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동악산 도림사와 함께하는 시간 여행, 원효를 만납니다.
동악산과 도림사의 전설
원효는 끈질긴 정진 끝에 일체의 경계를 허물어지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계시에 따라 성출산 숨은 동굴에 모셔진 16나한을 알현하고 나한을 모셔다 놓으니 산이 장엄하게 풍악을 울렸어요. 바위로 변한 나한 한 분을 업고 산을 내려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절을 세웠어요. 풍악을 울렸다 하여 산 이름은 [동악산], 도인들이 숲을 이루었다 하여 절 이름은 [도림사]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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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설화. 전설을 싸잡아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허구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모든 말이나 글은 그것이 설사 상상력에 의해 각색되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단 1%라도 사실을 반영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비중이 높을수록 역사의 영역에 속하는 거죠. 이야기는 TV 드라마처럼 흥미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후대에게 역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됩니다. 이야기에 섞여있는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모티브들은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양념 같은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원효에 의한 도림사 창건설화도 얼핏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무려 천년도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 맥락에는 원효와 동악산 그리고 도림사 사이에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원효가 도림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서기 660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시간 여행을 떠나 보시죠.
876년( 헌강왕 2) 도선이 절을 중창했다는 것이 도림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전설로 내려오는 원효대사 창건설에 대해서는 1757년에 작성된 길상암 나한전 중수기에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도선의 중창 이전에도 도림사가 있었고, 신덕사라는 절도 별도로 있었다는 내용이 각종 지리지에 등장합니다.
원효는 과연 도림사를 창건했을까.
원효가 도림사를 창건한 시기로 알려진 서기 660년은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 직전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욕내군(현재 곡성)은 여전히 백제 영역에 속해 있었어요.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신라 승려 원효가 백제 땅에 들어와 절을 세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효를 중심에 놓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시 원효와 의상 그리고 윤필은 신라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하고 대중에게 설법을 베푸는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원효가 당시 성산(聖山)으로 일컬어진 동악산에서 수행했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더불어 도림사 창건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습니다.
동악산이 명산인 까닭은
'실제로 원효가 동악산에서 수행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동악산의 입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한반도에는 고유의 수련법인 선도(仙道)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중 수행의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역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화랑도와 고구려의 조의선인처럼 국가 차원에서 장려할 만큼 선도가 대중화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불교 역시 선도를 수행의 한 방편으로 받아들여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중국 고승 원명법사가 동악산을 찾아 도를 닦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불교와 선도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오늘날 사찰마다 세워진 산신각도 거기서 유래합니다.
선도 수행자들이 선호했던 명산은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심산유곡이 아니었습니다. 대중들이 사는 곳과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좋은 기운이 흐르는 산을 명산으로 삼았습니다. 맹수나 산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어야 하고, 식량과 생필품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곡성의 동악산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명산입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성산이라(聖山)일컬어 졌지요.
원효와 동행한 의상과 윤필
그렇다면 원효 일행은 어떤 경로를 거쳐 동악산을 찾아왔을까요? 서라벌(경주)에서 출발했다고 가정한다면, 산청, 함양, 남원을 거쳐 고달나루를 통해 섬진강을 건넜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길상암 나한전 중수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효 혼자가 아니라 의상과 윤필이 동행했을 것입니다. 육로를 통한 1차 당나라 유학을 실패한 이후, 원효와 의상은 줄 곳 함께 다녔고, 재가 수행자인 윤필이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였습니다. 이들이 서울 관악산 기슭에서 움막을 짓고 함께 수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 삼막사 ) 동악산에도 분명 함께 왔을 것입니다.
동악산은 이웃 지리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하지만 기운은 큰 산 못지않습니다. 골짜기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릅니다. 육산의 품에 숨겨진 골산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단한 기세를 자랑합니다. 이런 곳이 진정한 명산 아니겠습니까?
