상하게 군침이 돌았다. 이내 꽂혀 있는 숟가락으로 국밥을 잘 섞은 뒤 첫술을 뜨게 됐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순식간에 맴돌았다. ‘하동국밥, 하동국밥 하더니 진짜였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국물의 끈적함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가끔씩 먹었던 지금까지의 국밥들과는 달리 그 끈적함이 적잖게 충격적이었던 것. 그로 인해 밥과 국이 화학적 결합을 일으켜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간도 딱 맞았고 잘게 썰어서 나온 살코기는 풍미를 더했다. 해서 숟가락으로 계속 흡입하면서 함께 먹은 지인들에게는 “여태 내가 먹었던 국밥 중 최고”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진짜 그랬다.
식사를 마치고, 글을 쓰기 위해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으려고 주방으로 갔더니 주인은 없었다. 국밥집 직원들에게 물어보려 해도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탓에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1981년에 개업을 했고, 식당 주인은 울산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가게 이름이 ‘하동식당’인 만큼 아마도 경남 하동군이 고향이 아닐까 짐작이 됐다. 또 주인 되시는 분이 이런 맛집 인터뷰도 잘 안 한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이후 몇 차례 가게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다. 그래도 섭섭하진 않았던 게 이렇게 맛있는 국밥집이 내가 사는 울산 동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웠기 때문. 그보다 하동국밥 특유의 끈적함의 비결이 더 궁금하다. 물론 아무리 물어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겠지만.
진수성찬에 비해 턱없이 단출하지만 국밥에는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우리 서민들의 수많은 슬픈 사연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도 국밥은 그 모든 걸 뚝배기에 말아 ‘위로’로 승화시킨다. 고맙다. 곁에 있어 줘서.
※ 대왕암소식지 2024년 겨울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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