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안골포 굴강, 잊지 말라는 임진왜란의 흉터
한산대첩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주요 해전지가 창원에 있습니다. 1592년 8월 16일(음력 7월 10일) 안골포 해전(安骨浦海戰)이 바로 그렇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일 무렵 안골포를 찾았습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청안 제2 근린공원에서 멈췄습니다. 안골만이 보입니다. 그날도 이렇게 무더웠을까요? 조선시대 수군의 주요 군항이었던 안골포는 지금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조선 후기 <경상도읍지>를 보면 안골진(安骨鎭)에 전선 1척, 병선 1척, 척후선 2척이 주둔하는 수군 기지였다고 합니다.
안골만을 내려다보는데 진분홍빛 배롱나무들이 무더위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끈적끈적하면서 덥습니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훔쳤습니다.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찾아가는 바닷길은 <진해 바다 70리길>이기도 합니다.
안골포길에 이르면 도착점이 나옵니다. 도착 안내판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바닷가가 굴강의 흔적이 있습니다.
철책이 둘러싸여 있지만 출입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2005년 4월 11일부터 그해 12월 31일까지 문화재 발굴 조사를 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디지털 창원문화 대전에 따르면 ‘굴강은 활 모양을 띠고 있으며, 드러나 있는 석축의 길이는 약 75m 정도이다. 타원 상의 석축 상단은 일부 허물어져 있으며, 폭 390~530㎝, 높이는 약 110㎝에 이른다. 굴강에 사용된 석재는 산돌과 냇돌이며, 돌의 크기는 76×32×30㎝, 42×25×26㎝, 25×17×10㎝ 정도이다. 입구는 동쪽으로 추정되며, 입구의 폭은 약 20m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안골만 연안에 있는 경남기념물 제143호인 진해 안골포 굴강은 외해에 깊숙이 들어와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안골만 일대는 부산신항 건설 등으로 대규모 매립 사업. 연안의 도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절반은 지나온 도로 아래에 묻혀 있는 상태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이 안골포에서 일본 수군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陸)와 가토 요시아키라(加藤嘉明)를 격파한 곳이지만 정유재란 때도 안골포는 일본군 본진인 부산을 공격하러 가는 원균이 이끄는 수군에게도 중요한 기항지였습니다.
안골포 굴강 근처에는 일본군이 세운 안골 왜성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해임당하고 뒤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에게 조정은 일본군의 본진인 부산을 공격하라고 독촉했습니다. 원균은 수군이 부산으로 진격하기 중간 기항지로 안골포가 필요하다며 수륙합공책으로 육군이 먼저 일본군을 몰아내면 수군이 작전이 가능하다고 조정에 요청했습니다. 물론 조선 조정은 거부하고 조선 수군 단독으로 공격하라고 명합니다. 이후 사정은 우리가 잘 아는 바처럼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몰살에 가까운 참패를 당합니다.
임진왜란이라 부르는 동아시아 국제 전쟁을 일본은 분로쿠 노에 키(분로쿠의 전쟁), 중국은 항왜원조라 부릅니다. 안골포 굴강은 손등의 흉터처럼 그날의, 전쟁으로 희생당한 조선 민중을 잊지 말라는 역사 현장입니다. 안골포 굴강에서 더욱 또렷한 역사의 흔적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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