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해 드릴 곳은 울산의 중심지에 있는 공원인 학성공원입니다. 중심지에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하리라 생각을 합니다. 학성공원은 정유재란 때 왜장이 울산왜성을 쌓았는데 그런 아픈 기억이 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학성 공원의 입구입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조그맣게 주차장이 있고 우측으로는 상가와 주택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학성 공원은 산책로가 아주 잘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갔을 때만 하더라도 어르신들, 아이들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운동 삼아 걷고 있었습니다.

학성공원은 김홍조가 1913년 땅을 울산면에 기증함으로써 공원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천신이 학을 타고 이곳에 내려와 학성이라 불렸다 하며 신라의 계변성을 이르는 명칭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곳곳에 동상과 그에 따른 설명이 적혀져 있습니다. 이곳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임을 다시 일깨우게 되는데요.

바로 위에 설명드렸던 인물인 김홍조 공덕비입니다. 비문의 내용은 김홍조가 생전에 의형제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진 철종의 사위 박영효가 지었다고 합니다.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울산 최초의 도심 공원인 학성공원은 구한말 울산 출신의 선각자 김홍조 선생이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을 공원으로 꾸며 울산군에 기증할 목적으로 1913년 주변의 땅을 사들여 각종 나무와 꽃을 정성껏 심고 가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22년 돌아가시게 되고 1927년 그의 아들 김택천에 의해 울산군에 기증되었다고 합니다. 공원이 정식으로 개원한 것은 1928년, 당시 공원 이름은 '울산공원'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의 전쟁인 정유재란에서 서생포로 퇴각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헐어서 도산성을 축조했다고 합니다.

두 차례의 도산성 전투 결과 조명연합군은 도산성을 함락하지 못하였는데요. 이후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루어진 철수 명령에 따라서 왜군은 도산성을 불태우게 되고, 서생포왜성으로 물러났다가 성을 버리고 철수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학성공원을 다른 말로 부르길 울산왜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성은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본환, 이지환, 삼지환 등과 같이 다수의 곽을 배치하고 그 외곽에 각종 해자를 배치함으로써 한 성은 수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독립적인 방어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앞의 사진을 보시면 이지환이 있던 곳이 나오는데요. 이지환은 본환 아래 위치하며, 본환과 삼지환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축성 당시에는 석축 성벽의 둘레가 462m에 달하였으며, 성벽 상부에는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담장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학성공원의 정상으로 올라와 봤습니다. 정상이라고 하기는 조금 부끄러운 높이지만 그래도 정상으로 올라와 보니 공기가 다름을 느꼈습니다.. ㅎㅎ

누가 보면 등산이라도 한 줄 알겠네요... ㅎㅎ

정상에는 2층과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고, 울산왜성이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적 제9호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커다란 안내가 있었습니다.

정상에 있는 화장실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상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바로 아래로 내려갔어야 됐었는데....

3층에는 울산 동백꽃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아직은 동백철이 아니라 아쉽게도 못 보고 그 뒤에 있는 곳으로 움직였습니다.

겨울이 다 되어서야 동백꽃이 핀다는데 다음번에는 동백꽃이 필 때 한번 와보도록 하겠습니다.

울산왜성에서 가장 핵심적인 본환입니다. 본환은 울산왜성의 주곽부를 구성하는 세 개의 소곽 중 가장 중요한 곳으로 주로 산꼭대기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축성 당시에는 둘레가 763m에 달했으며, 모두 석축 성벽으로 쌓고 상부에는 담장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출입구는 동쪽과 북쪽 두 곳에 내었고 내부에는 전투용 누각 6개와 거주용 막사 건물 2동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사시 전투지휘소로 사용되는 천수각은 건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군요.

요산대라는 곳입니다. 1917년 울산군이 발간한 '울산 안내'에는 김홍조가 울산왜성의 정상부에 요산대라는 돌로 된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산'은 태화강과 동천을 뜻하는 '이수'와 당시 삼산동에 솟아 있었던 '삼산'을 한데 묶어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요산대는 태화강과 동천, 그리고 삼산을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넓은 터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이 '산'은 조선 후기 반구동에 살았던 선비 이문화의 서실인 오산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내려가기 전에 본 것입니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자리입니다.

이 장소에 위치하였던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제441호)는 1962

년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 "반탕골" 산비탈에서 발견된 것을 옮겨왔던 것으로 영구 보존 관리를 위해 울산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사리탑을 보긴 봤는데 그게 진품인지가 궁금하군요... ㅎㅎ

울산 중구 학성 공원에서 여름 나기.... 잘 보셨는지요???

지금까지 지역민의 산책로로, 운동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드높은 학성 공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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