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신숭겸이 없었다면 고려 500년 역사도 없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혼돈의 후삼국시대, 신라가 쇠락의 길을 걷자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한반도 패권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입니다. 왕건이 폭군으로 돌변한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세는 이미 한반도 남부지역을 차지한 후백제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고려는 신라와 힘을 합쳐 대아성을 비롯한 후백제의 버팀목들을 잇따라 함락시키며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후백제는 신라 서라벌을 기습 공격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고려의 반격에 대비하여 공산성으로 물러납니다.

고려는 후백제를 응징하기 위해 1만 대군을 파병하고 이어서 왕건이 친히 정예 기마병 5천을 이끌고 출정합니다. 하지만 왕건은 전투도 변변히 치러보지 못한 상태에서 후백제의 교묘한 매복에 걸려들어 팔공산 골짜기에 갇힌 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왕건과 함께 출정했던 충직한 무장 신숭겸이 왕건 행세를 하며 적을 유인하는 틈을 타서 왕건은 겨우 포위망을 빠져나와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대신 신숭겸은 처절한 격전 끝에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만약 이때 신숭겸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왕건을 살리지 않았다면 고려 500년 역사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려의 영웅 신숭겸은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킨 진정한 영웅입니다.

신숭겸은 어떤 인물인가?

신숭겸申崇謙 (882년 ~ 927년)

고려의 무장이며 개국 공신으로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강원도 춘천의 호족 박유의 호위무사가 된 인연으로 태봉국의 기마부대 장수가 되어 송악 태수 왕건의 휘하로 들어갑니다. 출중한 용맹과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며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그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궁예가 폭정을 일삼자 뜻을 함께 하는 복지겸 등의 무장들과 힘을 합쳐 그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개국공신입니다. 고려 태조 10년, 연맹을 맺은 신라 경애왕을 살해한 후백제를 응징하기 위해서 직접 출전한 왕건이 죽을 운명에 처하자, 왕건을 살리기 위해 대신해서 목숨을 바쳐 고려가 한반도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고려왕조는 대를 이어 신숭겸을 군신급 영웅으로 추앙하였고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신숭겸은 충신의 표상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방영된 인기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 ]에서 신숭겸의 죽음을 인상 깊게 묘사한 덕분에 오늘날까지 충신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장절공 신숭겸 장군 동상

고향 곡성에서 신숭겸 장군은 전설 속의 영웅이며 성황신으로 받들여졌습니다. 조선 중기에는 유림들에 의해 곡성읍이 내려다보이는 통명산 중턱에 신숭겸 장군의 충심을 기리는 덕양서원이 세워졌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탄생한 구룡마을에 사당 용산재와 더불어 용산단이 조성되었고, 태안사 입구에도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산으로 일컬어지는 삼산의 품에 자리 잡은 용산재

성산 삼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용산재

용산재는 목사동 면소재지에서 시골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는 산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곡성의 대표적인 농촌체험 마을인 용사리 마을을 거쳐 이정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널찍한 주차장 뒤로 여러 채의 전각으로 구성된 용산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로부터 성산(聖山)으로 불리는 삼산이 팔을 벌려 감싼 형국으로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곳임을 보여줍니다. 그런 용산재에는 뭔가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저절로 이곳을 찾은 참배객들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뒤쪽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요.

입구에는 용산재 중건을 기념하는 비석이 참배객을 맞이합니다.

우리 아이 큰 인물 만들고 싶다면 용산재로 오세요.

신숭겸 장군과 관련된 전설에는 무수히 많은 전설의 동물 용(龍)이 등장합니다. 청년 능산(신숭겸 아명)이 무예를 익힐 때 타고 다니는 말은 용마, 신숭겸 장군이 말을 타고 뛰어넘었다는 대황강의 물줄기는 용탄, 신숭겸 장군이 태어난 마을 앞에는 용바위가 있습니다. 용산재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용산재로 들어가는 문 이름도 구룡문이네요. 마을 이름도 구룡리입니다. 이곳에서 나라를 구하는 아홉 명의 영웅이 태어난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요? 용은 왕을 비롯한 위대한 인물을 상징합니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이곳에 찾아와 영웅의 꿈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구룡문

