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평택의 인물을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평택의 인물 흔적을 찾아서

오늘은 추담 오달제와 정암 조광조를 탐구합니다.

통복천 바람길숲 인물의 숲에는 평택을 빛낸 열세 분이 안내되어 있는데요.

왕도정치를 꿈꾼 개혁가 정암 조광조(1482~1519)와

지조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선비 추담 오달제(1609~1637)가

평택시 이충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열세 분 중 추담 오달제와 정암 조광조의 흔적을 찾아

평택시 이충동 충의각에 왔습니다.

평택시 이충동(二忠洞)의 지명은

두 명의 충신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두 충신은 추담 오달제와 정암 조광조를 말하는데요.

그래서 이충동에는 '추담마을'과 '정암마을'이 있고

'정암로'와 '추담로'도 있습니다.

1843년 편찬된 <진위현읍지>(1873)에

'조광조는 송장면(지금의 이충동)에 가문의 장토가 있어서 이곳에서 살았는데

지금도 옛 터가 남아 있고 선조들의 묘역도 있다'라고 기록했고

1891년 편찬된 읍지(邑誌)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병자호란의 삼학사 중 한 분인 오달제는

오좌동 수성 최씨 가문이 외가이고

상속받은 땅과 집이 반지산 아래에 있었다.

출처 : 평택시사

'평택시사'에 담긴 정보를 보면

두 충신은 송탄에 연고지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1800년 진위유림에서는 두 분의 유허에 비를 세워

충신의 뜻을 기렸고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충의각은 1991년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암 조광조는 조선 중종 대에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주장하며 개혁을 추진하고

훈구파의 부도덕성과 전횡을 비판하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았습니다.

추담 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투쟁했습니다.

홍익한과 윤집과 척화론을 주장하여 청에 압송되고

청나라에서도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 순국했습니다.

충의각은 충의근린공원에 있습니다.

평택의 인물,

평택시 이충동 지명의 유래가 된

정암 조광조와 추담 오달제의 흔적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충의근린공원에서 충의각을 만난다면

두 충신을 기억해 주세요!


#평택 #평택시 #평택시민기자단 #이충동 #충의각 #향토문화재 #평택문화재 #정암조광조 #조광조 #오달제 #추담오달제 #정암 #추담 #충의근린공원

{"title":"평택시민기자단 | 평택의 인물 흔적을 찾아서 : 오달제와 조광조(충의각 유허비)","source":"https://blog.naver.com/pt_story/223799060050","blogName":"평택시 공..","domainIdOrBlogId":"pt_story","nicknameOrBlogId":"평택시","logNo":223799060050,"smartEditorVersion":4,"blogDisplay":true,"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