윤필은 원효와 의상을 데리고 성출봉에 올랐다. 숲은 울창하고 골짜기에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전쟁의 혼란을 겪고 있는 바깥세상과는 아랑곳없이 숲은 밝고 평화로웠다. 들어갈수록 골짜기는 깊어지고 길은 가팔랐다. 의상이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며 윤필에게 물었다. “산이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험하군요. ” 윤필이 웃으면서 의상을 바라보았다. “ 어떻습니까. 스님 진짜 신선이 살 것 같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 둡시다. ” “ 제가 태백산(백두산)에서 백두 신선을 뵈었다는 말을 제발 믿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원효가 거들었다. “믿어 주시게 의상 ” 의상은 대답 대신 웃음을 터트렸다. 한 시진(2시간) 남짓 지나서야 이들은 깎아지른 바위가 성벽처럼 둘러쳐진 성출봉 정상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산 아래로는 너른 벌판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다사강(多砂江 섬진강 옛이름)이 휘감아 돌아가고 저 멀리에는 우람한 모습의 방장산(지리산)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굽어보고 있었다. “원효 스님! 지난 10년 동안 천하의 명승지를 둘러보았지만, 이토록 가슴이 탁 트이게 하는 풍경은 첨입니다. ” 원효도 의상의 찬사에 맞장구를 치면서 윤필의 어깨를 다독였다. “ 여기라면 아무리 아둔한 중도 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네. 윤필거사! 자네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야.” 두 사람이 기대 이상의 찬사를 늘어놓자 윤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행할 장소를 보시면 더 놀라실 것입니다.” 윤필은 두 사람을 성출봉 아래로 안내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원효는 온몸이 짜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읊조렸다. “과연 하늘이 감춰둔 수행처일세. 하늘의 품에 안긴 듯 고요하고 아늑한 기운이 감돌았다. 의상이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석간수를 손으로 받아 마시면서 크게 소리쳤다. “물맛이 정말 좋습니다. 몇 년 전 우리가 함께 아리수 근처 삼성산에 초막을 짓고 수행하던 곳과는 완전히 달라요. “윤필과 원효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스님께서도 좋다고 하시니 이곳에 초막을 지어야겠습니다. 삼성산에서처럼 세 채를 별도로 짓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니 이번에는 한 채를 좀 큼지막하게 짓는 편이 낫겠습니다. “ 원효는 앞장서서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해 주는 윤필이 참으로 감사했다. 그렇게 뒷바라지를 해주는 윤필이 없었다면 10년에 걸친 원효와 의상의 구도행과 보살행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음날부터 초막을 짓는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세 사람의 수행자들과 신덕사 승려들과 신도들이 산꼭대기까지 집 짓는 자재와 연장을 짊어지고 올라와 땅을 고르고 기둥을 세운 덕분에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 번듯한 삼간 초막이 완성되었다. ( 변방곡성 세상을 바꾸다에서 발췌 )
전설에 따르면 정진을 거듭하던 원효 일행은 마침내 육신의 한계, 시공의 경계를 초월하고, 모든 것이 하나 된 경지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끌림에 따라 성출봉 동굴에서 바위가 16나한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하고 그 바위들을 수행하는 곳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러자 산이 밝은 빛을 뿜으며 풍악을 울렸다고 합니다.
산은 동악산이요. 절은 도림사라 하세요.
원효
산 아래 승려들과 주민들은 산이 방광(放光)하는 광경을 보고 놀라, 그들이 수행하는 곳으로 올라왔을 때 바위 앞에 좌정한 원효 일행들의 몸을 빛이 감싸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모든 것이 평상시대로 돌아가자 원효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16개의 바위 중 하나를 업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 아래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원효는 그들과 함께 절을 세웠어요. 풍악을 울렸다 하여 산 이름을 동악산(動樂山)이라 하고 상서로운 일이 일어난 곳이며 16나한이 현신했다 하여 수행처는 길상암(吉祥庵)이라 하고 거기에 나한전을 지었어요. 그리고 도를 얻고자 하는 대중들이 몰려와 숲을 이루었다 하여 절 이름을 도림사(道林寺)라 하였습니다.
