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초여름 사이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동네에 봄이 왔다. 조금 더 느리게 도착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봄은 부지런히 올라왔다. 봄의 도착이 얼마나 기쁜지 나는 요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싹이 트고 꽃이 피고 꽃가루가 눈처럼 날리며 송진가루가 바닥을 뽀얗게 물들였다. 세상에! 산에 살아서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있는데, 그게 바로 봄의 시작이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은 산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너무 불어넣어 줘서 적당했으면 좋겠는 게 꽃가루와 송진가루다. 가뜩이나 고양이들과 함께 살며 만성 비염을 달고 사는 나에게, 꽃가루가 흩날리는 봄이란 아름답고도 끔찍한 고통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간혹 우리 집에 방문하는 이들 중, 이렇게 맑고 깨끗한 숲 속에 살면서 웬 공기청정기를 돌리냐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산속이야 말로 공기청정기가 사시사철 일 년 내내 돌아가야 하는 장소라고 말해준다. 봄철에는 꽃가루로 문을 꼭 닫아야 하고, 여름에는 날벌레 때문에 문을 닫고 생활해야 한다. 가을에는 낙엽 부스러기 때문에,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껴야 해서 문을 닫고 있으니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위해서는 공기청정기가 쉴 틈 없이 돌아가야 한다. 이 사실은 산에 들어와 살기 전에는 몰랐던 현실이다. 혹시라도 나처럼 산중생활에 부푼 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야생의 삶이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꼭 알아두고 선택하길 바란다. (아파트 최고…!)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봄은 옳다. 앞서 앓는 소리를 한껏 했지만(실제로 앓고 있지만.) 이 꽃가루가 흩날리는 시기도 곧 지나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 봄을 만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요즘에는 꽃 보러 다니는 재미에 빠졌다. 며칠 전부터 새로운 취미로 ‘나무에 물 주기’를 시작했는데, 이게 꽤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지난해에 식재했지만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고사한 나무들을 싹 뽑아 모았더니 절반이나 되길래 좌절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새 나무를 심었고, 올해부터는 더 가깝게 관리하고 보살피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취미다. 원래 취미가 아니라 그저 일상적인 루틴으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취미가 된 셈이다.

봄날 나무의 성장은 매일 놀라움을 자아낸다. 분명히 어제보다 한 뼘이나 더 큰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싶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난다. 기척도 없이 꽃을 피우는가 하면, 필 듯 말 듯하면서 나를 애태우는 녀석들도 있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방 안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녹음으로 물든 산세가 풍경화처럼 보일 때도 있다. 간간히 운 좋게도 폭설처럼 흩날리는 꽃가루의 장관을 마주할 때면, 햇살이 쨍쨍 맑은 날에 내리는 여우비를 맞이한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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