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동구 인권뉴스 ㉒ 미역국 수능 도시락
울산인권운동연대 ‘인연’ 편집위원회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던 중 모 신문사의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을 싸준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제목을 보면서 바로 떠오르는 생각은 “미역국을?”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일에 일부러 챙겨 먹는 음식인데, 수능일이라고 먹으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어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을 싸주게 되었는지(기사 제목에 낚인 것일까요?).
엄마는 수능일 이전부터 아이와 수능 날 도시락으로 뭘 싸가면 좋을지 이야기해 왔다고 합니다. 처음 정한 메뉴는 죽이었다네요. 긴장으로 인해 소화가 잘 안될 수 있어 많은 학부모님이 선택하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엄마는 모의시험 보는 날에 죽을 싸주었더니 괜찮았다고 해서 수능 날에도 그렇게 싸줄 생각이었답니다. 그런데 수능 전날, 아이가 속이 조금 불편하다며 미역국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네요. "시험 보기 전인데 미역국 괜찮겠어?"라는 물음에 "미역국이 안 좋다는 거 근거 없는 말이잖아요. 오히려 위에 부담 안 되고 좋대요."라고 답하면서요. 그런데 미역국을 먹은 아들이 속이 편안했다면서 수능 날 미역국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네요. 고민하다가 미역국을 먹고 미끄러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만 없애면 시험 보는 날 싸주어도 문제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기사를 보면서 세 가지 놀람(?)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수능일 이전부터 아이와 수능 날 도시락으로 뭘 싸가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눠왔다는 것입니다. 요즘 학부모들은 미리부터 수능 날 도시락까지 챙기는구나! 나는 어떻게 했지? 아무런 기억이 없습니다. 분명 우리 아이도 수능시험 보러 갔던 것은 맞는데, 마치고 나서 수고했다며 고기 먹으러 갔던 기억밖에 나지 않습니다(가채점해 본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틀렸다’라며 우울해해 마음 편히 먹지 못해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한 단계 과정을 마무리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는데, 수능을 치러낼 아이의 당일 컨디션에 더 집중하는 학부모님의 모습이 새로웠습니다.
두 번째는 미역국을 싸달라는 아이의 선택이었습니다. 자기 몸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요청하는 모습이 새롭습니다. 아이는 늘 자신을 관찰해 왔다는 것이겠지요. 자기 몸 상태는 어떤지, 속이 불편할 때 어떤 음식이 좋았는지 등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고요. 선택의 기준 역시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사회적 인식 보다는 자신에게 있었고요.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자존감 높은 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아이의 주장을 선뜻 수용하고 ‘미역국 도시락’을 싸준 엄마의 태도였습니다.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아이 엄마는 ‘수험생에게 미역국은 금기 식품’이라고 믿고 있었답니다. 저도 자라면서 시험 날에는 절대 미역국을 먹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면접하러 갈 때도 먹지 않았죠. 미끄러진다고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도 말이죠. 아이 엄마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삶이었기에 ‘혹시라도…’라는 두려움이 있어 아이의 요구를 수용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세개의 놀람 속에는 자기 존중, 상호 존중, 합리적 수용의 모습이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에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게 태어났으므로 자신을 존중함과 동시에 타인도 존중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아이와 부모 관계 역시 상호 존중되어야 하고요. 또한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은 존재이므로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그리고 서로의 주장에 대한 합리적 수용이 서문에 명시된 인류의 자유, 정의, 그리고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가 되고요. 그러고 보니 ‘인권’은 늘 우리 곁에서 삶의 평화를 안겨주는 도구로서 역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인권 감수성’을 좀 더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 대왕암소식지 2024년 겨울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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