한국불교의 큰 스승 원효와 동악산사이에는 분명 뭔가 있습니다.
앞에서 기술한 내용은 곡성에 내려오는 구전설화와 길상암 중수기를 참고하여 상상력을 가미한 것입니다. 실제로 서기 660년에 이곳 도림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원효가 실제로 동악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듬해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다가 해골을 바가지로 착각하고 발걸음을 당나라가 아닌 중생을 향해서 돌렸다는 유명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후 요석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하며 대중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왕실종교, 귀족종교, 호국종교, 기복 신앙 차원에 머물러 있던 신라의 불교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가장 큰 스승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현장 도림사를 찾아갑니다. 2024년 12월 도림사 가는 길에서는 풍악이랄 수는 없지만 계곡을 흐르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순수 자연의 연주 음악을 들려주면서 초겨울 특유의 피로감과 권태감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들어가는 도림사 산문
아담하고 소탈한 모습의 산문(山門)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대중과 함께 호흡했던 원효의 성품이 느껴지는 문입니다. 현판에 새겨진 천재화가 의재 허백련의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맛을 주는 글씨가 유난히 정겹습니다. 이문을 통과하여 절마당에 들어설 때는 누구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아요.
국가문화유산 도림사
절마당에 들어서면 성출봉에서 뻗어내려온 산줄기에 기대선 전각들이 시야를 가득 채워줍니다. 이 소박해 보이는 절집에는 괘불탱과 '아미여래설법도' 이렇게 보물로 지정된 국가문화유산이 두 점이나 있어요. 도림사 일원도 도지정 문화재입니다. 불교 미술의 걸작인 '아미여래 설법도'는 보광전에 모셔진 불상 뒤편에 걸려 있어 누구나 감상할 수 있어요.
부담 없는 산사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도림사를 강력 추천합니다. 교통이 좋으면서도 산사 특유의 운치는 심산유곡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저마다 나름의 도를 추구하고 있으니, 도림사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절집입니다. 도림사에서 나만의 도를 찾아가세요^^
특히 도림사의 설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절 입구까지 제설작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어, 자차로 오더라도 눈 내린 산사 특유의 풍경을 감상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도림사 여행의 비밀 팁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대루는 도림사에서 가장 큰 건물로, 개방된 공간입니다. 그곳 마루에 걸터 앉아 굳이 명상이랄것 없이 한 5분만 멍 때려 보세요. 그러면 절마당에 감도는 어떤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질 것입니다. 근심. 걱정. 어지러운 생각이 싹 사라집니다.
지금도 도림사에서는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겠지요. 천년 후에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합니다. 그런 상상을 하며 산문을 나오는데 아늑한 오후 햇살에 잠긴 도림사 계곡이 한층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네요.
역사란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남긴 흔적, 눈 위에 남긴 족적 같은 것입니다. 원효가 실제로 이곳에서 수행을 하고 도를 깨우쳤는지, 도림사를 누가 창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절이 세워진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누군가는 삶에 대한 의문을 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간절한 기원으로 길이 닳도록 오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동악산과 도림사에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다는 그것이 찐 역사입니다.
도림사는 친구 같은 절집입니다.
가보셨다면 또 한 번 가보시고,
안 가보셨다면 꼭 한번 가보세요.
■ 도림사 여행정보
▷ 입장료 : 성인 기준 2,000원입니다.
▷ 주차요금 : 별도 주차요금 징수하지 않습니다.
▷ 자차 이용 시 : 경내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 대중교통: 곡성역과 곡성터미널에서 택시 이용 가능하고
입구(큰길)까지 농어촌 버스 운행합니다.
▷ 숙소 : 주변에 도림사 오토캠핑장과 키즈펜션 등의 숙소가 있습니다.
■ 주변 가볼 만한 곳
▷ 동악산 등산 : 블랙야크 100대 명산입니다.
▷ 곡성읍 : 기차마을, 침실습지, 동화정원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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