용산재에서는 매년 9월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제사를 지냅니다. 구룡문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세 채의 건물은 제사 때 사용하는 전각들입니다. 오른쪽 건물은 모충재 입니다. 신숭겸 장군의 충심을 사모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왼쪽 건물 진덕재는 신숭겸 장군의 덕을 따른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중앙에 있는 용산재는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신숭겸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용산재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용산단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충절문을 지나게 됩니다. 충절이란 충성과 절개라는 뜻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비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용산단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두 개의 기단 위에 작은 무덤과 비각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낮은 담장이 묘역을 두르고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듭니다. 두 번째 기단 위에는 큰 바위가 누어 있는데 이곳에 감도는 분위기를 더욱 신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비각 안에는 [고려태사장절공유허비]라고 씐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고려의 큰 스승 장절공을 기린다는 뜻입니다.

신숭겸 장군의 비각

신숭겸 장군의 묘소에 얽힌 미스터리

후백제 장수들은 고려의 왕건을 잡았다고 환호하면서 신숭겸 장군의 수급을 견훤에게 바칩니다. 견훤은 단박에 그 주인공이 왕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합니다. 하지만 같은 무인으로서 신숭겸 장군의 충절만큼은 높이 기리면서 별도로 성대한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전합니다. 그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곡성에는 신숭겸 장군이 타던 용마가 수급을 물고 와서 태안사 스님들이 장사 지내 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봉두산에는 신숭겸 장군의 수급을 묻었다는 무덤이 있지만 그것이 진짜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태조 왕건은 신숭겸 장군의 죽음을 크게 애통해 하면서 장례식을 국왕에 준할 만큼 성대하게 거행합니다. 일설에는 시신을 수습한 다음 황금으로 만든 목과 함께 장사를 지내고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똑같은 형태로 세 개의 봉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봉분이 세 개인 신숭겸 장군 묘소는 강원도 춘천에 있습니다. 곡성 용산재에 조성된 용산단은 신숭겸 장군께 제사를 드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묘입니다.

용산단과 비각

신숭겸 장군은 곡성 출신입니다.

고려사에는 신숭겸 장군의 행적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돼 있습니다. 신숭겸 장군은 원래 춘천의 유력한 관리이자 호족인 박유의 부하인 무사 능산으로 태봉국 기마병을 이끄는 장수가 되었습니다.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개국에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입니다. 이에 태조 왕건은 능산에게 평산신씨라는 성과 숭겸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이를 근거로 신숭겸이 평산 출신 또는 강원도 춘천 출신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체로 곡성 출신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변방 곡성 세상을 바꾸다 ]를 집필한 나종화 작가는 신숭겸 장군이 멀리 떨어진 춘천까지 이동한 경위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곡성 청년 능산의 활동 공간이 태안사였다는 점입니다. 구산선문 태안사에서는 전국에서 몰려온 영웅호걸들 사이에 활발한 인적교류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말입니다. 신숭겸 장군 관련 전설에서 용마는 매우 중요한 상징 요소입니다. 아울러 그는 태봉국의 최정예 기마대를 이끄는 장수였습니다. 당시 말은 매우 귀하게 취급되었고 관청의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 따라서 능산이 개인적으로 말을 소유했다기보다는 관아에서 말을 다루는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말 잘 타고 무예가 능한 능산에 대해 태안사를 다녀간 협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을 것이고, 그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춘천 지역의 유력한 호족인 박유에게 발탁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신숭겸 장군이 태어난 구룡마을

용산재는 곳은 꼭 아이를 데려오세요. 굳이 신숭겸 장군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린이의 마음은 순수해서 영웅을 기리는 용산재에 서려 있는 의미를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잠재적인 자산이 되어 꿈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용산단 묘역에 들어가시면 신숭겸 장군을 추모하며 묵념하는 시간도 꼭 갖길 바랍니다.^^

용산재 여행정보

■ 입장료. 주차료 : 무료

■ 개방 시간 : 상시 개방

신숭겸 장군 관련 곡성 여행지

♠ 덕양서원

♠ 용바위 농촌체험마을

■ 주변 가볼 만한 곳

♠ 아미산 천태암 (운해명소)

♠ 대황강출렁다리

♠ 태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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