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가을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아, 가을이 왔구나 싶었다. 여름의 뜨거웠던 열기가 확연히 가라앉았다. 골짜기마다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화로의 연기들이 이제는 잠잠해졌다. 여름 한철을 온전히 보내고 나니 다시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전경으로 돌아왔다. 물론 아직 낙엽이 지지는 않았다. 바람이 달라지고, 냄새가 달리고, 기온이 달라진 후에야 나무들도 계절이 바뀌었음을 깨닫고 조금씩 옷을 갈아입을 거다. 이제는 한낮에도 그늘 아래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시원한데, 하늘이 워낙 파랗다 보니 하루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지가 않아 큰일이다. 이 시간을 놓치지 싫어서 해야 할 일을 자꾸만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여름의 끝이자 가을의 시작인 요 시기는 정말 귀하다. 길어야 2주? 짧으면 한주만에 훌쩍 사라지기도 한다. 최대한 많이, 오래 요즘의 날들을 누려야 한다.

정신없이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벌써 9월이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막상 달력을 보며 ‘9월’이라고 입으로 읊조려보니 벌써 올해도 다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울적해진다. 가을이 외로움과 고독의 계절이라는 건 사실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쉬워서 울적한 기분이 들기 때문 아닐까. 올해 초 새해를 맞이해 다짐했던 일들을 복기해 본다. 이루고자 했던 일들보다 이루지 못한 일들이 훨씬 더 많아 울적해진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늦은 때’니까 더 늦기 전에 초심을 떠올려봐야겠다. 아! 맞다. ‘초심’하니까 생각났는데, 나는 요즘 내가 이전에 썼던 <영월에 살아요>의 원고들을 처음부터 하나씩 전부 살펴보며 수정을 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영월문화도시센터’에서 그간 내가 연재해 온 <영월에 살아요>를 책으로 엮자는 제안을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퇴고를 하는 중이다. 2019년 서점을 열고 난 이후부터 쭈욱 적어온 나의 영월 에세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미 전생처럼 까마득하다.

그때의 내가 바랐던 큰 소망을 지금의 나는 누리고 있다. 산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종종 내비쳤는데, 실제로 2023년 나는 그 소망을 이루었다. 조용한 산에 작은 집을 짓고 지내고 있다. 꿈을 이루었으니 마냥 기쁘고 행복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꿈과 현실은 괴리가 있기 마련이고, 사람은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각이든 뭐든 변하기 마련이니까. ‘인생이란 탄생(B)과 죽음(D) 사이의 선택(C)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살면서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모든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후회가 따라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구 후회하며 다시 벗어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다. 다만 몇몇 상황에서는 너무 외진 곳으로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나 가을이 되니까 벌써부터 겨울을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어휴, 이번 겨울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아무튼 <영월에 살아요>를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하면서, 몇 해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조금씩 비교하고 있다. 당시에도 나는 꽤나 내가 어른스러운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철부지처럼 느껴진다. 또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내가 여전히 철부지 같다고 생각하겠지. 아마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미래의 나보다는 당연히 부족하고 미숙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 바로 지금! 이니까. 이 젊은 날을 슬기롭게 후회 없게 잘 보내기로 하자.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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